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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PA Nov 22. 2024

만족스러운 가난

[노파에세이]월 3백 매일 출근 vs  월 150 하루 출근


일주일에 한 번 출근한다. 5시 40분에 일어나서 7시 40분에 집을 나선다. 그사이 운동하고 씻고 거하게 먹는다.



경의선과 서해선과 지하철 7호선을 20분씩 탄 후 버스로 갈아타면 9시 40분에 비로소 도서관에 도착한다.


*

오늘은 버스에 내려서 가는 길에 수강생분을 만났다. 그런데 도서관과 반대 방향으로 가시길래 (설마) 오늘 안 오시는 거냐고 여쭸더니 금방 올 거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안 오셨다. 쳇.


열 명이 정원인 지역 도서관 수업을 5주째 하다 보면 수강생 얼굴을 전부 알게 된다. 그래서 길에서 뵙자마자 학생 주임처럼 잔소리를 해댄 것이다.


이제 그분은 아침에 그 길로 안 다니실 것이다. 고로 나도 다음 주엔 다른 길로 가서 우연을 가장하고 마주쳐서는 아예 팔짱을 끼고 연행해와야겠다.


*

일어난 지 네 시간 만에 일터에 도착하면, 세상 모든 출근자들에 대한 존경으로 마음이 가득 차게 된다. 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이걸 매일 하는 것일까?


내가 눈뜬 후 그나마 2시간 만에 현관을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오늘 입을 옷과 오늘 먹을 아침을 전날 저녁에 미리 준비해두었기 때문이다. 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이 일을 매일 저녁 하는 것일까?


물론 나도 매일 이 짓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삶의 만족도가 너무 낮아서, 매일 잠들기 전에 제발 내일 아침에는 눈뜨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출근하기 싫다고 직접 생을 마감하는 건 좀 그랬으므로 ‘수면 중 급사’라는 손쉬운 이승 탈출을 꿈꿨던 것이다. 그 와중에 욕먹을까봐 피동적 자살을 기원하는 비겁함이란.


 *

그러나 급사는 어림도 없어 보였기에 결국 스스로 일을 그만뒀다. 그렇게 다달이 월급이 들어오는 안정된 생활을 대가로 치른 후 불안과 가난 속에서 한 달에 한 번 강의가 있을까 말까 한 지금의 일상이 구축됐다.


그런데 이모저모 꼼꼼히 뜯어봐도 삶의 만족도는 지금이 훨씬 높다. 어제도 차가운 방안에 앉아서 고독을 씹다가 문득, 사는 게 참 좋다고 느꼈다. 나는 가난이 천성인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월 3백 받고 매일 출근하는 삶을 살래? 아니면 반 토막만 받고 일주일에 하루만 출근하는 삶을 살래? 하고 묻는다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다가 결국 후자를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은 이미 그런 선택을 한 인생을 사는 중이다.


그리고 출근을 하루만 한다고 해서 일을 하루만 하는 것은 아니다. 거의 주 6일 이상은 일한다. 다만 내가 원하는 일을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

일주일에 4일은 내 글을 쓰고, 3일은 강의와 첨삭을 하는데, 글쓰기 강사라는 일은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직업인 것 같다.


매번 재밌는 책을 읽고 가서 내 얘기 좀 들어보라고, 글은 이렇게 써보면 어떻겠냐고, 와르르 떠들어대면 사람들이 엄청 사랑해준다.


수업이 너무 재밌다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아 정말 아쉽다고, 아낌없이 추켜세워준다.


그럼 나는, 나이 들어서 이런 칭찬을 받을 일은 정말 드물기 때문에, 굳이 말의 진의를 따지지 않고 데헷, 하며 신나서 돌아온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렀는데 내가 좋아하는 감이나 푸성귀 따위를 할인가에 득템까지 한다면, 마치 온 우주가 나를 위해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된다. 오늘도 그렇게 우주의 사랑을 받았다.


*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니 만족스러운 가난이 찾아온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내년엔 또 어떤 궁상맞고 웃긴 날들이 펼쳐질까..?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663706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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