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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mal Feb 16. 2024

내가 간호학과 그리고 병원에 입사한 이유.

백의의 천사가 아니라 전사가 되는 법을 배웠다.(대목차)

한 번도 제대로 말한 적이 없다. 간호학과에 입학한 이유. 정신간호를 배우고 싶다. 부모님이 간호학과를 원하셨다. 할 수 있는 게, 해본 것이 이것밖에 없다. 꿈이 없다. 이런저런 이유들 뒤에 숨었다. 솔직히 나만 아는 이유가 있다. 저기 수많은 이유들 중 거짓말인 이유는 없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바른 사람,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 바른 어른을 묻는다면 아직 그 답을 찾지는 못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고민하고 있으니까. 간호학과에 그리고 병원에 입사한 이유를 말하다가 갑자기 좋은 어른?이라는 주제로 넘어가서 의아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나의 좋은 어른을 설명해야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나이 15살, 심한 장염에 걸렸었다. 장염에 걸린 나흘 동안 먹은 건 포카리스웨트 2병 남짓. 4일 동안 참을 대로 참은 엄마는  병원을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나를 끌고 00 병원으로 향했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진찰을 받은 후 의사 선생님은 엄마에게 호통을 쳤다. 


"왜! 애를 이제 데려오셨어요. 조금만 늦게 데려왔으면 탈수로 위험할 뻔했어요. 입원시키시죠."


엄마만 억울하다. 안 가겠다고 버틴 것은 나인데 엄마만 혼나고 나는 결국 입원을 했다. 병실에 도착하여 나는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바로 '수 간호사선생님'이었다. 맞다. 내가 간호학과에 그리고 병원에 입사한 이유 바로 '수 간호사 선생님'이다. 


이상하게 그 아픈 와중에 수 선생님만 보였다. 첫인상은 부드럽고, 착해 보이셨다. 아기 때부터 자주 입원을 했다는데 기억하는 입원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 간호사 선생님은 매일 아침마다 병실을 돌며 환자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셨다. 그런 모습들이 내 눈에는 좋은 사람이라고 비쳤나 보다. 내가 입원 한 2주라는 기간 동안 수선생님은 매일 병실을 돌며 환자들을 살피셨다. 그런 모습을 계속 보게 되니 '수 선생님 = 좋은 어른' 공식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장염이 다 낫고 퇴원을 하게 되었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내 인생의 간호는 그게 끝일 줄 알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시작이었다는 것을... 왜냐하면, 나는 태권도로 체대 입시반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고 내 꿈은 태권도 사범이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중학교 3학년 나는 운동을 하기 위해 집 앞에 있는 인문계를 가기 원했다. 성적도 되었고, 집이랑 가깝기 때문에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엄마의 생각은 달랐다. 엄마는 다른 지역에 있는 간호 고등학교를 가기 원하셨다. 인문계를 다니면서 운동까지 하면 성적을 제대로 얻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한 달 동안 엄마와의 싸움 끝에 운동을 계속하겠다는 조건으로 간호고등학교를 갔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데 우리 엄마는 이겼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이 터졌다. 같은 반 친구가 달려오다가 다리를 잘못 밟고 넘어지면서 십자인대가 다치는 사고가 벌어졌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나는 재활에 전념했다. 얼른 나아서 운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행이 시작된다. 진료를 봐주던 의사 선생님이 검사결과를 유심히 보시더니 십자인대가 잘못 틀어져 또 다치면 어쩌면 못 걸을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부모님은 그날로 운동을 그만두게 하셨고 나의 운동 생활은 끝났다. 


매일이 우울했다. 학교를 갔다 오면 방에 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히키코모리'라는 별명도 붙여졌다. 나는 학교를 가는 게 어디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이 지나 학교에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고 병원 실습 공지를 했다. 자격증이고 뭐고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부모님과 선생님들을 이길 자신이 없어 그냥 했다. 다행히도 집에서 가까운 00 병원으로 배치받아 이동시간은 많이 줄였다. 


방학이 되었고 나는 그 즉시 00 병원으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실습의 방식은 한 달에 한 번씩 부서 이동을 하며 실습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병동 실습을 머릿속에 한 문장만 떠다녔다. 아. 나랑 간호 더럽게 안 맞네. 하루종일 서있은 것도, 밥도 편하게 못 먹는 것도,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인간으로서 할 것들을 못하니까 안 맞다고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나 부서이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 수선생님이 계신 병동으로 가게 되었다. 그 병동에서의 서사는 길다. 짧게 요약하자면 수 간호사 선생님과 다른 간호사 선생님들은 나를 병아리라고 부르며 잘해주셨다. 그러나 이제는 엄마보다 나이가 많으신 간호조무사 선생님 두 분께서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괴롭히는 방식은 다양했다. 목이 짧다. 얼굴이 왜 그렇게 생겼냐부터 점심시간에 나만 빼놓고 먼저 식당에 가거나 아주 다채롭게 괴롭히셨다. 그 사건을 겪고 나는 다짐했다. 아. 내가 환자 말고 병원에 다시 발을 들이면 미친년이다. 라며 매일을 그 말을 곱씹으며 실습시간을 버텨냈다. 그때 그만뒀어야 했는데 그러면 지금 간호사도 안 됐을 건데...


그럼에도 실습에서 버틴이유는 단 하나 '수 선생님'이었다. 여전히 매일 환자를 보시고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보호자들의 컴플레인에서 후배 간호사들을 지켜주시는 멋지신 분이었다. 간호사는 물도 밥도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는 직업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 병동은 달랐다. 수 선생님께서 어떻게든 밥을 먹고 오라며 식당에 보내셨고, 오버타임이 발생하면 얼른 집에 보내려고 하셨다.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사로 잡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수 선생님 밑에서 일하면 간호사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좋은 어른,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나는 간호대에 진학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나는 노력 끝에 간호대에 입학했고, 우여곡절 끝에 4학년까지 왔다. 과로를 너무 했는지 국가고시를 2달 앞둔 시점에서 신우신염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00 병원이 500 병상 정도로 병상이 늘어나기도 또한 병원 위치도 바뀌었기 때문에 그 수 선생님을 궁금해만 했지 만날 줄을 몰랐다. 밤새 응급실에 있다가 겨우 통증이 조절이 돼서 병실로 와서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그 수 선생님이 내 눈앞에 계셨다. 대단한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눈앞에 그분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분은 몇 년이 흘러도 변하시지 않았다. 내가 존경한 그대로 계셔주셨다.


사실 입원한 그날은 00 병원 면접을 본 날이었다. 간호사의 꿈을 가지게 해 준 이 병원에서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병원면접을 어떻게든 보려고 참았다. 응급실에서 엄마가 오늘 여기 면접 보려고 애가 이렇게 참았다는 말에 내가 간호대 4학년 학생이라는 것과 이 병원 입사지원한 것까지 병동에 다 퍼졌다. 떨어지면 얼굴을 못 들고 다닐 것 같아 빨리 퇴원하고 싶었는데 입원 중에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나는 다짐을 참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또 다짐했다. 내가 입사할 병동은 이곳이라고 그리고 나는 존경하는 수 선생님이 계신 그 병동에 신규 간호사로 입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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