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 만든 세상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으며...
인간 세상은 안정적일 수 없는 경쟁관계에 있기에 빠른 진화를 거듭해 왔다.
촌각을 다투거나 하는 간극이 거의 없는 라이벌이 있을 때 세상의 발전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너무 많이 알려져서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많은 사례가 있다.
라이트 형제 vs 글렌 커티스, 에디슨 vs 테슬라 같은 발명에 관한 분야는 물론 문학, 스포츠, 정치, 예술 등 이 세상 모든 분야에 있어 경쟁관계에 놓여있지 않은 것은 없다.
국내의 경우 삼성과 LG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격차가 벌어진 분야도 있고 서로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도 있을 것이다.
현대, 기아, 대우, 쌍용, 삼성 등 자동차 제조사들도 그래 왔고 피 터지는 전선에서 살아남거나 합병되거나 매각되기도 했다.
지금도 많은 기업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선두에 서고자, 서로를 누르고자 다투고 있다.
오죽하면 특허전쟁까지 벌이며 우선권을 가져가려 하겠는가 말이다.
공산주의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도 그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게 공산주의의 목표였을까?
공동체 생활, 공동 배분을 타이틀로 했지만 공산당 지위층을 배제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경쟁사회를 벗어날 수 없었다.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는 것부터가 경쟁의 시작이다.
공동작업장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하고 그룹의 장이 되려 노력한 것 자체가 경쟁이다.
공산주의가 성공하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은 실질적인 경험이 부족한 이상주의자의 망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크건 작건 실제로 체제가 굴러가기 위한 조직의 틀을 간과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보다 더 큰 빈부의 격차를 가져왔고 자신들의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악행은 죄다 저질렀다.
갑자기 웬 공산당에 대한 비판인가 할 것이다.
사실 세상이 더없이 풍요로워지는 때가 와서 더 이상의 노력이 필요 없다면 인간은 진화를 멈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당장 떠오르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였던 것이다.
이런 생각을 작게 만들어 우리 실생활로 끄집어 내려보자.
우린 태어날 때부터 경쟁으로 시작했다고 과언이 아니다.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사실 이런 잡생각을 하게 된 건 <모스크바의 신사> 때문이다.
작가의 철학이 녹아있는 700 페이지가 넘는 소설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여러 생각이 굴러 나왔다.
가벼운 글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끌림이 있다.
남의 생각을 가감 없이 가져다 자기 생각인 양 쓴 처세술 등 인문학의 탈을 쓴 책 백 권을 읽는 것보다 이 책 한 권이 더 깊은 소양을 만들어 줄 것이라 장담한다.
<멘체스터의 나방>, <다윈의 진화론>
이 두 가지를 삶에 접목시킨 부분이 있는데 아주 절묘한 조합이 아닐 수 없었다.
몇 년 만에 좋은 생각을 아주 절묘하게 글로 옮긴 정말 좋은 소설을 읽은 것 같다.
예전에 내 책을 브루스 채트윈의 <파타고니아>에 비유하며 실용서적보다는 인문학에 가깝다는 장문의 글을 보내주신 독자가 있었는데 그 느낌이 어떤 건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