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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mal Feb 19. 2024

홍길동과 신데렐라.

전쟁터에 나오간 했는데요. 도와주세요...(대목차)

나는 병동에 배치받는지 얼마 안 된 병아리 신규 간호사였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알아가는 것도 힘든데 이리저리 업무를 주셨다. 솔직히 알을 내가 깨고 나왔기보다 시간이 지나 누가 와장창 내 알을 깨버려서 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간호를 배운 지 어언 7년 학생으로만 살다가, 간호사가 되었는데 학생에 익숙해져 살다가 세상에 내동댕이쳐지니 현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학생부터 시작해서 입사하기 전까지 간호사의 세계에 대해 익히 들었었다. 신규 간호사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는 것이었다. 실습하면서 그 현장을 목격하기도 했기에 현실이니까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입사하기 전부터 공부에 하고 들어가려 했지만, 면허증이 나오기 전부터 입사하게 되어서 나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한숨과 기운이 빠지는 것은 일상이 되어갔다. 병원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내 머리에 뭐가 들어있는지 생각하며 멍청이가 된 것 같았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항상 죄송하고 모자라고, 실수투성이다. 프리셉터 선생님이라도 내 곁에 있어 주면 좋았을 텐데 나는 프리셉터가 있지만 없었다.     


병원에서는 프리셉터, 프립세티 제도가 있다. 선배 간호사가 후배 간호사를 데리고 다니면서 병원에 잘 적응하게 도와주며 가르쳐주고, 공부하게 과제를 내주는 것이다. 병원에서 프리셉터는 ‘엄마’ 같은 존재다. 나는 입사 전부터 “제발 다 필요 없으니, 프리셉터만 잘 만나게 해 주세요...”라며 간절히 빌고 다녔다. 운명의 장난도 정도껏 치셔야지 잘 만나게 해달라고 했는데 난 홍길동이 되어버렸다.     


설명해 보자면 나는 A팀이고, 프리셉터 선생님은 B팀이다. A팀과 B팀은 간호사 스테이션이 나뉘어 있고 벽으로 막혀있어서 만날 수가 없다. 더군다나 내 근무표가 데이 (6:00~15:00)라면 프리셉터 선생님은 이브(14:00~10:00)이다. 내가 만약 이브면 프리셉터 선생님은 데이다. 아버지가 있는데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던 홍길동처럼 나도 프리셉터 선생님이 있는데 부를 수가 없었다.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된 나를 위해 프리셉터 선생님은 A팀에 있는 선생님께 나를 부탁하셨다. 근데 안타깝게도 그 선생님과도 시간표가 맞지 않았다. 나는 같은 시간표에 있는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무엇이든 배우려고 노력했다. 독립하기 전까지 어떻게든 선생님들께 배워야지 독립해서도 조금이라도 환자에게 좋은 간호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주 일차가 될 때쯤 나는 A팀 프리셉터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다른 선생님이 “너 프리셉터가 누구야?”라고 묻자 우물쭈물하고 있던 내 뒤에 선생님이 “제가 담당이에요. 그렇게 됐어요.”라고 하셨다.      


예감이 썩 좋지 않았다... 갑자기 험난한 일상이 예정된 기분이 들었었다. 슬픈 예감은 어찌 틀리지 않을까. 내 프리셉터 선생님은 말하는 표현방식이 긍정적인 분이 아니었다. 첫날부터 “나 성격 별로 좋지 않아서 말은 그렇게 하는데, 본심은 아니에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알면 고쳐야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그래 사람 말하는 것마다 스타일이 다르니까... 열심히 해보자!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맨날 “선생님은 생각이란 걸 해요?”, “아니 왜 이렇게 이해력이 안 좋지?”, “집에 가서 뭐 해요? 공부 안 해요?” “모르는 거에 자신감을 갖지 마요.” 등등 매일 이런 소리를 듣다 보니 나의 자존감은 밑바닥을 치고 땅굴을 파서 내려갔다. 그 와중에 더더욱 힘들었던 건 환자 앞에서 그런 말을 듣는 게 제일 힘들었다. 스테이션 와서 이야기해도 될 걸 왜 환자 앞에서 할까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생활은 지옥인데 고개를 돌려 다른 동기들을 보고 있으면 다른 프리셉터 선생님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천천히 알려주시며 “실수해도 괜찮아. 처음이니까!”라는 말씀을 하시고 묻는 말에 틀려도 “앞으로 자주 나올 거니까 공부해 와~”라는 따듯한 풍경이 벌어졌다.     


동기들이 부러웠다. ‘솔직히 내가 잘했으면 될 일이었지만, 신규가 부족할 수도 있지. 나에게 죄가 있다면 프리셉터 선생님보다 늦게 태어나서 병원에 늦게 들어온 것밖에 죄가 없지 않나? 자기는 신규 때 얼마나 잘했길래!’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난 신규 때도 잘했어 내가 이러는 게 억울해?”라는 말씀을 하셨다. 억울하지 않다고 대답했지만, 솔직히 억울했다. 자기는 6년 차고 난 고작 일주일도 안 된, 그냥 신규 나부랭이인데.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병원에 가기 너무 싫어졌다. 그래도 병원에 가야 하니까 열심히 갔다. 출퇴근길 나의 머릿속에 2개의 노래가 항상 반복됐다. 그 두 곡은 ‘부석순 – 파이팅 해야지’와 ‘신데렐라’ 노래다. 출근길엔 힘내보자며 “파이팅 해야 쥐~”라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출근하고, 퇴근길에는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당했더래요~” 이 노랫말에 내 이름을 넣어 Normal 이는 어려서 프리셉터를 잃고요~ 계모와 선생님에게 구박을 당했더래요~”라고 부르며 집에 갔다. 이런 작은 것들이 내 마음을 다독이게 해 줬다.     


힘든 마음들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프리셉터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하며 그만두라며 그거 태움이라고 이야기하지만 프리셉터 때문에 병원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시간과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 나는 성장할 거고 프리셉터에게 혼나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언젠가 프리셉터 선생님보다 더 나은 간호사가 되어야지 생각하며 열심히 병원 다녀야지! 마음을 먹었었다.     


‘홍길동’, ‘신데렐라’ 이외에도 어떤 등장인물이 나에게 와 내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의 목표는 ‘프리셉터 보다 나은 간호사가 되자.’이다. 그 후는 잘 모르겠지만 좀 더 성장하면 내 꿈과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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