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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Oct 14. 2022

오늘은 우리의 결혼기념일

5주년을 기념하며 

10월 14일 오늘은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서로 생업과 육아에 바빠 선물은 서로 퉁치고 지나가기로 했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모든 것은 플러스 알파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조금은 깨닫는 나이가 되었기에, 짧은 글이라도 써서 앞으로도 잘 봐주십사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왕 쓰는 거 칭찬이 좋을 듯 하니 나에게 없는 우리 아내만의 장점을 나열해 보도록 하겠다.     



1. 공감능력이 좋다     


공감능력이 정말 좋다. 누구에게나 밝게 대답을 해 준다. 처음 우리 아내를 겪으면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라고 느낄 만큼 상대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아’. ‘정말?’, ‘너무 했다’, ‘저런 나쁜놈’ 등등 화려한 감탄사를 동원해서 내 이야기를 진짜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구나라고 여기게 해준다. 재미있는 것은 이게 감정을 전하는 대화 뿐 아니라 지식이 오가는 경우에도 똑같아 진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어쩌다 고대 그리스사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쪽 동네 이야기 좋아하는 내가 역사 전공하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요상한 도시국가 이야기를 해도 아내는 ‘어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잘 알아들으며 대꾸를 해주었다. 멋도 모르고 「드디어 인생의 호적수를 만났구나. 천생연분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거저 대답만 한 거였다. 그렇다. 우리 아내는 공짜 대답의 1인자이다. 공짜 대답도 상대방의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하면 피곤할텐데 아내는 별로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서 그런지 대화 지구력이 무척이나 좋다. 나 같은 소인배는 상대의 말에 개소리가 1%라도 첨가되면 바로 눈썹부터 올라가는데 우리 아내는 은은한 부처님 미소를 띠며 들어준다. 그게 비록 공짜대답일지라도  대단한 것은 대단한 게 맞다. 그렇게 딴 생각하며 듣다가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면 곧장 잡아내 ‘정말?’ 이러는 거 보면 타고난 능력이구나 싶다. 다섯 해 정도 함께 살다보니 아내가 누군가와 말할 때 한쪽 귀는 들어 주고 한쪽 귀에서는 지금 하는 말들을 내보내는 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자꾸 공짜대답하지 말라고 잔소리 하니 남편에게는 공감을 해주지 않고 주로 야단을 친다.      



2. 친화력이 좋다     


상술한 공감능력이 뛰어나서 그런지 우리 아내는 친구를 어디서 자꾸 주워온다. 엊그제는 직장 셔틀버스를 함께 타는 분 중 한 분이 일을 그만 나오신다고 했다. 동료가 사직하나 여겼는데 알고 봤더니 출근 할 때만 잠깐 얼굴 보는 단기 알바 분이었다. 그 분이 그 날까지인 건 또 어떻게 알아서 마지막이니 커피를 사줘야겠다며 내 기프티콘을 빼앗아 갔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언젠가부터 아내 친구 세는 것을 포기 했다. 친구들이 마구 증식해서 쫓아갈 수가 없었다. 그녀는 면접 시험을 가서도 친구를, 첫 출근해서 긴장된다고 하면서 또 당일에 친구를 만들어 온다. 그렇다고 딱히 남는 시간에 밖으로 돌아다니거나 그러지도 않는다. 그저 출근 했는데 친구 서넛이 생긴다. 아무래도 업무와 교우관계를 최적화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깔려 있는 게 분명하다. 양산형 동무가 한 500명 쯤 되어 보이는데 진짜 아내가 마음을 먹는다면 2만 명쯤 만드는 게 일도 아닐 것이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다. 예전 제주에서는 온 동네 모든 정보가 아내에게 모였다. 그런 인간 포털사이트였는데 현재는 육아에 지쳐 설렁설렁 친구를 만들고 있는 것도 맞다. 이렇게 보면 정치를 안 하는 건 이 천부적인 사람 모으기 재능을 썩히는 게 아닌 가 싶다. 모든 것은 하늘이 정한 시간이 있으니 언젠가 지금보다 더 큰 뜻을 품고 출마결심을 할 때 남편이 누가 되지 않도록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겠다고 늘 다짐한다.      


MBTI 안 믿으려고 해도 이런 거보면 어느정도 신빙성은 있음...친구는 이제 그만...


3. 긍정적이다     


위 두 가지 장점보다 뛰어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엊그제 금리 인상 소식을 또 듣고 우리의 영끌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아내가 걱정 말라며 웃었다. 어디서 돈 나올 구멍이라도 있나 싶었는데 내놓은 해답은 간단했다. 

「남편이 복직해서 제주가면 되지?」

「...그럼 재하는 누가 키워?」

「우리 엄마 던져줄건데 크크크. 가서 눈칫밥도 먹고 그래야 부모 귀한줄도 알지 하하하하」

어이가 없어 누워있으니 재하가 아빠 아프냐며 구급상자를 들고 왔다. 딸이 각종 처치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뭘 하나 잽싸게 주워 내 가슴에 달아주었다. 무언가 하고 봤더니 장난감 의사 이름표이었다.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지만 내 인생이 잘 안 풀릴 때마다 고3때 의대를 갔어야 한다고 회한을 담아 아내에게 종종 이야기했었다. 그건 또 한 귀로 안 흘렸는지 모조 명찰을 달아주고 「자 이제 의사 됐다 그치?」 하면서 까르르 웃었다. 너무 웃다가 눈물까지 흘렸다. 그리고 나도 다른 의미로 울었다. 이런 것처럼 아내는 매사에 참 긍정적이고 결국은 다 잘 될 거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물론 속앓이도 할 것이고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아픔도 있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속앓이 할 것 중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남편을 시키면 되니 뭐 어느 정도 해결이 되는 것이고, 수습 못할 것은 그냥 남편 한 번 더 쪼아보고 안 되면 그냥 어떻게 되겠지라고 하는 것 같다. 혼자만의 아픔 같은 것도 예전엔 속상해서 이런저런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지만 이제 그것도 귀찮아진 모양이었다. 울 시간에 카카오페이지 웹소설이라도 한 장 더 읽는 게 이득이란 것을 알아버린 어른이 된 것 같으니 아내는 정말 현명한 사람이다.    


   

우리가 함께한 지 다섯 해가 지났다. 애 키우다 보니 시간이 비정상적으로 흘러버렸다. 그래도 결혼식 아침에 다짐했었던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써주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몇 자 적었다. 이렇게 아내를 떠 올리면 하고 싶은 말이 상당히 많아지는 것을 보니 헛된 시간을 보낸 것 같지는 않다. 앞으로도 더 훌륭한 점을 샅샅이 찾아 좋은 말로 열 개 스무 개 적을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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