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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우 Mar 15. 2022

떠나요 셋이서

제주단기체류기-1

어느 날 재하가 비행기를 타보고 싶다 했다. 바다도 보고 싶다고 했다. 뽀로로가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걸 본 모양이었다. 그래서 제주를 가기로 했다. 갑자기 훌쩍 떠난 것은 아니었다. 재하는 작년 말 즈음에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는 다들 백신을 맞고 있으니 지금부터 백일 정도 지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여 3월로 예약을 했었다. 하지만 봄이 오자 코로나는 오미크론이라는 새 옷을 입고 감염 정점을 찍고 있었다. 고민을 하다 그냥 가기로 했다. 취소할까도 했지만 재하가 무슨 사고만 치면 「쨰!! 아빠 말 잘 들어야 비행기 타지」를 입에 달고 살았어서 무를 수가 없었다. 아빠 공신력이 떨어지는 것은 차치하고 꼬맹이가 매일 「팔, 구, 십, 출!!」을 외치는데 웬만하면 가야 했다. 재하는 하나 둘 셋 대신 팔구십을 외친다. 자기가 좋아하는 숨바꼭질은 열 세어야 시작되기에 끝 세 글자만 마음에 들어 해서 그렇다. 어쨌든 이왕 가는 거 마음 편히 가고 싶었다. 정의로운 도둑이 되기로 했다. 엄마네에 가서 자가검진키트를 잔뜩 훔쳐왔다. 어차피 부모 자식 사이에는 절도죄가 성립하지 않으니 엄밀히 말하면 훔친 것은 아니고 가져온 것이었다. 우리는 이틀에 한 번씩 세 번 코를 쑤셔서 심리방어기제를 만들었다. 코는 많이 아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짐을 싸는데 캐리어가 모자랐다. 기저귀가 반이었다. 현지 조달할까도 생각했지만 우리 딸은 코끼리가 그려진 기저귀만 차겠다는 까다로운 아기였다. 배변 거부를 보느니 그냥 가져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공항까지는 재하 이모가 태워다 준다고 하셔서 한시름 놓고 있었다. 마음껏 짐을 챙겼다. 사실 재하 것만 잔뜩 넣었다. 우리는 단벌신사로 갔다. 그나마 우리 부부는 한 벌이지만 새 옷을 오래간만에 샀다. 그런데 출발 전날 처형이 역병에 확진이 되셨다. 위기의 순간 재하 삼촌이 나섰다. 동생은 평생 별 도움이 안 되었다. 아내가 「도련님」이라고 부르자 걔는 그럴 가치가 못 된다고 「도련놈」으로 정정해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조카는 예쁜지 놀랍게도 요새는 도움이 꽤나 많이 된다. 재하 장난감 태반은 도련놈이 사준 것이었고 이런저런 협조도 자주 해준다. 35년을 같이 살았었는데 그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너희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다고 하셨는데 얘를 보면 알 수 있다. 형은 그저 그렇고 조카는 사랑한다.


출발 아침에 재하가 꿈 이야기를 했다. 비행기를 탔다는 것이다. 비행기 한 번도 안 타본 아이가 꾼 비행기는 어떻게 생겼었을까 궁금했다. 신났는지 입을 것도 손수 골랐다. 어린이집 갈 때는 목 늘어난 공룡 티와 김칫국물 묻은 미키 티셔츠만 입겠다고 했던 애가 예쁜 감색 원피스를 입겠다고 했다. 빨간 머리띠도 했다. 다만 그 머리띠는 아프다고 나중에는 하지 않겠다 하여 짐만 되었다. 밤을 대강 먹고 짐을 마무리하니 동생이 차를 끌고 왔다. 동생이 제주도 여행기념 음악을 틀어주겠다 했다. 혹시 ‘제주도의 푸른 밤’일까 생각했는데 역시 그 노래였다. 이 노래는 판본이 너무 많이 하나씩 다 틀어보면 공항까지 너끈히 갈 터였다. 처음에는 성시경이 부른 곡이 나왔다. 성시경이 부른 곡도 좋지만 약간 서울에서 내려간 자산가가 애월 해변가에 라이브 카페를 차리고 부르고 있는 느낌이라 최성원 곡으로 틀어달라고 했다. 노래를 들으며 들국화 앨범이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성원 씨나 전인권 씨가 서로 비즈니스 관계도 하기 싫다고 하니 예전 앨범이나 계속 들어야겠다. 재하는 SUV 삼촌차가 신기한지 한참을 뒤에서 돌아다니다가 짬이 들었다. 아내도 함께 잠이 들었다. 갑자기 생각나서 한 마디 했다.

