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파고 Nov 01. 2022

제주공항에서 구엄포구까지 20km 도보여행

제주도를 꽤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제주를 어지간히 다녀봤다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곳도 많이 알고 구석구석 차로, 자전거로, 도보로, 심지어는 위성지도까지 동원해 제주를 후벼판 나다. 그런 근거 없는 자부심을 다시 초연하게 만든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제주 도심 부근에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잘 몰랐던 지역이었을 수도 있다. 특히 애월 쪽은 난개발이 심해 거들떠도 보지 않던 곳이라 애월 중산간 쪽이 아니라면 잘 가지도 않았다. 운전을 해도 중산간이나 산록도로를 타고 다니는 편이라 제주시와 애월읍 바닷가 쪽으로 갈 일을 만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사계리부터 애월까지 해안선을 따라 걸었을 때도 구엄에서 도보 여행을 마무리했었는데 이번엔 반대 방향이었지만 제주공항에서 딱 구엄까지 걸어 남은 구간을 걸은 셈이다.


예전엔 도보 여행을 마치고 후기를 썼다. 그땐 자전거를 타지 않던 시절이라 스트라바 같은 앱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시작 지점과 마무리 지점을 기록해둔 자료가 있다. 3일, 정확하게는 2일 하고 반나절을 걸었다. 이번에 반나절 정도 걸었으니 약 3일 정도면 여유있게 제주도 1/4구간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침 내가 이 길을 걷고 있을 때 다른 구간을 걷는 누군가가 있었으니...

https://brunch.co.kr/@northalps/41





정말 어렵게 갔다. 비행기 티켓 구하는 게 거의 하늘의 별 따기였다. 가는 건 어떻게든 가겠지만 돌아오는 게 문제였으니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티켓을 광클릭으로 예매를 하고 제주로 날아갔다.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제주공항이다. 요즘 단체 관광객이 너무 많이 늘어났다.

공항에 도착해 스마트폰 스트라바 앱을 켜고 보니 배터리 소모가 걱정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예상한 대로 되긴 했다. 다음부터는 꼭 기기를 챙겨서 가기로~



공항 동쪽으로 돌아 화물터미널 뒤쪽으로 가면 용담포구 근처다. 거기까지 공유자전거를 타고 가려다 포기하고 그냥 걷기로 했다. 딱히 빨리 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반엔 사진을 찍을 생각도 없어서 여기까지 오는 길엔 사진 한 장 없다. 단지 스트라바가 경로를 기록해줄 뿐이다.



도두봉에 올라보니 멀리 드림타워가 랜드마크처럼 보였다. 한라산이 구름에 가려 안타깝지만 햇빛이 강하지 않아 선크림을 바르지 않아도 되니 고마움을... ㅎ



도두방파제를 건너는 올레길 17코스가 약간 겹친다.

그러고 보니 올레길 17코스는 MTB로 달린 적도 있다.

동네 구석구석이야 아는 곳들이지만 걷는 코스가 눈에 익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호테우의 나대지다. 여긴 불법으로 주차된 카라반들이 엄청 많았는데 이젠 거의 정리가 된 듯 보였다.



여름이 되면 바글바글한 이호테우가 한적하니 오히려 적응이 안 된다.



용암길이 길레 드러난 해안이다. 이런 골이 지금은 수로가 된 것이다. 멀리 낚시에 심취한 사람이 보였다. 나의 벵순이들은 잘 있나 모르겠다. 낚시 가본 지가 언제인지...



내도동에 도착했다. 해안 구조물에 변화가 있다. 예전 것도 나쁘지 않았는데 좀 더 감각적으로 제주스럽게 만들어 보기 좋다.



서프로가 좋아했었다던 알작지다. 방파제가 조성된 후로 알작지 규모가 쪼그라들었다고 들었다.



외도교를 지나 연대포구까지 가는 길이다. 이게 언제 조성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주택가를 피해 바닷가 산책로를 조성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데크로가 상당히 넓은데 내가 이 길을 걸을 땐 만조 시간에 바람이 강해 파도가 데크 위로 튀어 올라 파도가 없을 때 잽싸게 피하며 걸어야 했다.



하귀포구 인근이다. 다시 건물 비중이 높아지는 해변이 됐다.



얼마 전 육지에 상륙했다는 제주도 출신 커피 프랜차이즈다. 에이바우트라고 비싸지 않은 카페인데 제주도민에게 인기가 많다. 여기 하귀포구점 역시 아주 기가 막힌 위치에 자리 잡았다.

기 이 건물은 아주 독특한 게 있는데 바로 아래 사진에...



필로티 아래 돌집이 그대로 앉아 있다. 재밌는 구상이다. ^^



고성천을 지나면서 보니 멀리 애월항이 보였다.



하귀 포구를 넘어가다 보니 정체 모를 텐트가 보였다. 어쩜 저런 데 감쪽같이 숨겨둘 수가 있을까 모르겠다.



또 몽돌 해변이 나타났다. 현무암 몽돌이라 아주 독특하다.



이 동영상을 들어보면(영상보다는 소리가 중요해서) 알작지의 몽돌이 파도에 쓸리며 내는 묘한 소리가 들릴 것이다. 정말 정감 가는 소리다.



가문동 포구를 마지막으로 사진이 없다. 스트라바 앱이 배터리를 쪽쪽 빨아 드셔서 완전히 방전되고 말았다. 3시 쯤 해서 도보여행 코스를 마치고 만나기로 했던 서프로에게는 가문동 포구에서 서쪽 해안선을 타고 걸어가고 있을 테니 알아서 날 찾아보라고 했다. 무슨 촉인지 구엄포구 근처에서 내 앞을 가로막고 비상등을 켜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뒤에서 클락숀을 울리는 서프로... ㅎㅎ 아무튼~



요즘 도보여행자가 많이 줄었다는 걸 완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전 올레길을 걸을 때도 느꼈지만 올레길 열풍은 완전히 식어버렸다. 심지어 한 코스를 완주하는 내내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던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전국 지자체들이 너도 나도 OO길, OO길 등으로 진행하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프로젝트 중 사실상 제대로 굴러가는 게 거의 손에 꼽을 정도이다. 하물며 도보여행길의 롤 모델이었던 올레길 조차 그 정도니 딴 지역은 볼 것도 없을 것 같다. 대도시 내 기존 산책길 같은 경우 원 인프라를 확장시킨 거라 당연히 이용자가 많은 건 당연한 것이라 예외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도 천왕사 가을 나들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