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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파고 Jul 20. 2023

30년 맛집, 110탄-수안보 대봉식당 칼국수

100년 된 건물에서 40년째 장사를 하며 생활의 달인에도 나왔지만 여느 유명하다는 맛집과 달리 방송에 나온 흔적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수안보 맛집 대봉식당이다.

출장길에 일부러 수안보에 들러 대봉식당을 찾아간 건데, 무려 세 번만의 성공이다.

시간이 늦어 문을 닫았거나 하필이면 쉬는 날이었던 건데 드디어 이번엔 기대하던 맛을 볼 수 있었다.

수안보는 스키장 폐장 이후로 한산한 동네가 되고 말았는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중 국토종주를 해본 사람이라면 수안보를 거치지 않고는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지리적으로 수안보는 교통의 요지 격인데, 조금만 가면 그 유명한 문경새재로 연결된다.

서울에서 부산 방면 자전거 국토종주길로는 수안보를 거쳐 조령을 넘어 이화령을 넘으면 바로 경상북도 문경이다.



알루미늄 새시나 간판을 보면 개량된 건물이라 100년이 넘었을 것 같지 않지만 실내로 들어가면 뭔가 좀 다름을 알 수 있다.



손으로 대충 적은 메뉴판(차림표)이 정겹다.

칼국수는 언제 가격이 올랐는지 7,000원이 됐지만 생활의 달인에 나온 식당임에도 불구하고 착한 가격이다.

방송만 탔다 하면 거침없이 가격을 올리는 식당들을 보면 아쉬움과 짜증이 밀려드는데 대봉식당은 초심을 잃지 않은 듯하다.



내가 오늘의 첫 손님이다.

역시 맛집은 일찍 가야 여유롭다.



이렇게 기본찬과 양념이 나왔다.

김치도 수북하니 보기만 해도 풍요롭다.

모두 직접 만든 것들이다.

양념장에 내공이 느껴진다.



이게 바로 100년 된 건물의 흔적이다.

페인트칠이 된 기둥인데 100년의 세월 동안 기억할 수 없는 다양한 생채기를 남긴 목재 기둥.



십 분 정도 기다려서야 드디어 칼국수를 받았다.

처음엔 들깻가루인가 싶은 게 뿌려져 있는데 잘 보면 간 참깨 같다.

그래서였는지 들깻가루의 텁텁한 식감의 느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국물 자체가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난 그래도 양념을 해야겠기에 두 가지 양념장을 모두 털어 넣었다.

이상하게도 나의 입맛은 점점 본연의 맛보다 강렬한 양념을 지향하게 되는 것 같아 아쉽다.



양념장을 잘 섞어 맛을 볼 준비를 마쳤다.



난 칼국수를 딱히 즐기지 않는 편인데 칼국수 면발을 보자마자 대봉식당 칼국수가 유명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면발이 의외로 얇고 부드럽다.

쫀득한 면발을 즐기는 사람에겐 안 맞겠지만 내겐 이런 식감이 더 좋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밀가루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거다.

이건 반죽과 숙성의 노하우로 만들어진 결과일 거다.



김치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는데 충청도 스타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춧가루가 좀 텁텁한 편이긴 하다.

하지만 칼국수에 김치를 푹 담가 면과 함께 먹어보니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시던 칼국수 생각이 났다.

그런데 명동교자 생각이 난 건 뭘까?

명동교자 칼국수도 맛있는데 아린 마늘맛이 강한 진한 양념의 생김치가 너무 잘 어울리는 명동교자의 칼국수와 맞대결을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결은 다르지만 개성이 철철 흐르는 칼국수와 김치의 조합이 찰떡같다.



김치 양념이 칼국수 국물과 섞이며 조금씩 깊은 맛으로 물들어 간다.

곱빼기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바닥을 비우고 말았다.

이른 시간이었기에 배가 고파서 비운 건 아니었다.

이번에도 역시 무생채를 남기고 말았다.

이상하게 무 요리는 기피하게 되는데 어릴 때도 없던 편식 성향이 생긴 모양이다.



생활의 달인에 나온 칼국수 한 그릇에 7,000원이다.

언젠가 1박을 하게 될 일이 있다면 대봉식당에서 녹두전, 파전, 감자전을 주문해 충주의 80년 넘은 막걸리와 함께 맛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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