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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Jul 25. 2023

숨쉬듯 저지르는 무례에 관하여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면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편해질 때가 있다.

학생 때야 운 좋게도 평탄하고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겪는 세상이 친구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그래서 하루 일과를 분 단위로 서로 나누어도 그저 재밌기만 했다.

하긴 낙엽 굴러가는 소리에도 꺄르르 웃을 나이라지 않나, 그땐.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점점 나와 주변인들 사이에 격차가 생기기 시작했고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고 만들어 가며 그 간극은 더욱 좁히기 어려워졌다.


내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 기점은 역시 이혼이었다.

나는 이혼 사실을 부모님에게조차 꽤나 오랜 시간 숨겼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내가 이혼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여전히 더 많다.

이혼이 잘한 결정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테지만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이유는 이혼한 사람에 대한 무례와 편견이 이 사회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어느덧 머리가 굵은 사회인이 된 나는 내게 득이 될 행동과 해가 될 행동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으니까.




누구에게나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원체 친구도 많았고 사회 생활을 하며 생긴 네트워크도 꽤나 두터웠는데 내가 가진 자산이던 인간 관계들이 이혼을 기점으로 나를 짓눌러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게으른 탓에 생전 시도조차 않던 갖가지 취미 활동을 시작했고 거기서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며 마음의 안정을 찾기로 했다.


새로운 환경이 선사한 익명성의 보장은 잠시나마 나를 숨쉬게 했고 내 신상에 대해 일일이 밝힐 필요가 없는 관계 속에서 다시 웃고 떠들며 예전의 내 모습을 찾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때때로 무지에서 기인한 말실수가, 의도치 않은 무례함이 나를 상처받게 했다.


[무례함과 마주한 에피소드#1]

매일 함께 운동하는 여자 아이 하나가 어느날 내게 다가오더니,

"언니 내가 그 얘기 했나? XX 회원님 이혼남이래. 심지어 애도 있대. 대박이지?"

라며 대단한 스캔들이라도 전하는 양 떠들어 대는데 나는 거기에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

워낙 빅마우스인 이 아이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XX 회원님의 이혼 사실을 말하고 다녔으면 자신이 나에게 그 얘기를 했는지조차 헷갈릴까 싶어 씁쓸한 웃음이 날 뿐이었다.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나 역시 저 불쌍한 XX 회원님처럼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강제 아웃팅을 당하겠지, 싶어서.


[무례함과 마주한 에피소드#2]

다니고 있는 화실의 미술 선생은 나보다 열 살 가량 어리고 남자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매우 풍부한 타입이다.

수업을 갈 때마다 내 연애사를 궁금해 하더니 급기야 왜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았냐고 계속해서 물어 난감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결혼을 '아직' 안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 기혼 상태도 아니니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영어로는 'I'm single' 이라고 심플하게 표현하면 되는데 희한하게 우리 나라 말로는 '결혼하셨어요?' 라는 질문에 나같은 돌싱이 이혼 사실을 밝히지 않고서는 도저히 대답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이리저리 말을 돌리다가 결국엔 '했었어요' 라고 짧게 대답했고 그 순간 상대의 당혹스러워 하는 표정과 이어지는 애매한 침묵을 견뎌내야 하는 건 오롯이 내 몫이었다.


[무례함과 마주한 에피소드#3]

각종 동호회나 취미활동 모임에서는 늘 새로운 술자리가 생긴다.

술자리의 단골 안주거리는 역시 연애와 결혼이다.

각자가 자신의 이상형이나 연애관을 이야기하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돌싱에 관한 주제도 간혹 언급되곤 한다.

눈 앞에 앉은 내가 이혼을 겪었을 거라곤 상상도 못한 사람들이 제각기 자신은 돌싱은 죽어도 못 만난다는 둥 자긴 돌싱이어도 예쁘면 된다는 둥 혹은 아이가 없으면 상관 없지만 역시 연애까지만 가능하다는 둥 숨쉬듯 무례를 저지르는데 나는 내 처지를 오픈하지 않은 죄로 한 마디도 참전할 수 없다.




혹자는 요즘 이혼은 흠도 아닌데 뭐하러 숨기고 전전긍긍하냐며 당당히 밝히라고 조언해 주지만 그건 냉혹한 현실을 피부로 느껴보지 못한 사람의 순진한 호의일 뿐이다.

나 역시 만약 남녀 관계로 발전하고자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당연히 처음부터 이혼 사실을 이야기할 것이고 그게 기본 매너라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굳이 내 약점이 될 수 있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는 것을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조금은 아프게 깨달아야 했다.

내 앞에서는 조심하려고 노력하지만 애써도 감춰지지 않던 불편한 기색들을 마주할 때라든지, 나를 향하던 호의가 순식간에 거둬지거나 심하게는 동정으로 변모하는 과정들을 목도하고 나면 다시 그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도 이해할 텐데.

가장 상처였던 건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자 '섹시하다' 고 말했던 사람인데 그 순간 내가 느낀 모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도대체 내가 겪은 상처투성이 가시밭길 이혼의 그 어디가 섹시함과 연결된단 말인가?




거울 치료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 처음으로 약자의 입장이 되면서 매일같이 상처 받는 상황에 놓이고 나니 그간 나 역시도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을지 덜컥 겁이 났다.

얼마나 많은 상황과 상처들이 개개인의 마음에 숨겨져 있는 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무신경하게 내뱉은 말 한마디, 표정이나 제스쳐가 혹여나 그 사람에겐 나애게처럼 지워지지 않을 상흔으로 남았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마음을 힘들게 했다.


관계가 지속되고 깊어질수록 스스로를 더 오픈하지 않고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는 선택을 해야 한다.

속을 열어 꺼내어 보이고 더 가까워지거나 아예 멀어지며 관계를 재정립하든지, 혹은 숨쉬듯 저지르는 무례를 참아 내며 서서히 멀어지든지.

나도 어느 시점에는 이 저울질의 대상이 될 테고, 그 때 적어도 아끼는 상대가 내게 속을 보일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늘 언행에 세심하게 신경 써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르다면 이른 나이에 이혼이라는 큰 상처를 경험한 까닭은 부주의한 무례가 판치는 이 세상에서 적어도 나만큼은 한 번 더 사유하고 두 번 더 배려하는 사람이 되라는 섭리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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