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야!?
어느 저녁, 여느 날처럼 재하와 뒹굴고 있었다. 아내도 퇴근해 집에 있었다. 그분은 딸과 놀지 않고 포켓몬과 놀아주고 있었다. ‘일하면서 얼마나 하고 싶었을까’라고 취향존중 해주기에 그날 하루가 심히 길었었다. 남편의 이글거리는 눈총이 느껴졌는지 아내가 머뭇거리며 일어났다. 지금부터 자기가 재하를 보겠다고 했다. 대놓고 좋아하면 또 좀 그러니 ‘정 당신이 원하면 어쩔 수 없지’란 표정을 지으며 딸을 넘겨주었다. 중요한 배틀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아쉬운 얼굴이었다. 너무 눈치를 주며 보챘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어서 노력해 재하를 재우고 원 없이 하라는 바람을 담아 충전이라도 시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기 충전기 어디 있어?」
「가방 안에 있을 거야」
당사자의 허락을 받아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가족에게 희생하느라 가방이 낡아서가 아니었다. 온갖 잡동사니가 다 들어있어서였다. 남자 중학생 1학년 가방을 보는 듯했다.
플라스틱 일회용 수저 3개가 들어있었다. 대중소 크기였다. 각각 본죽, 한솥, 배스킨라빈스 제품으로 추정이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한 숟가락 먹을 자세가 되어 있었다. 품목에 따라 다른 수저를 꺼낼 수 있는 준비성도 돋보였다. 충전기를 찾다 보니 요플레 수저도 하나 나왔다. 얘는 포장지가 지저분한 것이 오래된 것이었다.
사탕껍질은 4개 나왔다. 3개는 재하가 즐겨먹는 뽀로로 비타민 사탕이었고 하나는 청포도 캔디 포장지였다. 재하가 요새 자기 사탕 봉지를 보며 손가락으로 ‘하나 둘 셋 넷’ 하고 개수를 새며 신경 쓰고는 했었다. 그냥 숫자공부 하나보다 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는데 누군가 훔쳐가는 걸 눈치챘었나 보다. 인생에서 보면 대부분 범인은 가까이 있다는 걸 이번 기회에 알려줘야겠다.
지난번인지 지지난번인지 결혼기념일에 아내에게 선물해줬던 립스틱도 나왔다. 가방 안에서 고생을 많이 했는지 겉면이 많이 벗겨져 점박이가 되어 있었다. 비싼 거였는데 코로나의 등장으로 긴 세월 햇빛도 보지 못한 친구였다. 딱딱하게 굳은걸 보면 속이 쓰릴 것 같아 열어보지 않았다. 립밤 뚜껑도 나왔다. 늘 1+1로 사서 하나씩 넣어주는데 쓰는 걸 본 적은 없다. 분명히 쓰지도 않는데 본체는 어디로 갔을까. 입술 상태도 남자 중학생 1학년이었다. 가끔 재하가 보면서 웃는다.
프라다 카드지갑이 있었다. 예전부터 봤던 거였다. 이건 과연 진품일까 짝퉁일까. 정체가 궁금했다. 매번 볼 때마다 물어본다 하고 까먹은 게 5년이었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프라다 카드지갑의 80%는 모조품일 터였다. 추측하기에 짝퉁도 나름 외면에 신경을 써야 들고 다니는 것이니까 평소 아내 모습에 비추어 보면 오히려 진짜 일 것 같기도 했다. 언니들이 쓰다 주는 나름의 명품(?)들도 종종 데리고 다니니까 말이었다.
「이 카드 지갑 진짜야 가짜야?」
「몰라. 있길래 그냥 쓰는 거야. 진짜랑 가짜 하나씩 있어. 그냥 집히는 거 쓰는 거야」
경기도청 공문도 있었다. 뭔가 해서 펴보니 2020년 문서인 것만 확인이 되었다.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국가기밀이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하도 오래되어 모서리가 부들부들했다. 재하가 만져도 손이 베일일 없는 안전종이였다. 덮개 없는 칫솔은 귀여웠다. 약봉지에 들은 약은 손대지 않았는지 봉투가 빵빵했다. 내가 알기로 한참 전에 다녀온 병원이었다. 신분증과 청사 출입증이 들어 있는 걸 보면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긴 한다는 소리였는데 대다수의 물건들은 아내에게 밉보였는지 끝도 없는 구류를 살고 있었다.
‘손에 잡히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버린다’가 좌우명인 나는 아내의 가방 속이 이런 게 몹시 궁금해 충전기를 꽂으며 물어보았다.
「그런데 왜 여기 있는 거 안 버리는 거야?」
「... 다 쓸 때가 있어서 들고 다니는 거다!!」
대답도 꼭 사춘기 남학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