「요새 소개팅 같은 거 하냐?」

「... 없어 그런 거」

「... 나중에 수술이라도 제 때 받으려면 너 조카한테 잘해야겠다」


공항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재하는 모르는 곳에  와서 그런지 내내 안겨 다녔다. 5박 6일을 여행하려면 체력을 아껴야 하는데 벌써 방전될 위기였다. 원래는 2박 3일이나 3박 4일 정도로 가려고 했다. 아내가 여기저기 사이를 돌아다니며 덕질을 하더니 특가를 하나 잡아냈다. 중문 롯데호텔에서 반 이상 가격으로 할인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원래 롯데호텔의 자랑은 화산분수와 야외수영장인데, 화산은 탄소배출 줄기기 위해서 없애고 야외수영장은 리모델링에 들어간다고 했다. 호텔이 공사 중이니 그런 가격에 상품이 나오게 된 것이다. 우리야 벗으면 민폐기도 하고 애를 데리고 바람 부는 초봄에 야외수영장 갈 일은 없었다. 냉큼 그걸 물었다. 단지 그 패키지는 5박 6일이었기에 일정이 그렇게 되었다. 그래도 아침이나 점심 선택할 수 있고 각종 시설이나 프로그램도 이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안전벨트 안 채우면 순한 아기


탑승을 기다리며 재하는 (안겨서) 창밖의 비행기를 계속 가리켰다. 저기 탈 거라고 하니 까르르 좋아했다. 아빠는 18살 때 수학여행으로 비행기를 처음 타보았는데 얘는 벌써 하늘을 날아보다니 인생이 부러웠다. 비행기에 타서 창가에 앉을 때까지는 좋았다. 다만 안전벨트는 예상 못 한 것 같았다. 분명히 뽀로로도 안전벨트 했던 것 같은데 한 번 찾아봐야겠다. 큰소리로 울어서 우리는 당황했다. 통신이 안 되니 동영상을 틀어줄 수도 없었다. 비행기에서 영상을 틀어줘서 순간 안도했는데 희한한 것이 나왔다. 80~90년대 미국 일반인 상대로 하는 몰래카메라 영상이었다. 이건 내가 국민학생 시절 명절 때 성룡 영화랑 외국인 노래자랑 사이에 틀어주던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아무리 복고풍이 유행이라지만 어디서 이런 걸 구해왔나 싶었다. 높은 분 취향이신지 모르지만 재하에게 이걸 보라고 하니 더 울었다. 이해는 되었다.


사방에 사과를 하고 십 분을 열 시간처럼 느끼며 제주에 도착했다. 딸을 안고 내리니 바닷바람이 불었다. 3년 전 제주를 떠날 때 당분간 보지 말자 하면서 육지로 떠났는데 애가 비행기 타고 싶다는 한마디에 그새 내려오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짐을 찾아 렌터카 셔틀을 타러 갔다. 어디서 타는지 지도를 보려 하자 제주살이 경력 10년 차였던 아내가 호통을 쳤다.

「쓸데없이 한눈팔지 말고 나 따라와」

나는 전문가 말을 잘 듣는 편이기에 군말 없이 따라갔다.


렌터카도 롯데로 빌렸다. 호텔 숙박객은 85% 할인해주기도 했고 아내가 롯데렌탈 주주기도 해서 여기를 선택했다. 비록 한때 공모가 대비 50%까지 떨어졌지만 66% 선까지 회복한 롯데렌탈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40%까지 떨어지면 아내가 목에다 「다시는 공모주를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인쇄한 패널을 걸고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오기로 했었는데 다행히 요즘은 상승 중이었다. 우리의 짧은 사용이 주가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기를 바라며 차량을 인수했다. 요새는 미리 QR체크인을 하면 바로 차를 받을 수 있었다. 다만 차량에 흠이 조금 많아 사진을 열심히 찍었었는데 나중에 직원이 이야기하기로는 그냥 보험 처리하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예전에는 기스 하나에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는데 세상 좋아진 것 같았다. 우리와 함께 버스를 타고 온 20대 청년 셋은 예상대로 박스카 경차를 선택했다. 개중 한 명이 말했다.

「아 떨려」

그걸 보는 나도 떨렸다. 제주는 초보 렌터카들과 원주민 운전자들 사이에 신경전이 좀 있다.  일부 원주민들은 운전 솜씨를 과시하려고 하는지 ‘ㅎ’ 자만 조면 달려들어 신고식을 해서 군기를 잡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이 로터리 같은 곳에서 만나면 환장의 조합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예전에 제주 살 때는 흰색 박스카나 초록색 번호판을 보면 피해 다니기도 했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공항 근처 ‘소리원’으로 향했다. 제주 살 때 자주 갔던 중국음식점이었다. 우리는 여기를 일주일에 한 번 꼭 가곤 했다. 대표 메뉴는 고추짜장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름 특선 메뉴 냉우동을 제일 좋아했다. 냉우동 한 젓가락에 탕수육 한 점을 먹으면 절로 나오는 눈웃음과 함께 아내에게 수줍게 고백했었다.

