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소

돌배나무집 셋째 딸 Vol.10

by 루파고

지유는 새벽부터 일어나 외출할 준비를 마쳤다. 7시 약속 때문이었다. 지호에게는 창원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약을 쳐두었다. 조심스럽게 대문을 밀고 나서는데 정미소라고 했던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 나오셨군요. 늦게 나오실 것 같아서 한 시간 일찍 약속을 잡은 건데……”

지유는 그의 말에 뜨끔했다. 부지런한 식구들 눈에 띌 것이 걱정되지 않았다면 기다리게 할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정미소는 김선명과 달리 긴장을 하는 모습이라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 당당해서 살짝 겁이 나긴 했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다. 평상복을 입은 그는 근육질의 몸매가 도드라진 옷이 잘 어울렸다.

“사실, 오늘 갈 길이 좀 멉니다. 마산까지 넘어가야 하거든요.”

지유는 어차피 지호에게도 창원에 간다고 약을 쳐 두었던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정미소와 지유는 한참 간격을 두고 동네 어귀를 벗어났다. 맘껏 게으름을 부려도 용서가 되는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동네에는 인적이 없었다.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한가하네요.”

정미소와 거리를 두고 걷던 지유가 말을 걸었다.

“그러게요~ 저는 평일보다 주말이 더 바쁠 때도 많습니다.”

“어머! 왜요? 그건 그렇고 뭐 하겠다고 마산까지 가나요?”

“사실 오늘은 결승전 하는 날입니다.”

“무슨 경기죠? 저도 운동경기 좋아하지만 그런 시합을 보러 가는 건 처음이거든요.”

“테니스입니다. 게임 규칙을 모르면 그다지 재미가 없을 수도 있는데, 혹시 지유씨는 테니스에 대해 좀 아시나요?”

사실 지유는 여자들 치고는 테니스에 대해 잘 아는 편에 속했다. 홍명덕은 학교에서 테니스를 즐겼고, 아빠를 따랐던 지유는 홍명덕에게서 테니스를 배웠기 때문에 조금은 지식이 있는 편이었다.

“그냥 공치고 받는 거 정도는 알아요.”

“아버님도 테니스 치러 다니시던데 다음에 게임을 할 기회가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지유는 정미소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홍명덕의 취미생활까지 파악해 둔 게 분명했다.

둘은 마을 어귀에서 버스터미널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마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서로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지유는 진해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버스는 10시가 다 되어서야 마산 터미널에 도착했다. 정미소가 말한 경기는 오후 2시라 세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배고프시죠? 돈가스 어떠세요? 여자들은 그런 걸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먹는 건 그렇게 따지지 않아요.”

“배고픈데 국물 있는 거 먹으면 어때요? 아침 겸 점심으로~”

정미소의 말에 지유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지?’ 지유는 지난주 김선명의 극진한 대우와 비교되는 오늘의 데이트가 벌써부터 시시하게 느껴졌다.

“근처에 부산 돼지국밥 잘하는 집 있는데 어떠세요?”

지유가 느끼기엔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본 게 그저 예의상이었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지유는 기분이 상했지만 일단은 참아보기로 했다. 정미소는 터미널 근처의 허름한으로 안내했다.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게다가 옆 테이블에는 술 냄새 폴폴 풍기는 노인 둘이 큰 목소리로 술주정을 하고 있었다. 지유는 어차피 나온 것이니 인내심을 발휘해 꾹 참아보기로 했다. 성격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왜요? 별론가요?”

“네! 맛있어요!”

지유는 아직 수저도 들지 않은 상태였는데 저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답하고 말았다. 정미소는 자신의 국밥을 후루룩 마셔버리고는 말했다.

“안 드실 거면 제가 먹을게요.

정미소는 지유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국밥을 가져다 역시 마찬가지로 후루룩 해치워 버렸다.”

지유는 어이가 없었다. 기분이 상해서 자리를 뛰쳐나가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죄송해요. 저는 배가 고프면 움직일 수가 없거든요.”

