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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에서 함께로

음악이 주는 합과 가능성

by 마음은 줄리어드

운동을 할 때 혼자였다. 혼자가 편했다. 걷고 싶을 때 걷고 달리고 싶을 때 달리고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즉흥적으로 카페에 들르는 혼자만의 자유로움이 좋았다.


책을 읽을 때도 북클럽보다 혼자가 편했다. 누군가와 책을 나누기보다 나의 단상을 기록하고 다른 책으로 재빠르게 넘어가길 원했다. 세상에 읽고 싶은 책이 무한이었기에 나누고픈 갈증보다 새 책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그런데 음악을 한 이후로 함께가 좋아지고 있다. 내가 첼로나 바이올린을 켜고 있거나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둘째는 기타나 일렉기타를 꺼내 가져오고, 셋째는 바이올린을 켜거나 피아노를 친다. 넷째는 탬버린을 두드린다.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던 첫째도 "나도 베이스나 콘트라베이스 배워볼까?" 라며 음악에 관심을 보인다.


딸 아이 바이올린 켜는 모습을 보다 관심이 생겨 배우게 된 현악기, 우연히 만나게 된 첼로 덕에 가족 밴드를 소망해 본다. 나와 현악기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짝이라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악기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하나일 때보다 여럿의 앙상블일 때 더욱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순간을 갈망한다.

음악을 통한 우정이라는 효용이 있다. 찰스 쿡은 《재미 삼아 피아노 치기》에 쓰길, “당신의 연주가 좋아지면 따라서 교우 관계도 넓어질 것이다. 해가 뜰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확신해도 좋다. 음악은 오랜 기간 동안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끌어당기는 강력한 자석과도 같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 또한 다재다능한 사람이 사회생활도 원만한 법이라고 생각하셨다. 내게 테니스, 브리지 게임과 음악을 가르치신 것도 그런 취미가 있어야 나이를 먹고 나서도 친구를 사귈 수 있다고 믿으셨기 때문이다. 브리지는 마스터하지 못했고 테니스도 도중에 그만두고 말았지만, 음악만큼은 어영부영 내 곁을 지켰다. 어머니 말씀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던 것이, 음악 덕분으로 사귄 친구가 부지기수요 음악이 없었더라면 떠났을 친구도 여럿이다. 내게 음악은 비교적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스스럼없이 집으로 초대할 수 있는 세상에 둘도 없는 핑곗거리였다. 음악을 매개로 맺어진 그룹은 세월의 흐름 앞에서도 굳건하다.
<다시, 피아노>, 앨런 러스브리저, 포노 (PH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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