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파에세이] 해남 19일 차.

해남읍, 대흥사 맛집 정리

by NOPA

20250523 해남 19일 차


KakaoTalk_20250523_220402840_06.jpg?type=w1
KakaoTalk_20250523_220402840_08.jpg?type=w1


#1.

어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구토가 나는 게 멀민 줄 알았더니 열사병 증상이었나 보다. 음식만 먹으면 설사에, 구토까지 날 것 같아 종일 고생했다.


해를 너무 많이 받으면 피부만 타는 게 아니라 내장도 녹는다. 그러므로 정오에 아스팔트 걷는 일은 안 하는 게 좋겠다.


그렇게 메슥거리는 내장을 안고도 나는 종일 먹었다. 해남엔 정말 맛있는 것 천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맛없는 집 주인들은 경찰이 다 연행해 간 것 같다.


KakaoTalk_20250523_220402840_11.jpg?type=w1
KakaoTalk_20250523_220402840_10.jpg?type=w1


*

해남읍에, 투숙객을 담배 냄새로 훈제시키는 모텔이 있는데, 주로 트럭 운전기사들이 많이 묵는 곳이라 그런지 주변 밥집이 다 괜찮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가격은 저렴하고 내용물은 정말 알차고 맛있다.


운송 기사들과 공사판 노동자들은 숙박은 헛간에서도 잘 사람들이지만, 식사에 관해서 만큼은 마리 앙투와네트라고 소문났다. 맛없으면 엎어버린다. 이들이 주로 찾는 식당을 가면 실패할 일이 없다.


<해남읍>

수가정 - 돌솥밥 + 소고기 순두부찌개 : 12,000원

나무와 새 - 백반 : 10,000원

KakaoTalk_20250523_220402840.jpg?type=w1
KakaoTalk_20250523_220402840_03.jpg?type=w1


‘수가정’은 주문이 들어간 후에 돌솥을 올리기 때문에 식사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그러나 기다린 보람이 있다. 밥이 엄청나게 맛있다. 순두부찌개도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소고기도 넉넉하게 들어가 있다. 숙소에서 토하고 난 후에 오한이 와서 벌벌 떨며 들어갔는데 사람 돼서 나왔다.


‘나무와 새’는 정말 기대도 안 하고 들어간 집인데(엊저녁에 아저씨들이 바글바글하길래 가봤음), 김치찌개도 뚝배기에 담아 나오고, 원래 고기 장사를 하는 집이라서 그런지 돼지고기도 아주 실한 놈들로 잔뜩 들어가 있었다. 계란 후라이까지 야무지게 챙겨주시는데 늦게 나와서 사진엔 없다.


두 집 다 몸이 좋을 때 갔으면 반찬까지 다 비웠을 만큼 맛집인데 그러지 못한 게 아직도 한이다.

KakaoTalk_20250523_220402840_16.jpg?type=w1
KakaoTalk_20250523_220402840_17.jpg?type=w1


*

<대흥사>

수라간 – 오리탕 뚝배기 : 15,000원


이 집이 또 기가 막힌다. 절 근처라서 비빔밥이나 먹겠지, 하고 왔는데, 오리탕을 뚝배기에 담아 1인분으로 팔고 있었다. 들깨 국물 안에 오리고기가 듬뿍 들어간, 완벽한 보신용 식단이었는데, 곁들여 나오는 묵이 또 진짜배기다. 그냥 시판 묵이 아니라 직접 만든 묵이었다.


불자가 절 근처에 와서 오리를 먹는 게 조금 이상해 보일 수도 있는데, 이 정도면 부처님이 보내주신 음식이다. 아니면 내가 이런 맛집을 여기서 만날 리가 없잖아.

고맙다 오리야, 잘 먹었습니다. 부처님.


사실 녹은 위장 안에 너무 많은 음식을 집어넣어 지금도 속이 좋지 않은데, 그래도 입은 행복하다. 그 맛을 혀가 기억한다. 쓰면서도 맛있음을 느낀다. 그럼 내장이 좀 힘들어도 되지. 너는 뭐라고 맨날 니 욕구만 먼저 챙기길 바라냐.

KakaoTalk_20250523_220402840_09.jpg?type=w1

*

해남에 와서 음식에 대해서는 한 번도 불만족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다. 어떻게 바다 음식도 맛있고 육지 음식도 다 맛있을까. 역시 맛없는 집 사장은 경찰이 다 체포해 간 게 틀림없다.


내일은 또 뭘 먹게 될까. 역시 생각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생각은 처먹을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음식 사진을 첫 타자로 올리는 건 왠지 부끄러워 꽃 사진을 올렸다)


KakaoTalk_20250523_220402840_18.jpg?type=w1

**

가계부 19일 차

숙소 50,000

백반 10,000

커피 6,000

오리탕 15,000

계란 외 8,900


***

운동 19일 차

다리 들어 올리기 54번

걷기 10,000보

KakaoTalk_20250523_220402840_21.jpg?type=w1
KakaoTalk_20250523_220402840_22.jpg?type=w1


***

지난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

https://blog.naver.com/nopanopanopa/223875212103

#노파의글쓰기 #어느날글쓰기가쉬워졌다 #글쓰기 #글잘쓰는법 #노파 #김수지작가 #에세이 #문해력 #어휘력 #북스타그램 #책리뷰 #서평 #감성글 #해남여행 #여자혼자여행 #땅끝마을 #한달살기 #남도한달살기 #해남한달살기 #해남맛집 #수라간 #수가정 #나무와새 #백반맛집 #오리탕 #돌솥 #순두부 #열사병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5화[노파에세이] 해남 17-18일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