「옥... 향수병을 일주일은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 말고도 향수병이 도지면 찾았던 두 곳이 더 있었다. 삼치회를 하는 ‘추자본섬’, 참치덮밥을 파는 ‘마구로쇼쿠도’ 였다. 고향이 떠오르면 이곳들에 가서 맛난 걸 먹으며 육지 생각을 까먹곤 했다.


맛없게 찍혔지만 맛있습니다 ㅋㅋ


고추짜장에 김치를 얹어 탕수육을 먹은 후 곧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길을 나섰다. 도의회에 가서 투표를 하려고 했는데 유권자들이 너무 많았다.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기다리기에 우리 집 민의가 더 흉흉했다. 재하는 처음 겪는 긴 여정에 지쳐 짜증에 짜증을 내고 있었고 이를 받아주던 아내도 점점 뻗어가 다크서클이 눈 밑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야구선수 같았다. 일단 서귀포로 넘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살짝 돌아 우리 살던 집 앞을 지나갔다. 야자수도 잘 있었고 집 앞 고깃집도 문 닫지 않고 잘 있었다. 이 집은 판지 한참 됐는데도 잊을 수가 없었다. 한 달에 한번 관리비 스마트 고지서가 카톡으로 날아오기 때문이었다. 해지해야 한다는 걸 매번 까먹는다. 여기서 둘이 살 때 왜 더 놀지 못했을까를 후회하며 뒤를 보니 어느새 둘 다 잠들어 있었다.


평화로를 타고 중문으로 향했다. 제주시 서쪽 편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길은 3개가 있다. 평화로, 5·16도로, 1100 도로이다. 해안도로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긴 한데 귀양 가는 사람도 아니고 놀러 와서 하루 종일 운전해야 하는 그 길을 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에 제외했다. 제일 대중적인 길은 평화로이다. 원래는 국도였다가 제주가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지방도가 되었다. 제주에서 사실상의 고속도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지방도라 예산이 가끔 모자라는지 도로 보수 상태가 약간 요상할 때가 있다. 그냥 돈이 좀 부족했나 보다고 여기면 된다. 속설에 따르면 원래 과속 단속기가 3개 있었다고 하는데 속도 애호가들이 스피드를 즐기며 서귀포에서 제주시내까지 20분에 주파하는 타임어택 놀이를 하자 구간 80km 단속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평화로는 초록 번호판과 ‘ㅎ’ 차량이 공존 가능한 말 그대로 ‘평화로운’ 넓은 직선도로이다. 5·16도로부터는 약간 형편이 달라진다. 이름부터가 이 도로를 지나려면 구국의 결단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들지 않는지. 왕복 2차선 도로(중간중간에 추월선이 있는) 특성상 앞차가 천천히 가면 뒤차도 강제 서행해야 한다. 가끔 제주 쪽 5·16 도로가 시작되는 아라동(제주대 부근, 내가 살고 싶었던 S아파트도 있는)에서 서귀포 진입로까지 15분에 끊었다고 자랑하는 택시 기사님들이 계시다. 이 구불구불한 도로를 15분에 지나려면 그 수많은 코너들을 쇼트트랙 선수처럼 빠져나가야 한다. 당연히 사고는 셀 수 없고 사망사건도 적지 않다. 사건이 잦은 지 흥밋거리조차 되지 않아 뉴스에도 나오지 않는다. 도로를 지나가다 보면 다량의 스키드마크들만이 그 비보들을 전해 주고 있다. 그래도 여기 가 볼만 한 것은 서귀포 쪽으로 내려가는 5·16도로 부근에 ‘숲터널’이라 불리는 곳 때문이다. 나무들이 도로 지붕을 숲으로 만들어주는 구간이다. 나뭇잎들 사이로 햇빛이 부서는 장면은 지금도 종종 기억이 날 정도로 예쁘다. 아쉽게도 달빛이 스며들 때는 본 적이 없다. 달이 떠 있을 때 거기에 가면 안 된다. 15분 스피스 스타들이 어둠을 헤치고 라이트를 쏴 될 것이기에 그렇다. 1100도로는 더 상황이 다르다. 몇 분 걸리니 같은 농담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걸로 입에 올릴 곳이 아니다. 사실 구국의 결단은 5·16보다 여기를 지날 때 해야 한다. 사망사고도 잘 나오지 않는다. 아예 가지 않아서 그렇다. 평화롭기는 하다. 초록 번호판도 기어가야 해서 그렇다. 이곳은 1100으로 가라는 고약한 네비를 만난 초심자들이 태반이고, 도로 중간중간 장소에 연고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온 원주민들이 오가고 있다. 그 외 통행 용도로는 거의 가지 않는다. 나는 1100을 두 번 가보았다. 실수로 한번, 그리고 그 도로구조를 믿을 수가 없었어서 정신 차린 후 다시 한번 가보았다. 180도 회전 코너를 수차례 넘으면서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한 후부터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평화로 18분, 5·16 15분의 기록을 자랑했던 한 원주민 스피드 스타께서는 1100 도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저는 멈추는 것을 싫어해서 엑셀보다 브레이크를 더 많이 밟아야 하는 도로는 가지 않습니다」.


