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프리셉터 선생님
전쟁터에 나오긴 했는데요. 도외주세요... (대목차)
신규 입사 후 1달 동안은 중환자실에서 교육을 듣고, 2번째 달은 A팀, 3번째 달은 B팀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다양한 경험을 하라는 병원의 전략이었지만, 환경이 바뀌는 것에 적응하는 것이 힘든 나에게는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A팀에서 한 달여의 시간을 보내고 B팀으로 이동했다. A팀은 중증도가 B팀에 비해 낮은 대신 입·퇴원이 많고 B팀은 A 팀의 반대였다. 홍길동과 신데렐라를 읽었다면 아는 이야 기겠지만, 나에게는 두 분의 프리셉터가 있었다. 나의 프리셉터 선생님은 원래 B팀이지만 신규 간호사를 공평하게 팀을 나누려고 나는 A팀에 보내졌다. A팀에 있는 동안 2~3일 정도 B팀 프리셉터 선생님이 나를 데려다가 일을 가르쳐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나 자신을 더 깎아내렸을 것이고, 아마 3개월도 못 채우고 병원을 뛰쳐나갔을 것 같다.
B팀에 이동했을 시점에 솔직히 괜찮지 않았다. A팀에 있었을 시점부터 난 서서히 망가져 가고 있었다. B팀 프리셉터 선생님을 처음 만난 날 나는 화장실에 달려가 토를 했다.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처음 만나는 날이라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속이 상했다. 그런 나를 위해 선생님은 괜찮냐면서 약을 건네주셨다. 그러나 약의 효과는 얼마 가지 못했고 나는 땀을 한 바가지를 흘렸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따듯했다. 선생님이 날 위해주는 마음이 나를 감싸주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의 친절함과 노력에 비해 나는 잘 따라가지 못했었다. 학교 동기들의 태움 연락을 받을 때 나는 오히려 내가 선생님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날마다 고민했었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나는 집 - 병원 -도서관 루트를 매일 같이 반복했다. 그러면 좀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나는 배신당했다. 어제 가르쳐주셨고, 심지어 공부도 하고, 출근 전에 한 번씩 훑어보고 출근했었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이 질문하시면 대답을 못 했다. 머릿속에 지우개 가 들었나? 아니면 내 해마는 일을 안 하는 건가? 이런 내 머리가 원망스러웠었다.
대답만 못 하면 양반이지 맨날 버퍼링에 걸렸다. 선생님은 하루에 몇 번씩이나 나의 버퍼링을 깨주셨다. 나는 멀티가 되지 않는다. 한 번에 한 가지씩 해내기도 솔직히 벅찼다. 나의 단점이지만, 말을 이해하려면 집중을 해야 이해할 수 있다. 어 떤 일을 하던 중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았고,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려고 집중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멈춰져 있었다.
“내가 버퍼링 걸리지 말랬지!”
“정신 차리고 일해야지~ 손은 움직이면서 들어.”
“네... 죄송합니다.”
프리셉터 선생님 앞에 서면 나는 ‘버퍼링’ 상태였다. 버퍼링에 많이 걸린 날에는 퇴근길에 NCT DREAM의 ‘버퍼링’이 자동으로 머릿속에 흘러나왔다. 거기다가 언제쯤 버퍼링에 안 걸리면서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곁들여서 말이다.
내가 참 문제가 많아 보이는데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문제가 많았다. 신규라고 이해받기에 나 자신도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A팀에서는 인계하지 않았지만, B팀에 넘어와서 인계하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인계 시간이 돌아올 때면 프 리셉터 선생님의 영어교실과 수학 교실이 열렸다. 학교에서는 ‘파파고’라는 좋은 친구가 있었고, 집에 가서 알아보고 공부할 시간이 있었기에 어찌어찌 대학교에서는 큰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니었다.
병원에서 환자 파악을 하고 일을 정신없이 하다 보면 어느새 인계 시간이 돌아왔다. 병원에 출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인계 시간일까? 속은 타들어 가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런 나를 위해서 없는 시간을 쪼개서 프리셉터 선생님은 인계 연습을 시켜주셨다.
“Normal 선생님. 환자분 I/O 적어왔죠?”
“네. 적어 왔습니다.”
“자 그러면 입력해 보자.”
“음... 어... (속으로 이게 맞나 생각하며 숫자를 입력한다).”
“응??? 이게 대체 어떻게 나올 수 있는 숫자야?”
“어... 죄송합니다...”
“환자분 데노간 처방 어떻게 났어?”
“bid요.” “시프로는?”
“tid요.” “그럼 우리 환자분께 뭐 투여했어?”
“시프로요.”
“그래. 그럼 뭐만 적어야 해?”
“시프로요.”
“그래. 적어.”
그렇게 side 수액만 해결하는데 이런 대화가 오갔다.
I/O를 다 적고 나면 그때부터 영어 교실이 열렸다. 나에게 가장 복병인 단어가 있다.
바로 ‘cholecystitis(담낭염)’ 다른 단어도 마 찬가지로 잘 읽지 못하지만 유독 이 단어에 내가 특이점을 보였다.
“Normal 선생님 읽어보자. ‘cholecystitis’ 이게 뭐야?”
“담낭염이요.”
“맞는데, 병원에는 의학용어로 이야기해야지.”
“콜레타이티스요.”
“시스 어디다 빼먹었어? 이제는 외우자.”
“콜레시스타이시스요.”
“그래. 자꾸 시스 빼먹지 마~”
“네...”
만약 나에게 나 같은 프립셉티가 온다면 마음이 아프겠지만, 화가 정말 많이 날 것 같다. 하지만 선생님은 한 번도 내게 화를 내지 않으셨다. 나는 매일 프리셉터 선생님을 보면서 날개를 어디 숨기고 다니는 천사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심지어 밥을 먹지 못하는 나를 걱정도 해주시고, 밥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수 선생님께서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하실 때 “Normal 선생님은 아직 밥 못 먹어요.”라고, 대신 말씀도 해주셨다.
짧은 병원 생활이었지만 병원에 다니면서 프리셉터 선생님 은 나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셨다. 열심히 하는데도 성과 가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받는 내게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선생님이 신규 시절에 하셨던 공부 방법, 사회생활에 관한 이야기, 일상적인 이야기 등 거기다가 응원도 더해서 내가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말이다.
내 인생에 어디 가서 다시 이런 분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생님과 함께 한 시간은 내 인생에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 번도 병원에 다니면서 눈물을 흘린 적 이 없었는데 마지막 날 선생님과 인사를 하면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눈시울이 붉어져 눈물이 날 뻔했지만 겨우 참았다.
언제 다시 만날지도, 아니 못 만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중에 공부 열심히 하고 경력도 쌓아서 지금보다 괜찮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 프리셉터 선생님과 같이 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