지유는 꾹꾹 눌러 참아야만 했다.

경기장 앞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정도였다. 경기장에 도착한 후 정미소는 지유를 VIP석으로 안내했다. 지유는 이제야 뭔가 제대로 되어가는 건가 싶었다. VIP석에는 마산 시장이 자리하고 있었고, 돈깨나 있어 보이는 풍채의 중년인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유가 들어서자 그들은 하나같이 자리를 양보하는 매너를 보였다. 지유는 그들의 행동에 목례로 답했다. 그런데 지유를 VIP석에 안내 한 정미소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정미소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지유는 이상한 생각이 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호기심이 한 가닥, 두 가닥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경기를 한 시간 정도를 남겨둔 시점인데 정미소가 지유에게 손을 흔들고는 자리에서 떠난 것이다.

“정미소 선수와 잘 아는 사이신가 봅니다.”

"네?"

뒤를 돌아보며 지유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이 있었다. 마산 시장이었다. 지유는 질문의 의미를 알아듣기까지 몇 초의 시간이 필요했다. 당황한 지유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거짓말에 소질이 없던 지유는 저도 모르게 이실직고하고 있었다.

“정미소 씨가 데이트로~”

지유는 아차 싶었다. 그 말은 사귄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마산 시장의 질문에 이어 여러 사람들의 질문이 폭발적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중년 부인 한 명은 노골적으로 지유의 호구 조사에 들어가려는 듯 집은 어디냐, 학교는 어디 어디를 나왔느냐, 대학은 어디냐, 전공은 무엇이냐, 나이는 얼마냐, 아버님은 누구냐, 형제는 있냐, 이름은 뭐냐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지유로서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었다. 그중 가장 대답하기 가장 어려운 질문은 ‘둘이 사귄 지 얼마나 되었냐?’였다. ‘오늘 처음 만났어요!’라고 말하기는 애매했던 지유는 ‘이제 알아가는 중이에요!’라고 얼버무렸다. 중년 부인은 지유의 대답에 마지막으로 한마디 던졌다.

“우리 아들 한번 만나 보시려오?”

중년 부인의 지인인 듯한 젊은 사내는 지유에게 중년 부인이 국희 의원의 아내라고 했다. 딴에는 경상남도의 세도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 모두 경상남도 테니스 대표 선발전 때문에 찾은 사람들이었다. 경기가 끝나도 자리를 뜰 리가 없었기에 지유는 가시방석 같은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있어야만 했다. 그들 몇 명은 경기 내내 시선을 집중하지 못하고 하품을 해댔다. ‘싫어도 이런 자기를 찾아다녀야 하니 이 사람들 팔자도 편하지만은 않겠구나!’ 지유는 그들의 모습에 명예보다는 자유로움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계는 2시를 향하고 있었다. 지유는 주변 청년들의 시선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방송에서 정미소의 경기를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지난해 아쉽게 우승을 놓친 정미소 선수가 이 년 연속 우승해 챔피언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최기정 선수와의 결승전이 이어집니다!>

순간 경기장 안이 조용해졌다. 지유는 자기도 모르게 정미소를 응원하고 있었다.

“아가씨! 우리도 아가씨 애인을 응원할게요.”

마산 시장은 지유를 쳐다보며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는 주먹을 불끈 들어 보였다. 지유는 어쩔 수 없이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경기는 최기정 선수의 서비스로 시작되었다. 첫 게임부터 긴장감이 느껴졌다. 듀스를 세 번이나 꺾어가면서 최기정 선수의 첫 번째 게임의 승점이 올라갔다. 지유는 게임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점점 정미소의 몸놀림에 반응했고 주먹을 쥐고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첫 번째 세트 게임은 최기정 선수의 승점으로 시작했지만, 여섯 번째 게임까지는 정미소의 승점으로 거뜬하게 한 세트를 이겼다.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들었다.

