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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겨울의 일기 _05

"불우이웃"이 된다는 건.

by 흔한사람

17살 아픈 첫째,

16살 꿈많은 둘째,

11살 그 아픔 다 느끼기엔 너무 어렸던 셋째.

폭력과 폭언을 일삼던 병들어간 아빠.

그런 남편을 청부살해한 누구보다 고왔던 엄마.

소스가 필요한 기자들과,

받아내야만 했던 금융계 종사자들.

그리고 "불우이웃"이 필요했던 사회.





다섯이 함께였던 마지막 "우리집"


이제 막 엄마가 구금되고

우리 삼남매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 하는 상황을 알게 되었을 무렵에 받았던 전화다. 벌써 몇번째인지 모를, 뭐라고 하는지, 어쩌고 싶은 것인지, 당시 나로선 알아도 모르고 싶은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 집을 담보로 한 대출금이 상환되어야합니다. 어른 안 계세요? 대체 언제 통화가 가능합니까. 자꾸 이렇게 피하면 저희도 강제적으로 조치를 취할수밖에없어요 학생.


돌아오지 않는 엄마, 관 안에 어느때보다 조용히 잠들어있던 아빠의 모습, 갑자기 한껏 추워진 1월의 공기속에 나보다 어린 두 동생들만 있는 우리집. 가끔씩 현관문을 두들기던 경찰과 기자. 그런것들이 뒤엉켜 나는 혼잣말로 허공에 대고 울음을 토해내며 뱉어냈다.


짜증나 진짜.. 뭘 어떡하라고.. 하아..


그 말에 아마도 반복되는 추궁과 어른의 부재로 대답도 잘 안 하던 나와의 통화에 지쳤을 은행원도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뭐? 짜-증-나? 너같은 애는 길바닥에 앉아봐야돼. 됐어! 이제 어른 바꿔줄 것도 없어. 너네집 경매에 붙을줄알아!


그리고 실제로 얼마 안지나

엄마와 아빠 앞으로 각각 1억여원의 1금융권 부채가 있음을 집이 경매에 부쳐지고 오갈곳없어지고서 알게되었다.





내가 눈물로 꾹꾹 눌러쓴 우리에게 엄마라도 돌려달라, 하다못해 감형이라도 부탁드린다며 법원에 써 올린 편지를 친외가 할 것 없이 친척들이 외면하고 어떻게하면 엄마의 형을 무기징역, 사형을 때릴 수 있을까하며 친가친척들이 기각시키기까지 했을 때 유일하게 우리에게, 나에게 당시의 사회구조에서 복지법을 통해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주던 분이 계셨다.


친척중에 한분으로 거의 5-6년여간 아버지처럼 마음속에 품었던 분이었는데, 덕분에 우리는 동네 구멍가게 위층에 자리한 서울 강서쪽에 전세 4천여만원짜리 집을 주택공사에서 무이자로 성인이 될때까지 대신 지불해주어 지붕아래 잘 수 있었다. 동사무소에서 라면이나 쌀을 얻는 법도 가르쳐주었고, 빵을 사먹을 수 있는 식권도 발급받게 도와주셨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때였나- 선생님께 또 무슨 말로 조퇴를 받아야하나 망설이다 조퇴를 했다. 어린이날 행사로 어린이대공원에서 불우이웃인 아동을 부르는데 참석해야만 후원금으로 10만원이었나 30만원이었나 받을 수 있었다. 나도 고3이고 피하고 싶었지만, 살 수 있는 방법들을 가르쳐주고 알아봐주시는 친척분을 위해서라도 장녀인 내가 당시 초등학생이던 막내의 손을 이끌고 갈 수 밖에 없었다.


달달이 우리앞으로 나오는 돈은 30여만원이었기에 뭐라도 해야했다. 당시 친척분이 나타나기 전까진 방법은 모르지만, 돈이 필요하다는건 알았기에, 여차하면 우리 셋은 고아원행이었으니 나는 아무도 사고싶지않을 내 영혼과 몸을 팔 각오도 다졌었다. 그러니까 그런 것쯤은 괜찮아-라며 스스로 다독였다.


막내를 데리고 여전히 길치인 나는 어린이대공원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리고 야외무대 쪽에 설치된 세트위로 올라섰고, 부모님과 혹은 친구들과 어린이날의 기쁨을 손에 쥔 풍선처럼 가득 품은 아이들 앞에서 나와 내 동생은 고개를 숙이고 감사를 표하며 그 돈을 받아들고 행사가 끝나기무섭게 집으로 도망쳤다.






이제 막 우리 삼남매가 고립되었을 무렵에 우리들처럼 가정내 범죄에 의해 피해자로 남겨진 아동들을 보호하는 단체가 이제 막 생겼었다. 우리는 그 단체의 시범케이스 중에 하나였었고, 나이가 믿기지 않을만큼 고상하고 멋스러운 중년 어른들로 구성되어있었다. 그리고 방송에 나가야하는 인터뷰가 필요했는데 당시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사춘기가 크게 왔던 예민한 둘째도, 인터뷰를 하기엔 너무 어렸던 막내가 아닌 내가 하게 되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막막했는데 마이크가 앞으로 와서 도움을 받으며 어떤 생각을 했냐는 식의 질문에 나는 입을 뗐다.


