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소녀가장이 되었다
2004년 11월,
나는 그 때 17살의 흔한 여고생이었다.
초등학교시절에도, 중학교 1학년때도 동성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해서 여자친구가 어렵고 친구를 사귀는 것 자체가 두려웠던 내가, 여자들만 있는 고등학교에 그럭저럭 적응해가던 고1이었고, 그 날은 어느 과자회사에게는 결전의 날이기도 했던 11월 11일 빼빼로데이였으며, 당시 내 친구는 좋아하는 오빠에게 빼빼로를 주고 싶어했고, 같이 가줬으면 좋겠다 내게 부탁했었고, 거절할 이유가 딱히 없었던 나는 언제나처럼 "그럴까"하고 따라나섰다.
그 친구는 내게는 낯선 동네에서 넓기로 잘 알려진 아파트단지에 나를 혼자 세워두고 밤이 짙어지도록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고,
이대로 혼자 돌아가버렸다가, 위로나 축하도 제 때 못 해준 친구가 되면 어쩌지..
라는 시덥잖은 걱정에 발만 동동 구르며 교복 위에 후드집업하나 걸치고 나온걸 후회했었다. 역시 별것없는 시덥잖은 후회였다. 그렇게 생각할 것도 동이 날 때쯤, 마침내 친구는 웃는 얼굴로 돌아왔고, 나 또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조용히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오니 언제나처럼 불이 다 꺼진 집에 TV 화면만 조용히 빛을 내고 있었고, 그대로 도둑고양이처럼 거실을 가로질러 엄마와 여동생이 자고있을 안방으로 살금살금 향했다. 그 짧은 순간에 힐끔 뒤를 돌아보니 TV 빛에 반사되어 아빠의 안경이 번쩍였고, 혼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냉큼 안방으로 쏙 들어가 잠들어버렸다.
다음날 아침이 밝아서는,
아빠와 눈 마주칠까 두려웠던 나는 급하게 주워담듯 학교갈 준비를 하고, 언제나 그랬듯 아빠가 있을 거실로는 조금도 눈길을 주지않고 현관문만 똑바로 바라보며 집에서 벗어났고, 이내 별일 없이 학교가는 것에 안도했다. 그게 마지막인줄도 모르고.
책상위에 널브러져 꿈만 꾸다보니 어느덧 하교길,
어제의 빼빼로를 포함한 무언가 시덥잖은 소재들을 친구들과 나는 우리집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곱씹고 씹어 재밌다는듯 떠들고 있었다. 버스라도 전세낸마냥. 으레 그렇듯.
그러던 중에 평소보다 날카롭게 내 휴대폰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뭐야, 동생이네"라고 입으로 중얼거리고는 별로 친하지 않았던 동생이 이 시간에 무슨 일로 나한테 전화를 다하지, 별일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휴대폰 너머 동생의 다급하고 정리되지않은 목소리는 곧 "별일"임을 알게 하는데 부족하지 않았다.
언니! 아빠가.. 집에, 아빠가.. 피가 너무.. 막내는..
동생의 정신없는 말들이 곧 휴대폰을 타고 내 머릿속에 혼란을 일으켰다. 마침 버스는 우리집앞에 다 왔고, 같이 있던 친구들은 새까맣게 잊은채 어떻게 온건지 집앞까지 한달음에 달려가니 경찰차와 구급차의 시끄러운 소리가 귀에 날카롭게 박히고, 얼굴도 목소리도 낯선, 아마도 옆집과 그 옆집의 옆집 사람들이 우리집을 에워싸고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날 결국 나는 "우리집"으로 귀가하지 못 했다.
"이 집에 강도가 들었나봐- 어머어머"
"어휴 누가 죽었나보네~ 에구 무서워라"
뭐라뭐라 자기들끼리 걱정하는듯 신이 난듯 말을 하는 부모뻘의 "이웃"들에게 나 역시 "뭐가 그렇게 재밌어 씨발!" 하며 있는 악을 목에 다 바쳐 거칠게 빽- 소리를 질렀고, 다시 그들은 "어머 애가 싸가지가 없네, 부모가 누구야"라는 말을 또 뱉어내기 시작했다.
온갖 잡음과 우리집으로 못 들어가게하는 경찰들 때문에 현실감각이 멀어질때쯤 그 이웃들 너머에서 언제나 그랬듯 내 눈에, 아빠 눈에 세상에서 제일 예뻤던 곱고 세련되었던 엄마가 믿기 어려운 걸음을 떼며 다가오다 이 모든 난리의 중심이 우리집 201호인 것을 알고는 그대로 내 눈앞에서 쓰러졌다.
2004년 11월 12일,
이제 막 겨울이 다가와 가을을 쫓아내기 시작하던 그 쯤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의 집과 내 마음의 한 부분은 그 때 이후로 아직 겨울을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어딘가에 기록해보고싶었던
제 단편적인 기억에 의지한 사실 그대로의 지난 이야기를 써보기 시작합니다. 재미없는 이야기, 좋을 것 없는 이야기라도 상관없다면, 거기 누군가 공감해주거나 위로받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