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코로나 확진자가 되다
코로나에 걸렸다.
첫 확진이다.
남들 다 걸릴 때 용케도 잘 피해간다 싶더니 막차도 이런 뒷북이 없다.
그간 난 아무래도 항체가 생겼거나 무증상 확진자일 거라고 잘난척 한 것이 무색하게 고열과 오한, 근육통, 인후통, 기침, 가래, 오심까지 온갖 증상을 빠짐 없이 앓았다.
이래서 평소 입조심을 해야 하는 건데.
하필 업무도 바쁘고 개인적인 약속도 많은 시즌에 덜컥 일주일 간의 격리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미팅 일정을 조율할 겨를도 없이 하루 종일 고열에 시달리느라 첫 날은 여러 파트너사에 결례를 범해야 했고 이틀째부턴 겨우 핸드폰을 집어 들고 급한 일들을 대충 처리했다.
3일째에도 열이 내리지 않아 자다 깨면 약먹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했는데 4일째부터는 열도 내리고 입맛도 돌아 제정신을 찾았다.
차라리 아플 때가 나았지 사지 멀쩡한 사람이 남은 4일을 꼬박 열두 평 남짓한 공간에 갇혀 있으려니 고역이었다.
원체 집순이라 모처럼의 휴식을 기깔나게 즐기리라 기대도 했었건만 자의로 선택한 방콕 휴가와 타의에 의한 가택 연금은 확연히 다른 거였다.
당장 먹고 싶은 과자가 있어도 사러 나갈 수 없었고 쓰레기통이 꽉 찼는데도 비울 수가 없었다.
다행히 친구들이 끼니 때마다 배달 음식을 시켜 주고 한두 달은 거뜬히 먹을 만한 레토르트식품을 보내 주기도 해서 배를 곯을 일은 없었다.
냉동 갈비탕을 뜯어 데우면서 문득 지금의 격리 생활이 어쩌면 30년쯤 후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먹기 위해 하루 세 끼를 무조건 챙겨 먹어야 하고 몸이 불편해 혼자서는 외출이 어려운 삶.
내가 살아 있는지를 계속해서 체크해 주는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면 언제 집 안에 엎드러져 죽어도 아무도 모를 수밖에 없는 고독한 삶.
스스로의 힘만으론 생활이 불가능해 남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보니 기분이 묘했다.
다행히도 이 한시적인 격리는 며칠 후면 끝이 난다지만 노년이란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끝나지 않는 수용 생활일 거란 생각에 마음 한 켠이 갑갑했다.
어떻게 하면 보다 슬기롭게, 덜 지루하게 노년의 삶을 보낼 수 있을지 어쩌면 지금까지의 젊은 날들보다 훨씬 길지 모르는 그 때를 위해 섬세하고 세심한 계획이 필요할 것 같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으면 이번엔 재밌는 놈이랑 결혼이나 한 번 더 하지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