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 사무소에게 까이다
2021년 6월 26일. 덜커덕 집을 계약했던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하자면,
토요일에 집을 처음 보고 그날 오후에 가계약을 한 뒤 월요일이 되자마자 부동산에 모여 법적 효과가 있는 진짜 계약을 진행했다. 부모님과의 충분한 상의는커녕 거의 통보하듯 전화를 드리고, 신랑과 나는 눈 깜짝할 새 치러진 빅 쇼핑에 얼떨떨해했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서둘렀나 생각해보니 이유는 단 하나. 마음이 바뀔까 봐. 판매자의 마음이 아니라 구매자인 우리의 마음이 흔들릴까 봐. 편하고 깨끗하고 안전하고 살기 좋은 아파트를 떠나 불편하고 손 많이 가고 내가 아니면 아무도 관리해주지 않는 주택으로 가려는 결심이 무너져 내릴까 봐. 그래서 이 결심에 콩깍지가 벗겨지기 전에 우리는 빼도 박도 못할 도장을 찍은 것이다.
오래된 빨간 벽돌집에는 눈도장을, 서류에는 진짜 도장을 찍고 난 다음날부터 눈과 입, 손, 발이 쉴 틈 없이 바빴다. 걷는 내내 우리 집과 비슷한 집들을 참고하기 위해 눈을 굴렸고, 밤새도록 핀터레스트에서 검색한 '예쁜 벽돌집, 오래된 집 인테리어, 빈티지 스타일' 등의 이미지는 휴대폰 사진첩에 쌓여갔다. 평상시에 눈여겨보던 건축사무소에도 전화를 걸어 상담을 신청했다.
오래된 주택을 계약한 다음, 뭐부터 해야 할지, 순차적으로 해 나가야 할게 뭔지, 어떤 것들을 결정해야 하는지, 예산은 얼마나 들지.. 어느 것 하나 생각해보지도, 정리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막 뛰어다니다 보니 신기하게도 슬슬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다. 우선, 건축사무소와 몇 번의 상담을 한 끝에 우리 집은 그들이 달가워하는 집은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빨간 벽돌 외관이 좋고, 신축도 증축도 아닌 내부만 조금 손을 보고 싶고, 예산은 쥐꼬리만큼이에요."라고 말하는데 어떤 건축사가 이 무식한 건축주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나저나 '건축주'라는 말은 태어나 처음 들어본다. 후훗)
건축사무소로부터 이 집은 '리모델링'으로 접근하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동네의 주택 선배님들에게 리모델링 업체 몇 곳을 추천받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소개할 우리 가족 소개서를 만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