어른이 없는 우리만 있는 집이 무서워요. 무서운데 이렇게 어른들이 가끔씩 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더이상 말을 잇지 못 하고 목이 메여 울 수 밖에 없었다. 인터뷰를 부탁한 단체 사람들이 미안함에 같이 눈물을 훔친 것 같았다. 그리고 곧 뉴스였나.. 모자이크 된 머리도 옷매무새도 헝클어진 불쌍하게 울먹이는 내가 전파를 탔다.


그 뒤에 KBS 동행이라는 프로라던가, 출연하고 우리 삼남매가 사는 모습을 촬영해서 더 많은 도움을 받으면 어떻겠냐는 친척분의 제안이나 기자들의 연락이 있었지만, 일체 거절했다. 보고싶지않았다.


어릴 때 누구나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같은 노래를 부르고 많은 아이들은 그리 되길 꿈꾸지만, 굳이 울 수 밖에 없는 나같은걸 나는 보고싶지않았다.





그 단체의 상냥하고 멀끔한 분들이 자신의 가족 외식을 V 패밀리레스토랑에서 가졌는데, 그 자리에 우리를 불렀다. 이 때 역시 둘째는 한창 섬세하고 예민할때라 어린 막내를 챙기기위해 내가 참석했다.


아저씨는 고급 승용차 트렁크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하나 꺼내서 막내에게 선물해 주었는데, 똑같은 것을 아저씨의 아들에게도 주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쯤이던 우리 막내보다도 한참 어린 아이였다.


처음으로 패밀리레스토랑이라는 곳에 와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나는 원래도 편식쟁이였는데 라면, 김치, 빵 같은 것에 완전히 익숙해진 상태라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막내만 맛있게 먹으면 그것만으로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충분했다.


그러다 아저씨네 어린 딸아이가 말을 했다.


"언니, 오빠네 엄마 아빠는 어딨어?"


순도 100%에 천진난만한 그 꼬마의 물음에 나도 막내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식사를 어떻게 끝마쳤고 그 어른들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방학시즌이 되면 봉사점수 때문에 우리집에 동사무소등에서 소개받고 집안일을 거들러 오는 대학생들이 있었다. 그들도 이제 막 스물이 넘은 어린 친구들이었고, 나는 그들과 한두살 차이뿐이 안 나는 고3이었다. 나는 그들처럼 대학생이 되지도, 봉사점수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어색하게 왔다가 라면을 먹고 쌓인 설겆이를 하거나 바닥을 쓸고 우리 눈치를 보다 슬그머니 돌아가고 대게는 두번 보기 힘들었다.


또 한번은 역시 내가 학교를 조퇴하고 막내 손을 잡고 인천공항 스카이라운지에서 열리는 만찬 행사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그 곳엔 뷔페가 차려져 있었고, 나와 막내가 모르는 요리들로 가득했다. 나비넥타이를 한 꼬마신사들과 빨간 에나멜 구두에 하얀 레이스 양말을 신은 꼬마숙녀들을 에스코트하는 그들의 부모님들이 가득한, 같은 나라, 다른 세상 사람들이었다.


행사가 진행되면서 우리가 자리한 테이블을 진행자와 스포트라이트가 가리켰고, 막내 손을 잡고 우리는 일어섰다.


우리 주위에 불우한 아동들입니다. 우리 모두 이 이웃들을 기억하며 맛있는 식사를 시작합시다!


같은 멘트였다.

수많은 나비넥타이와 에나멜구두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고 우리를 바라보며 안쓰러운 눈빛을 쏘아댔다. 그 날 역시 어떻게 먹고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도와주고 봉사해주었던 이들이

잘못하거나 부족했던건 전혀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내가 그들에게 보답하듯

더 크고 바른 사람이 되야한다 생각했다.


도움받아야하는,

내가 얼마나 힘이 들건 감사해야하는

스스로가 비참함을 이겨내지 못 했던 것 뿐이다.

다른이들의 권리나 행복, 경제력을 자연스럽게 두른 이들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이들과 마주할수록 스스로를 자책하고 원망할 수 밖에 없이 자존감은 자꾸만 바닥을 치닿았다.


나도 숨거나 부끄러워하지않고

떳떳하고 당당해지고 싶다.

내 단점이나 실수에 스스로 관대해지고 싶다.


아무도 사랑해주고 격려해주지 않음에

슬퍼하지도 쓸쓸해하지도

표정을 잃어가고 싶지않다.


아무도 질책하지도 혼내지도 용서해주지 않음에

나 자신을 하나 더 만들어

내가 나를 혼내고 탓하는 것도 그만두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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