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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Feb 03. 2022

딸과의 첫 뮤지컬

콩콩 콩순이 콩콩콩

지난해에 재하랑 같이  뮤지컬을 하나 예매했었다. 딸이 좋아해 마지않는 콩순이 공연이었다. 일부러 찾은 것은 아니었다. 원래 아내와 크리스마스에  공연을 찾고 있던 거였었는데 우리끼리만 보러 가는  미안해 재하 것도 하나 챙겨준 것이었다. 한참  예매라 할인도 많이 해줬고 날짜도  연휴인  괜찮아 보였다.      


공연까지 거의 석 달의 시간이었다. 그동안 재하와 티브이를 함께 봐 버릇해서인지 오히려 내가 콩순이에게 애정이 생겨버렸다. 기사에서 콩순이 새 시즌이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딸은 페파피그 보느라 콩순이에게 별 감흥이 없는 것 같았다. 재하가 볼 생각을 하지 않자 모두가 잠든 밤, 방에 가서 새 시즌을 몰래 찾아보기도 했다. 기대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공연 이틀 전 아내는 친정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겠다며 딸을 데리고 홀연히 사라졌다. 공연장은 이화여대였는데 우리 집에서 한 번에 가기 너무 멀다는 거였다. 그러니 자기 집을 중간 기착지로 하여 가자고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재하가 감기를 심하게 걸려 거의 3주 동안 어린이집에 못 갔었다. 나는 그동안 불구덩이에서 굴렀고 말이다. 남편 쉬게 해 주려는 그 마음에 감사하며 밤새 게임 속에서 중세 유럽 백작으로 살고자 했건만 안타깝게도 몸이 따라주지 못했다. 영주 대신 신데렐라가 되어 열두 시가 되기 전에 잠이 들었다.

      

공연 날 처가댁에 갔더니 재하는 식사를 거부하고 있었다. 아빠를 보자마자 「콘!!! 코온!! 콩!!」을 외쳤다. 아마 밥은 필요 없고 빨리 콩순이 보러 가자는 뜻 같았다. 다만 반찬이 소고기였다. 그것도 처형께서 전기 돌판에 즉석으로 구워주는 고기였다. 딸이 삐쳐서 등을 돌리고 있어도 빨리 먹어야 했다. 딸에게 눈길을 준다면 그 순간 아내가 한 점 더 집을 거였다. 재하는 관심 가져달라며 구르다 사람들이 먹느라 쳐다보지 않으니 결국 포기하고 맘마를 먹었다. 고기는 먹지 않고 김에 싸서 먹었다. 재하 몫은 우리 부부가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어머님은 대 코로나 시국에 어린아이 데리고 공연 보러 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것 같다. 재하 빼고 콩순이 뮤지컬을 보러 가라는 거였다.

「그냥, 둘이 갔다 오면 쓰겠구먼. 나간 김에 바람도 좀 쐬고 오지」

답을 드렸다.

「... 어머님, 거기에 부부 둘 만 오면 무슨 사연 있는 사람들인 줄 알 걸요」

그래도 한 대 여섯 번 더 말씀하시자 아내가 빽 소리를 질렀다.

「엄마 사우나나 가지 마. 거기 아직도 열어?」

그제야 멈췄다.      


아내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딸과 뮤지컬 보는 게 상당히 기대가 되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공연 같은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극장에서 엄마와 태권 V 만화영화 한 번 본 것만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먹고 사느라 그랬겠지만 내심 서운했었는지 결혼하기 전부터 자식이 생긴다면 이런저런 것을 많이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해 왔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야기 들어보면 아내 성장 배경도 비슷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혼자 감상에 젖어 「라떼는...」으로 운을 띄우며 뒤를 쳐다봤더니 둘 다 자고 있었다.     

 

이화여대는 정문에 무슨 다리 있을 때 가보고 처음이었다. 광장이 지하에 잘 파져 있었고 그 밑에 공연장이 있었다. 신기해서 찾아보니 2008년 완공된 곳이었다. 거의 15년 전에 생긴 걸 보고 신기해하고 있었다니. 그냥 말을 말기로 했다. 공연장 앞에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구름같이 모여 있었다. 대한민국 엄마 아빠들은 명절에도 열심히 살고 있었다. 특히 여자 아이들이 많았는데 아빠랑 둘이 온 친구들도 꽤 있었다. 아내가 쳐다보는 것 같아서 딴 척을 했다.      



마스크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줄을 서서 콩순이 입간판에서 사진을 찍었다. 마스크를 안 쓰고 찍었다면 좋았겠지만 나름 역사의 현장에 있는 것 같아서 의미는 있는 것 같았다. 한 100년 후 역사 교과서에 2020년대 사회의 한 단면으로 다들 마스크 쓰고 있는 자료가 실릴 거니까 말이다. 설마 그때까지 마스크 쓰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재하는 폰카메라를 보지 않고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손에 야광봉 같은 것을 들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부리나케 하나 사 와서 딸에게 쥐어 주었다. 오늘 본 재하 얼굴 중에 가장 밝은 얼굴로 야광봉을 흔들며 아이들 사이에서 뛰어다녔다. 역시 남들 하는 건 다 하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콩순이 날개를 단 아이들도 있었는데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는 것도 기특했다. 우리 재하는 부끄러움을 아는 아이니까.      


