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선물

평생 이런 적은 없었다

by 루파고

내 생일은 12월의 끝자락이다. 아주 애매한 날짜다. 어릴 땐 겨울방학이라 친구들을 만나기도 어려웠고, 나이 들어서는 산에 미쳐 설악산 동계등반 들어가 있었고, 사회 나와서도 보니 산에 들어가 있을 때가 많았는데 그렇지 않다 해도 생일이란 게 내겐 별 감흥이 없었다. 선물을 주거나 받거나 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어릴 때 친구들 생일을 그렇게 챙겼어도 내 생일에 돌아오는 게 거의 없다 보니 항상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생일파티라곤 차라리 산에서 했던 게 기억에 남을 정도이다. 고칼로리 식품으로 꼽은 초코파이가 케이크를 대신했고 성냥개비가 불을 밝혔다. 별이 쏟아지던 밤이거나 눈폭풍이 치던 밤들이었던 것 같다. 서북주능 어디쯤에 있었을 수도 있고 설악동에 진을 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고요와 적막 속에 배낭 구석에서 온갖 쇳덩어리 등반장비들에 꾹꾹 눌려 모양도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어진 초코파이 몇 개를 탑으로 쌓아 올리고 어떻게 챙겨 온 것인지 잘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 성냥을 꽂아 불을 붙였다. 말 그대로 감동의 도가니 자체였던 것 같다. 사실 그게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한 감동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소박하지만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 같은 것이었다.

한 해 두 해 세월이 흐르고 이러저러한 등반사고 후에 산을 외면한 후(물론 동경은 하지만) 일에 미쳐 살 즈음 난 누구와도 선물을 주고받고 하는 자체를 기피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 알게 됐다. 어쨌든 난 그게 더 편했다. 안 주고 안 받으니 섭섭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삭막하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닌데 선물이란 자체는 내게 그런 존재였던 거다. 그런데 이번 생일엔 감동이 벅차오를 만큼 감사하는 선물을 받았다. 그것도 여러 개나 말이다. 사실 어떤 선물이었어도 상관이 없었을 텐데 평생 이렇게 큰 선물은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생일파티 같을 걸 아예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메말라버린 기념일에 대한 감흥은 새 것처럼 불타 올랐다.


조명을 끄고 불을 밝힌 생일 케이크, 어색한 생일 축가, 스스럼없이 내민 포장 없는 선물. 내겐 불필요한 꾸밈없이 완벽하게 갖춰진 생일이었다.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생일이다. 게다가 내게 제일 필요했던 게 딱 손에 쥐어지니 '아! 이런 게 선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캣취 해 내는 것! 그것 역시 통찰의 하나인지라 평소 상대를 관찰하고 느낀 걸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제공해줄 수 있다는 건 관심과 사랑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는 상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부족한 아주 차가운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과연 이뤄질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도 따뜻한 사람이 되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다짐을 해본 계기였다. 여러 선물들 모두 내게 아주 필요한 그리고 아주 멋진 선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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