“한 세트는 정미소 선수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이 년 내내 최기정 선수에게 챔피언 자리를 내어준 정미소 선수가 드디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을까요? 잠시 후 이 세트에 다시 이어집니다.”

일 세트를 승리한 정미소는 지유에게 주먹을 들어 보였다. 지유는 자기도 모르게 팔이 올라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미소는 상체를 구부리며 오른팔에 힘을 주었다. 파이팅을 부르짖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이 세트가 시작됐고 어드밴티지를 수도 없이 오가던 게임은 타이브레이크를 거듭하며 최기정의 승리가 되었다. 지유는 게임에 흠뻑 빠져들었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정미소를 향해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접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기는 다음 세트에서 다시 이어지겠습니다.”

지유는 손에 땀을 쥐고 있는 것조차 모른 채 경기에 집중했다. 삼 세트는 다시 최기정의 승리로 돌아갔다. 세트는 이 대 일로 최기정이 앞섰다. 다음 세트에서 최기정이 승리하면 금메달은 최기정의 몫이 된다. 그는 이번에도 경상남도 대표가 될 것이고 경상남도 삼관왕을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아가씨. 힘내요! 우리도 응원하고 있으니~”

마산 시장은 최기정 선수의 팬이었지만 지유를 본 순간부터 정미소를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지역 출신이라지만 진해 대표로 나선 정미소가 진주 출신 최기정보다 낫다는 생각이었다.

정미소는 마지막 세트에 사활을 걸 각오였는지 표정에서 결의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지유에게 패배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게다가 그는 일 년이라는 긴 시간을 이 경기를 목표로 훈련해왔던 것이다.

“두 선수 모두 첫 세트 때보다는 힘이 많이 빠진 듯합니다. 파이팅해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후 네 번째 세트가 시작됩니다.”

쇳소리 섞인 방송이 경기장을 울렸다.

“정미소 씨, 힘내요!”

지유는 벌떡 일어나서 소리 질렀다. 그러자 마산 시장도 함께 일어났고, VIP석의 관중 몇 명도 덩달아 일어나서 함께 응원했다. 맨 앞자리에는 진해 시장도 앉아 있었지만 지유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정미소는 지유가 있는 VIP 관중석을 쳐다보지 않았다. 지유의 눈에 두 주먹을 불끈 쥔 정미소의 까만 팔뚝이 보였다. 의지가 팔뚝에 그대로 묻어나는 것 같았다.

“정미소 씨! 꼭 이겨요!”

지유는 식당에서 사라져 버렸던 정미소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는 걸 알 수 있었다.

최기정 역시 전의를 가다듬고 있었다. 마지막 세트의 첫 게임은 정미소의 승리였다. 듀스! 삑! 듀스! 듀스! 두 번째 게임은 최기정의 승리였다. 겉보기에는 최기정이 정미소보다 체력적으로 우위에 있는 듯 보였다. 세 번째 게임은 다시 정미소, 네 번째는 최기정, 다섯 번째는 최기정, 여섯 번째는 정미소. 삼 대 삼으로 접전을 펼치고 있는 두 선수의 얼굴엔 두 가지가 겹쳤다. 극한 피로와 희망이었다. 세트 초반과는 달리 최기정에게는 피로가 정미소에게는 희망이 보였다. 최기정의 급격한 체력 저하를 정미소가 눈치챈 것이었다. 마지막 서브가 될지도 모르는 마지막 게임의 어드밴티지를 득한 정미소의 눈빛엔 단 한 번의 기회만 남았다는 결전을 향한 강한 의지가 감돌았다. 팽 소리와 함께 테니스 공이 네트 위를 총알처럼 쏘아졌다. 정미소의 서비스는 정확하고 힘이 넘쳐흘렀다. 라인 안쪽을 정확하게 내리꽂은 서비스에 최기정의 라켓이 몇 센티 차이로 비껴나가면서 허공을 휘둘렀고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VIP석과 관중 곳곳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거의 몇 분에 걸친 환호성에 지유는 환희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마산 시장은 지유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국회의원의 아내라던 여자 역시 지유의 어깨를 만지며 말했다.

