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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Aug 26. 2023

불행의 냄새

불행은 지독히도 역한 냄새를 풍긴다.

정상인이라면 그래서 자연스레 불행한 사람을 피하고 행복한 이의 주변으로 다가간다.

그의 행복한 기운을 나눠 받고 함께 건강한 행복을 누리고 싶어서.

그러나 반대로 귀신같이 불행의 냄새를 맡고 주위로 몰려드는 하이에나들이 반드시 있다.


부모님조차 모르게 이혼을 진행하면서 나는 급속도로 여위어 갔다.

이 사람과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멘탈갑에 긍정퀸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공황장애를 겪으며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는 환자가 되어 버렸다.

마음의 병이 몸에까지 영향을 미쳐 한 달만에 갑자기 8키로 가량 체중이 감소했고 당시 주변인들은 내가 암에라도 걸린 줄 알았다고 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한 상태에서도 나는 애써 웃었고 더 치열하게 살았으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나와의 결혼 생활을 사랑해 마지 않던, 그래서 이혼을 끝내 반대하리라 생각했던 전남편은 예상과는 달리 내가 이혼 얘기를 꺼내자 마자 태도가 돌변해 돈무새가 되었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오랜 시간을 괴로워하고 매일 눈에 띄게 말라 가는 아내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꺼낸 이혼하자는 말에 제일 먼저 나온 대답이 '집은 내 명의니까 줄 수 없어' 였다는 건 아직까지도 나를 허탈하게 한다.

세상 물정도 모르고 혼자 할 줄 아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전남편을 대신해 발품 팔아 임장을 하고 부동산 매매 계약을 하고 세입자 사망으로 인한 상속 이슈를 처리하며 고군분투했던 스스로가 가여웠다.

남자로도, 친구로도 이미 가능성이 없어진 사람에게 그래도 가장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하고 싶어서 공동명의가 아닌 남편 단독 명의로 아파트를 계약해준 과거의 자신이 바보같았다.


사람이 어디까지 쪼잔해질 수 있는지 이혼을 겪으며 나는 절절히 깨달았다.

이혼 조건 조정을 위한 변호사 미팅에 수임료가 아까워 변호사를 선임하는 대신 자신의 어머니를 동반해 참석했을 때 내가 느낀 황당무계함은 누가 알아줄까.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이혼전문로펌의 파트너 변호사가 미팅 중간에 나를 따로 불러 내어 말했다.

제가 의뢰인한테 이런 얘기 하는 건 처음인데, 시어머니 되시는 분도 남편 분도 참 특이하고 대단하시네요. 이혼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몇 푼 안되는 재산을 가지고 싸우기에 너무도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나는 결국 권리 다툼을 포기하고 재산의 상당 부분을 전남편에게 양보하는 것으로 이혼에 합의했다.

나를 사랑했다기보다 나와 함께 하는 결혼 생활에 꽤나 만족했던 전남편은 이혼을 원하지 않았고 어쨌거나 내가 살고자 하는 이혼이었기에 위자료인 셈 치기로 했다.

그래, 너 그냥 이거 다 가지고 잘 살아라 하는 마음으로.




일련의 과정들을 누구와도 나누지 않고 혼자 해내면서 나는 조금씩 미쳐갔다.

주변과 특히 회사에 죽어도 이혼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여전히 대외적으로는 행복한 결혼 생활 중인 사람인 척 연기를 했다.

그러나 서두에 말했듯 불행은 언제나 지독한 악취를 풍긴다.

감쪽같이 숨겼다고 생각했건만 새어 나오는 불행의 냄새를 맡고 나를 뜯어먹으려는 하이에나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처음엔 나를 이해하는 척, 오직 자신만이 내 편인 척 다정하고 은근하게 내게 다가온다.

마음의 병으로 판단력이 불완전한 나는 평소라면 하지 않을 선택을 하거나 너무 뻔히 놓인 덫에 속절없이 걸려 든다.

핸들이 고장난 8톤 트럭처럼 불행과 하이에나들은 합심하여 나를 끝도 없는 내리막길로 몰아 넣고, 무섭고도 암담한 질주를 끝낼 능력이 없는 나는 그 고장난 트럭에 힘없이 매달려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들이 내게 무엇을 원했던 것인지 여전히 알지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내가 불행의 밑바닥에 있을 때 그것을 감지하고 달겨 들어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자들이 분명 있었다.

덕분에 나는 더욱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았고 거기서 나오기까지 매우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제 행복한 사람 곁으로 가고 싶다.

보통의 사람들이 흔히 겪지 못하는 수준의 불행을 연이어 경험한 입장에서 이제 나도 불행의 냄새를 어느 정도 맡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비릿하고 음울하고 역한 악취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한 사람, 밝은 사람의 곁에 있어야 한다.

조금 단순하더라도 따뜻하고 환한 사람, 내가 아직까지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불행의 잔향에서 나를 꺼내어 깨끗이 헹궈줄 사람들의 곁으로 꼭 다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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