공연이 시작되고 익숙한 음악들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떼창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아이들 몇이 따라 했다. 부모들도 함께 부르는 모습이었다. 아빠들의 낮은 목소리도 있었다. 동질감이 느껴졌다. 새 시즌은 보셨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안녕 나는 콩순이야 잠시도 가만있지 않아. 콩!! 콩!!」

「크엉!! 크으엉!!」

마스크에 가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다들 그 안에서 떼창이 전음으로 들려왔다.      


공연 내용은 대강 이렇다. 콩순이네 유치원에서 음악회가 열리게 되었다. 콩순이는 악기 팀에 지원했지만 큰 북이 마음대로 잘 안쳐지는 것에 깊은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알고 보니 음악나라에서 도망 나온 박치와 음치 요정이 장난을 친 것이었다. 이에 격분한 콩순이는 ‘세요’라는 말하는 새의 도움으로 좋아하는 밤이, 송이, 덜 좋아하는 진아와 부모님에게 말도 안 하고 음악나라로 떠난다. 콩순이 일행은 음악나라에서 높은음자리표, 낮은음자리표 요정도 만나고 음악 여왕님도 만나게 된다. 알고 보니 박치와 음치가 인간 세계에서 패악을 부린 것은 음악나라 정중앙에 있는 공용 메트로놈이 고장 나서였다. 아무리 요정들이 사는 동네라고 해도 공공재에는 별 수 없이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나는 듯했다. 거기에 중이 제 머리는 못 자른다고 음악나라 구성원들은 자신들 스스로 메트로놈을 고칠 수 없다고 했다. 아마 없어도 그냥저냥 살 수 있으니 의욕들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콩순이들은 음악회를 해야 하니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직접 메트로놈을 고치겠다고 한다. 하청은 받았지만 사실 그걸 보수할 실력은 없던 아이들은 그들을 귀여워한 음악나라 일타강사 음악 여왕님의 수업을 받게 된다. 그리고 노래에 기본이 되어있지 않던 아이들은 그 원데이 클래스를 통해 음정과 박자를 잡게 된다. 마침내 메트로놈을 수리하는 데 성공하자 음치와 박치도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콩순이 일행은 유치원 음악회를 즐겁게 열게 된다. 그 와중에 콩순이, 밤이, 송이 기존 삼총사는 음악나라에서 함께 고생한 진아를 새 멤버로 받아들이며 사총사를 결성하기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런데 훈련소에서 함께 구르며 평생 가자고 했던 동기들도 나와서 살만하면 바로 까먹는 것처럼 아마 유치원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해체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저분이 음악 여왕님



아무튼 재미있었다. 어린이 뮤지컬답지 않게 배우 분들 움직이는 발 굴림이 심상치 않았다. 춤추며 노래하는 것은 내가 죽어도 못하는 장기였기 때문에 많이 부러웠다. 나는 폐활량이 약해서 비흡연자임에도 불구하고 종합검진을 할 때 호스를 여러 번 불곤 해서 그렇다. 재하도 처음에는 재미있어했다. 나는 사실 뮤지컬보다 우리 딸 들썩거리는 뒤통수 보는 게 더 좋았다. 재하는 엄마 아빠 사이에 나란히 앉는 게 어색한 듯했다. 엄마 아빠와 자기의 자리 배정을 한참 지휘하더니 결국 내 무릎 위에 자리를 잡았다. 재하 자리에는 옷과 가방이 다소곳이 앉아서 함께 관람을 했다. 하지만 28개월 아이에게 1시간 공연은 무리였던 것 같았다. 곧 온몸을 베베 꼬고 엄마한테 갔다가 아빠한테 갔다 하며 소리를 질렀다. 신발은 한 열두 번쯤 떨어뜨려 줍는 것도 일이 됐다. 다행인 것은 우리 딸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건너 자리 아버님 한 분은 중간에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참고로 그분 와이프 되시는 분은 끝까지 앉아서 잘 보셨다.      


콩순이 일행이 음악나라에서 돌아와 음악회를 열 때부터는 사진도 찍고 야광봉을 흔들어도 되었다. 배를 까고 누워있던 재하가 살아났다. 야광봉을 마구 흔들었다. 그 여파로 앞자리에 앉아 계셨던 두 딸 아버님 머리를 몇 번 치게 되었다. 그분께는 죄송했다. 재하가 드러눕는다고 하면서 진즉에 발로도 머리를 많이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끝나고 사과를 하려고 했으나 바로 아이들을 안고 잽싸게 사라지셨다. 걔네들도 아마 아빠를 힘들게 했나 보다. 그분 딸도 야광봉으로 내 다리를 마구 쳤으니 서로 쌤쌤으로 하면 될 것 같기도 했다.       


차에 타서 아내가 말했다.

「쮸쮸 달라는 애한테는 무리였나?」

「기억에는 남을 거야. 그렇게 번쩍번쩍했는데...」

그냥 재하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재하야, 재미있었어?」

「응!! 코순!..코옹!!」

「다음에 또 갈까?」

「비~ 비..!!」

티브이로 보자는 뜻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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