평화로를 타고 가다 보니 새별오름이 보였다. 봄이 올 즈음에 억새풀을 태우는 들불놀이로 유명한 오름이다. 아직 시작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축제 시즌이 오면 새별오름 전방 한참부터 갓길에 차들이 서 있다. 과장하지 않고 주차된 차들의 길이가 5km쯤 되어 보였었다. 풀을 잔뜩 태우지만 화재사건은 나지 않는데 주차시비는 좀 있는 그런 행사이다. 그래도 나름 한번 보면 중독성 있어 계속 찾게 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줄이 계속 늘어나는 것도 같다.


중문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에 뒷자리 모녀는 잠에서 깼다. 자니까 기운이 좀 나는 모양이었다. 피곤하지만 그래도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는 행하고 마음 편히 놀자 하여 중문동 주민센터로 향했다. 투표장에 내리자 미친듯한 돌개바람이 불었다. 돌들이 안경을 마구 쳤다. 처음 당해보는 자연의 횡포에 재하는 눈물을 보였다. 봄 제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이곳을 미워했던 내 편협한 마음을 반성하고 있었는데 돌팔매질을 당하고 나니 ‘아 씨 이래서 섬 떴지’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놀 땐 놀더라도 투표는 합시다


누가 되든 나라가 평안해지기를 바라며 투표를 하고 호텔로 향했다. 5성급 호텔답게 우리의 캐리어를 매니저께서 바로 받아주었다. 재하는 모르는 아저씨가 가방을 뺐어갔다며 울었다. 지가 끌 것도 아니면서 소유 관념만 확실했다. 방에 들어서자 딸은 바로 누웠다. 집에 가자고 계속 칭얼거리더니 숙소 상태가 마음에 들었는지 별 말없이 곳곳을 돌아다녔다. 걱정했는데 판단은 되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특히 재하가 재미있어한 것은 유선전화기였다. 다들 스마트폰만 들고 다니니 유선전화기를 처음 보게 된 재하는 신나서 이것저것 눌러보았다. 덕분에 프런트 매니저님은 29개월 아기 전화를 세 번 받았고, 아기 애비는 백배사죄하며 조아려야 했다. 그러고 나서는 전화선을 뽑아버렸다. 저녁은 다들 입맛이 없어 그냥 굶기로 했다. 나는 아내와 딸이 마실 가공유와 주스를 편의점에 가서 사 왔다. 저 두 분은 그냥 물은 절대 드시지 않는다. 건강이 걱정되는데 실제로 당뇨를 제일 조심해야 하는 건 물 많이 먹고 채소도 잘 먹고 운동도 하는 나인 것이 왠지 빡쳤다. 티를 낼 수는 없으니 먹을 것을 사 왔다고 치하하는 아내에게 ‘제가 봉사할 수 있어서 영광이다’라는 상투적 말을 늘어놓았다. 우리는 굶어도 재하는 그래도 뭔가 먹여야 할 것 같아 호텔 빵집에 가서 크루아상과 와플을 사 왔다. 호텔 빵집은 가격만 비싸고 맛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심술 난 편견이 있었는데 빵이 완전 맛있었다. 그래서 딸내미는 별로 먹지 않고 내가 다 먹었다. 아 남긴 걸 자꾸 주워 먹어서 살찌는 거였구나.


이건 도대체 언제 때 유물인 것이냐



재하를 씻기고 우리도 샤워를 했다. 집에서는 돈도 아깝고 욕조 닦기도 귀찮아서 못하던 반신욕을 물 잔뜩 받아서 했다. 내일 누가 치워준다는 생각을 하니 흐뭇했다. 이 맛에 호텔 오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좀 있다가 제주여행 첫 날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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