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병풍입니다.
대학교 입학해서 고등학교는 끝난 줄 알았지...(대목차)
간호학과를 다니면 빼먹을 수 없는 필수 코스가 있다. 바로 ‘실습 1,000시간’이다. 2학년까지는 학교에서 실습하는 호화스러움을 누렸다. 돌이켜보니 호화스러움이지만 그 시절에는 핵심 술기에 많은 쪽지 시험이 힘들다며 투덜대면서 다녔다. 학교 다니면서 앉아서 수업을 듣다 보니 망각했나 보다. 그냥 앞날을 모르고 투정 부리는 으른이었다. 3학년이 되어 병원으로 실습을 나가게 됐다. 다른 동기들은 걱정 반, 설렘 반 병원 생활을 상상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780시간 이상 병원 실습을 해본 설렘은 고사하고 막막한 앞날을 생각했다. 병원에서 ‘학생’의 역할은 바이탈의 노예와 병풍이다. 설레는 동기들의 모습에 나는 동태눈을 뜨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지금이라도 설레고, 마음껏 웃어. 곧 지옥이 펼쳐질 테니.’
전쟁터에 나가려면 총이 필요하듯 병원 실습에서도 필요한 준비물들이 있다. 필요한 준비물들을 하나씩 챙겨보자면 실습복, 간호화, 머리망, 볼펜, 형광펜, 수첩, 포스트잇, 가위, 압박스타킹(압박 스타킹이 없으면 다리가 작살나는 경험을 할 것이다). 흰 양말, 판때기, 한입에 숨길 수 있는 간식, 실습 지침서, 병원에 따라 체온계 정도다. 텀블러는 가져가도 그대로 가져오기 때문에 필요 없다 (몰래 먹는 물이 꿀맛이다). 아! 꼭 필요한 것을 놓쳤다. 정신은 필수다. 실습 중간에 정신이 도망가려 해도 잘 붙잡아 두어야 한다. 안 그러면 반 시체처럼 돌아다닐 수 있다.
간호학과 3학년이 되면 학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2 배수 수업을 하고 실습을 나가게 된다. 나는 2 배수 수업을 마치고 첫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간호사는 3교대로 일하기 때문에 실습도 그 듀티에 맞춰 실습하게 된다. 데이, 이브, 나이트로 나뉘는데 대부분 학생은 나이트를 하지 않지만, 나이트를 하는 학교가 있다. 첫 출근으로 데이에 배정받아 아침 7시까지 출근했다.
학생 간호사에게 주어진 업무는 다양한 듯하면서도 별로 없다. 바이탈, 혈당 측정, 침상 정리, 심부름, 선생님들 따라다니면서 관찰하기 등 딱 그 정도다. 이 일들이 끝나면 앉아 있으라는 선생님도 계시지만 대부분 의자 수도 부족하고 눈치가 보여 앉을 수가 없다. 그럴 때 학생들은 스테이션 뒤에 서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병풍 같아 간호 대학생들의 별명은 ‘병
풍’이다.
출근하면 바이탈의 노예, 심부름꾼, 병풍의 삶이 시작된다. 첫 일과는 바이탈의 노예답게 환자분들의 바이탈을 잰다. 바이탈에 대한 환자분들의 반응은 반으로 갈린다. 고생한다면서 팔을 대주시는 환자분들도 있지만, 하루에 몇 번씩이나 재는 거냐면서 화를 내시는 분이 있다.
바이탈 하면 꼭 생각나는 환자분이 있다. 그때의 나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있었던 상태였다. 대인기피증까지는 아니었지만, 바이탈을 측정하러 환자분들께 갈 때면 도망가고 싶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제발 말을 안 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환자가 아니라 학생이 도망가고 싶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창피하기도 하고 웃긴 일이다.
진짜로 도망칠 수는 없으니 웃으며 환자분들과 이야기도 하고 나름 평탄하게 바이탈을 돌고 있었다. 순서대로 재다 보니 그분의 차례가 돌아왔다.
“무슨 혈압을 또 재! 나 귀찮으니까 혈압 한 번 잴 때마다 천 원씩 가져와!”
역시 하루도 빠짐없이 소리를 지르신다. 배우려고 병원에 왔지만,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돈 내고 병원 나와 노동력을 제공하는 마당에 환자분께 돈까지 드려야 하는 상황이라…. 환자분과 싸울 수는 없으니 나는 이런 상황을 하루에도 몇 번씩 재치 있게 넘어가야 한다.
“에이 환자분 건강해지시라고 제가 특별히 더 자주 재는 거예요.”
“제 마음 아시죠??”
“알긴 뭘 알아! 귀찮으니까 그만 와.”
“네 또 올게요. 어디 가시지 말고 자리에 계세요.”
혈압 재는 시간에 담배 피우러 나가시면 창과 방패처럼 대화를 나눴다. “담배 피우러 가시지 말랬죠!”라고 말씀드리면 “내 유일한 낙이야~”하며 이야기 티격태격했다. 이 환자분을 생각하면 병원 생활에 소소한 즐거움과 스트레스를 동시에 주신 유쾌한 환자 분이셨다.
대학병원에서 실습하던 중에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가 입원하셨다. 할아버지는 해열제 및 항생제를 다양하게 쓰는데도 고열이 지속되었고, 많이 지치신 상태였다. 그 옆에는 할아버지를 간병하시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할머니 연세가 많으신 편이었기 때문에 그 두 분께 마음이 많이 갔다. 마음이 많이 쓰인 만큼 이 두 분은 병풍에서 잊지 못할 기억을 선물해 주셨다.
실습하게 되면 환자 한 분을 선택해서 케이스를 작성해야 한다. 이 두 분을 만난 후 케이스 대상자보다 더 자주 보고, 챙겨드렸던 것 같다. 고열로 힘들어하실 때 아이스 백이 다 녹지 않게 자주 갈아 드리고, 미온수로 적신 수건으로 신체를 닦으면 체온이 내려간다는 방법을 알려드리거나, 바이탈을 자주 측정하고, 할머니 혼자 거구 할아버지의 기저귀를 갈기 힘들었기에 기저귀를 갈 때마다 도와드렸다. 해드리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고작 학생 신분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학생 신분에서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환자분과 할머니를 도와드렸다. 이때 다짐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환자를 살리는 간호사가 되겠다고.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난 시점 할머니는 많이 지치신다며 할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전원 가신다고 하셨다. 그때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마음속에 지금까지 남아있다.
“오늘 왜 늦게 왔어…. 못 보고 가는 줄 알고 계속 찾았어.”
“내가 이제 남편 간병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요양병원 알아봐서 가려고.”
“내가 이 병원에서 기억에 남는 건 normal 선생님밖에 없을 거야.”
“내가 치매가 걸리거나, 저승 가더라도 normal 선생님은 꼭 잊지 않을게.”
“normal 선생님은 정말 좋은 간호사가 될 거야 건강하고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
학생 간호사는 1주일은 데이 1주일은 이브 이렇게 돌아가기 때문에 첫 주에 데이를 했었기 때문에 둘째 주는 이브였다. 만약, 저번 주가 마지막 주였더라면 이런 말씀도 못 들었을 것이다. 간호학과를 그만두고 싶거나, 병원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나를 잡아주는 말이 되었다. 많은 간호 학생이 간호학과를 다니면서 수많은 힘든 일이 있어도 이런 순간들 덕에 잘 버텨서 간호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병원에서는 2주간 스쳐 지나가는 한명의 병풍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학생으로서 좋은 경험을 많이 쌓으면서 뿌듯한 병풍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