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짭짭이.
해남 3일 차.
#1.
땅끝마을에 왜 빵집이 없는지 알았다. 고구마가 엄청나게 맛있기 때문이다. 내가 해남 고구마를 안 먹어봤던가? 사장님이 건넨 따끈한 고구마 하나에 가공 탄수화물에 대한 모든 욕구가 사라졌다. 이런 고구마라면 빵 따윈 먹을 필요가 없지.
해남 고구마를 좀 더 탐험하기 위해 카페에 가서 고구마 라떼를 시켰다. 이건 정말 마시는 고구마였다. 서울에서 파는 향만 고구마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오 해남! 고구마의 도시여.
아, 그리고 사장님이 방도 바꿔줬다. 고작 5천원 차이에 이런 뷰라니! 사장님, 테이크 마이 머니 앤 킾 미 스테이 히어!
방이 이미 차서 안 된다고 했다.
#2.
해남의 작은 카페에도 ‘있는 거지’가 온다. 그들은 정말 세계 곳곳에 있고, 나는 그들이 정말 싫다.
S클래스를 타고 와서 온갖 돈 얘기를 하며 거드름을 피우더니 사장님이 테이블마다 정성껏 꽃꽂이해놓은 꽃을 빼갔다. 제일 예쁜 장미와 카네이션, 두 송이나.
그러더니, 사장님이 꽃 하셨소? 너무 예뻐서 내가 몇 송이 뺐소, 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안 된다고는 말하기 곤란해할 걸 알고 주로 여자 사장 앞에서 써먹는 거지들의 술책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거 가져가시면 안 되는데.. 그냥 빼가시면 시들 텐데.. 하며 사장님은 싫은 내색도 제대로 못 냈고, 남자는, 그럴 줄 알고 휴지에 물 적셔서 감았지, 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옆에 친구가 둘이나 있었는데 아무도 그의 거지 짓을 말리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내 S클래스를 타고 매끈하게 골목을 빠져나갔다. 드런 놈들, 드런 벤츠. 썩 꺼져버려라.
#3.
쾅 소리가 나길래 누가 창문에 돌을 던진 줄 알았다. 참새였다. 전속력으로 날아와 내가 앉은 창가 자리로 그대로 메다 꽂혔다.
바닥에 떨어진 참새는 가녀린 다리를 몇 번 바르르 떨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에 물을 흘려줘도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방금 전까지 신나게 날고 있었는데, 바로 한순간에 존재하기를 멈췄다.
존재란 뭘까. 너는 어디로 간 걸까.
아스팔트 바닥에 그대로 버려둘 수 없어 풀이 우거진 수풀로 데려가 장례를 치러줬다. 묻지 않았으니 고양이가 먹겠지.
죽는다는 건 정말 순식간의 일이다. 그 순간부터 몸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 누가 내 몸을 먹는다고 해도 막을 수 없다. 한때는 몸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사투를 벌였을 텐데도.
잘 가라. 다시는 몸에 갇히지 마라.
#4.
해남 카페에서는 흥미로운 일들이 꽤 많이 벌어진다.
아주머니 한 분이 하도 이를 쑤시며 쩝쩝대길래, 대체 무얼 하느라 저리 요란스러운 건지 궁금해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이쑤시개로 파내서 빨아먹고 짭짭, 다시 파내서 빨아먹고 짭짭, 그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고 계셨다. 식사를 섣불리 끝내지 않겠다는 집요한 열망이 느껴졌다.
그렇게 먹으면서도 커피를 놓치지 않는 걸 보니 굉장한 커피 애호가인가 보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토록 비위가 상해보긴 처음이었다. 토할 것 같아요, 아주머니도 냉큼 가버려요.
소의 되새김질은 아무렇지 않은데 왜 인간의 되새김질은 역겨운지, 그것도 생각해봐야겠다.
#5.
오늘 또 모노레일을 탔고, 또 땅끝을 밟았다. 그리고 새로운 산책로를 탐험했다. 정말 끝내주는 산책길이었다.
저녁은 지겨운 전복 대신 멍게와 해삼을 먹었다. 속이 헛헛할 거 같아 공기밥도 하나 달라고 했더니 “여기다 같이 드시게요?”라고 되물으셨다. ‘이런 몬스터!’라는 말이 앞에 생략된 얼굴이었다.
왜, 이상해요? 라고 했더니 아니라고, 찬도 갖다 드리겠다고 하여 천원에 밥상도 한 상 받았다. 훌륭한 식사였고, 훌륭한 식당이었다.
**
가계부 3일 차
숙소 50,000
(아침은 어제 산 햇반과 카레)
고구마라떼 + 붕어빵 8,500
회 + 공기밥 31,000
모노레일 편도 4,500
***
(하도 먹어대서 운동량을 기록하기로 했다)
운동 3일 차
스쿼트 150회
다리 들어올리기 108번
걷기 12,000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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