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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mal Feb 21. 2024

간호사는 잘하는 게 당연하다.

전쟁터에 나오기는 했는데요. 도와주세요... (대목차)

A팀에서의 시간이 끝나고 신규들의 팀이 바뀌는 일이 있었다. 팀이 바뀌고 드디어 나는 B팀 프리셉터 선생님을 만났다.  B팀 프리셉터 선생님과 일을 할 때 선생님이 해준 말씀이 있었다.  


“간호사는 잘하는 게 당연한 거야. 못 하거나 실수하면 사람 죽이는 거야.”


충분히 공감하는 말이고 그 이유로 ‘간호사’라는 직업을  망설였다. 일반 회사나 다른 직업은 실수하면 다시 하거나 수습할 수 있는데 간호사는 실수하면 사람 목숨이 위험해지거나 돌이킬 수가 없다. 그런 무서움에 간호사라는 직업을 망설였고, 병원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웠다.


3월에는 병원에서 사건·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달이다. 아이들이 3월에 학교에 입학하고, 학년이 올라가듯 3월에 병원에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사건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병원에 입사해서 한 달간 중환자실에 대해 경험하고 교육받는 시간을 가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중환자실이라 니 이게 말인가...싶었다. 한 달간의 중환자실에서의 교육을 마치고 병동으로 배치받았다.


처음으로 한 일은 약물 mix와 입원 환자 받기였다. 입 원환자라니! 입원환자라니! 아니 면허만 있고 아무 말도 못  하는 감자일 뿐인데 저에게 어찌 환자를 받으라는 말씀입니까! 하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었다.  환자분이 올라오기 전에 일단 자리 정리를 하고, 이불이랑 환자복 등을 가져다 놓았다. 환자분이 오셔서 간호 정보 조사지를 작성했다. 그다음 낙상, 욕창, 통증 평가를 하고 팔찌를  끊어 환자분 팔목에 붙여드렸다. 자리에 가서 바이탈을 재고,  낙상 예방동의서를 받고 병원에 관해 설명해 드리고 후 처치를 했다. 카덱스 정리해야 되는데... 카덱스 정리는 무슨 처치하기 바쁘다. 이러다 보면 기본적인 것도 못 했는데 한세월이  지나가 있다. 뭔가 허둥대며 열심히 했는데 선생님께서 물어보시면 한 게 없다...


나 뭐 했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할 시간이 없다.  새로운 환자 분의 투약과 차팅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이 환 자분만 하는 것도 벅차지만, 이미 내가 간호하는 다른 환자분 들도 있었다. 그분들의 라운딩, 투약, 차팅, I/O도 남아있었다.  그리고 대망의 끔찍하게 두려운 인계가 있다. 진짜 한 게 뭘 까? 일이 많이 남아있어서 속이 타들어갔다.


일은 인계 끝나고 해도 되니 인계를 시작했다. 내가 컴퓨터를 보며 중얼거리면 프리셉터 선생님이 대신 말씀해 주시는 데, 내가 인계하는 것인지 선생님이 인계하시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내 환자니 내가 인계를 해야 하는데...라는 조마조마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내 능력치는 역부족이었다.


환자분을 받는 건 언제 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약물 투여를 하게 되는 시간이 돌아왔다. 사고를 치지 말아 야지 하면서 5R를 확인하며 투약한다고 했는데 사고를 쳤다.  내가 사고를 친 약물 이름은 ‘라베신’.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을 떨어뜨리는 용도로 사용하는 약물인데 0.5 앰풀만 드려야  했는데 1 앰풀을 다 드렸다. 그때 심정은 ‘내가 간호사가 맞나? 나가 죽자...’라는 심정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환자의 혈압은 떨어지지 않았고 큰일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환자 안전 보고서’를 썼다. 보고서를 쓰는데 신규를 혼자 내버려 둘 수 없다며  병동 선생님이 같이 도와주셨다.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시곗바늘이 12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 딱 11시 30분까지만 기다릴 거야!”

“나 진짜 45분까지만 시간 줄 거야.”

“이제 12시라고 집 좀 가자.”


죄송스럽게도 선생님이 주시는 시간은 점점 늘어갔다. 시 간이 가는 동안 선생님의 눈가에 다클서클이 번지고 있었다.  신규 나부랭이 하나 때문에 무슨 고생이실까. 얼른 하고 가자,라는 마음이 계속 들었지만, 기계처럼 뚝딱뚝딱하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일일이 하나하나씩 이야기해 주셨고, 나는 그대로  키보드를 치며 받아 적었다. 12시가 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환자 투약 사고도 내고, 전산도 못 하고 내가 일할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을 하며 옷을 갈아입고 병원 입구를 나가며  퇴근 지문을 찍는데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다.


“오늘 고생 많았어. 자책 많이 하지 말고 다음부터는 더 조심해서 사고 치지 말자.”

“신규라서 그럴 거야. 안 그래도 힘들 텐데 집에 가서 얼른  쉬어.”


아무리 프리셉티가 아니어도 신규 때문에 2시간 넘게 오버타임을 하면 화가 나실 법도 한데 선생님은 화도 안 내시고,  나를 혼내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다독여 주시면서 응원의 말을 해주셨다.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집에 가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항상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 오늘 사고 치지 말자!, 열심히  하자를 다짐했었다. 하지만 이 일을 겪고 나의 마음속 깊이 새 겨진 문장이 있다. ‘일 잘하는 간호사가 되자 그래야 환자 지 킬 수 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매일 출·퇴근할 때 이 문장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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