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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Feb 01. 2021

14.냉삼 먹으러 갔다가 반해버린 돼지껍데기

맛집은 우연히 찾는 거다

얼마 전 정릉에 갔다가 우연히 찾은 국숫집이 동네에서 나름 소문난 로컬 맛집이란 걸 알게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우연히 부산의 돼지껍데기 맛집을 발견하고 말았다. 그것도 원래 목적이었던 냉삼도 아닌 부속 메뉴에 꽂혀버린 것이다. 부산에 있지만 전국구라고 해도 손색에 없을 것 같다. 요즘 쓰고 있는 <빗맞아도 30년> 음식 기행에 편입시킬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 글들을 쓰다가 놓치긴 아까운 30년이 안 된 식당들을 이렇게라도 수면에 올려 두기로 한다.


https://brunch.co.kr/magazine/30yearstour

<빗맞아도 30년> 시리즈는 벌써 23탄에 이르렀다. 사진첩에 남아있는 것들만 해도 아직 50탄은 족히 가능하다.



거제리 이모션은 부산 연제동에 위치한 냉동삼겹살 전문점이다. 부산법원 앞에 있는 사무실에서 나와 대패삼겹살 전문점을 찾으려 카카오 맵을 열었다가 냉삼은 어떻냐는 제안에 냉삼 전문점을 검색한 나는 인근에 거제리 이모션이라는 냉동 삼겹 전문점을 찾아냈다. 정말 아무런 기대가 없었는데 허름한 익스테리어를 보니 왠지 맘이 동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래된 건물에 거제리 감성을 담았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냉삼의 맛이 추억을 끌어다 줄 것인가? 그런데 간판을 보니 곱창전골도 전문 메뉴인 듯했고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된 돼지껍데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식당이 하나 있었다. 지금이야 코로나 때문에 어찌 영업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홍대 구석의 <곱창전골> 간판을 내 건 스탠드 댄스 음악다방이 기억난 것이다. 갑자기 그곳이 생각난 이유가 뭘까?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데 말이다. 원래 곱창전골 전문점이었는데 장사가 안 되어 취미였던 레코드판을 틀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댄싱 스탠딩바가 되어버렸다는 전설 같은 곳이다. 이 년 전에 갔을 떄만 해도 곱창전골은 정말 웃을 수밖에 없는 재밌는 분위기였던 기억이다.



우리는 목적했던 냉삼 3인분에 돼지껍데기 1인분을 주문했다. 아무런 의도나 기대 없이 주문했던 돼지껍데기가 지속적인 추가 주문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렇다고 냉삼이 맛없다는 건 아니지만 냉삼 자체는 딱히 거제리 이모션의 아이콘이 될 만한 특색 같은 게 없었다. 그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었다. 술은 술을 부르기 시작했다. 네 명 중 두 명만 술을 마시기 때문에 둘만의 술자리가 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급랭으로 딱딱하게 얼었을 엷게 썰린 생삼겹살은 뜨겁게 달궈진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기름을 튀겨내고 있었다. 앞으로 뒤로 뒤집에 노릇노릇해 지자 모두들 젓가락질에 용을 썼다. 식탐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에도 냉삼과 관련한 글을 쓴 적이 있으니 참고 차 올려 둔다.


https://brunch.co.kr/@northalps/489

이 게시물 조회수가 벌써 39,000을 향하고 있다. 다음카카오 메인에도 게시됐었던 글이니 믿음을 갖고 읽어도 될 듯하다.



상차림이야 여느 고깃집과 딱히 다를 게 없다. 역시 기름칠엔 소주가 필요한 법.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아이템이다. 아스파탐 대신 벌꿀을 넣은 대선 소주는 이미 부산 시장을 휩쓸고 있다. 아스파탐이 숙취를 유발한다는 소문은 사실인 듯 대선은 숙취가 별로 없다. 오히려 한라산 이상이다. 이 날 내가 마신 소주만 5병인데 다음날 아침에 전혀 이상이 없었던 걸 보면 이미 내 몸은 생체실험에 성공한 거다. 돼지껍데기만 아니었다면 그렇게 많은 소주를 마실 일은 없었을 것이다.



냉삼!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러고 보니 돼지 냄새가 별로 안 났던 것 같은데 술기운이었을까?



1인분을 흡입한 후 2인분을 추가 주문했다. 1인분에 한 장 같다. 정말 흔히 볼 수 없는 두께였다. 이렇게 두껍게 잘라내고도 삼겹살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사선으로 깊게 칼집을 내고도 여유 있는 두께를 보면 얼마나 두꺼운지 실감이 갈 것 같다. 돼지껍데기는 이렇게 칼집이 없으면 오징어처럼 말려버리기 때문에 칼집은 필수다.



거제리 이모션에서는 강황 가루를 줬는데 난 파채와 함께 먹었다. 거제리 이모션의 파채는 돼지기름과 엄청 잘 어울렸다. 워낙 파채를 좋아하는 편인 난데, 여긴 식감을 돋우는 파채 때문에 돼지껍데기의 맛이 증폭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쫄깃한 식감이 여느 돼지껍데기와는 수준의 다름을 선사했다. 콜라겐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건 뭐 가히 상상 불허다. 한 때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유행어처럼 '궁금하면 오백 원!' 은 아니지만 부산에 있는 곳이 아니라면 자주 찾을 만한 집이다. 그나마 부산 출장이 잦은지라 가끔 찾게 되긴 하겠지만 부산엔 아직 30년 넘은 맛집이 너무 많아 언젠가는 또 찾아 가리라 리스트에만 살짝 담아 둔다.



하이라이트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먹고도 볶음밥을 주문하고 있었으니 술이 술을 마신 걸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이건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음주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 같다.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맛이 있었기에 술도 안 마시던 두 명 조차 바닥을 보일 때까지 숟가락을 놓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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