“축하해요. 아가씨! 너무 좋겠어. 남자 친구 너무 멋졌어!”

어느 정도 환호와 축하의 분위기가 정리될 무렵 VIP석의 절반 정도 되는 사람들이 경기장으로 내려갔다. 경기장 중앙에는 그새 시상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잠시 후 시상식이 있겠습니다. 수상자와 메달 수여를 해주실 귀빈들께서는 시상대로 내려와 주시기 바랍니다.”

경기장에 해설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엔 상기된 듯한 느낌이 가득했다. 시상대 위에 오른 정미소의 얼굴은 아침에 보았던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경기할 때의 신중하고 결의에 차 있던 표정과는 사뭇 달랐다.

“동메달 수상자는 밀양의 주제용 선수, 메달 수여는 마산 시장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은메달 수상자는 최기정 선수, 지난해까지 금메달 이 관왕이었는데 아쉽군요. 메달 수여는 국회의원이신 김학균 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경기의 금메달 리스트 정미소 선수입니다. 최기정 선수와 멋진 경기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기대하겠습니다. 메달 수여는 경남도지사 최광렬 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그리고 정미소 금메달 리스트의 소감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이크가 정미소에게 넘겨지자 그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오늘 아름다운 여성이 이 경기를 지켜보며 저를 응원해주었습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최기정 선수에게 절대 이길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 영광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 메달을 여기서 그분 목에 걸어 드리고 싶은데 괜찮겠죠? 제 뜨거운 사랑에도 응원해 주시겠습니까?”

지유는 자기도 모르게 시상대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경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음을 알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정미소에게 다가서자 그는 지유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때 경기장 어디선가 ‘안아줘~’를 소리 지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모든 관중이 ‘안아줘~’를 외치고 있었다. 왠지 지유도 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런저런 고민할 틈도 없이 정미소가 지유를 한 품에 안아 버렸다. 지유는 그의 품을 뿌리치기가 왠지 싫었다. 경기장은 순식간에 휘파람 소리, 파이팅을 외치는 소리 등으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월요일 저녁, 지유는 홍명덕의 호출이 있었다. 서재안 나무 의자에 앉은 홍명덕은 잔뜩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앉아라!”

지유는 지금껏 아빠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긴장이 되어 등에 힘이 들어가며 땀이 흘렀다. 지유의 오랜 버릇이다. 긴장을 하면 등에 힘을 주는 이상한 버릇이다.

“무슨 일이세요?”

지유는 태연하게 말했다.

“너! 어제 마산 가서 뭐 했던 거냐?”

아빠의 비장한 표정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지유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다 싶었다.

“오늘 시장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지유가 남자를 만나는 것 같다고 하더구나.”

진해 시장은 아빠의 오랜 친구였는데, 지유는 경기가 끝나서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친구가 네 맞선 때문에 그렇게 아빠에게 부탁을 해왔었는데도, 지유는 서울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절대 안 된다고 거절했었다. 대체 그 남자는 누구냐?”

“그냥 친구 사이예요. 아직은 사귀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놈이 사람들 다 보는 데서 남자랑 껴안고!”

홍명덕은 화가 나는지 숨을 고른 후 말을 이어갔다.

“금요일까지 다 정리해! 토요일에 아빠랑 같이 올라가자.”

지유는 아빠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서울로 돌아가는 것이 싫었다. 게다가 지금의 이런 상황도 싫었다. 정미소를 좋아한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경기장 분위기에 빠져 실수했던 것이었다. 양심을 조금 보탠다면 낭만적인 것에 끌렸을 뿐이었다. 가슴 떨리는 일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잊지 못할 추억 하나 정도라며 선을 긋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토요일 아침, 지유는 아빠 홍명덕의 손에 끌려 차에 올랐고 진해 역에서 비둘기호 기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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