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 저녁에 학교에서 학부모 모임 있어, 갈 거지?"
"응, 가야지."
저녁 6시, 아이들 저녁을 챙겨주고 학부모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그룹별로 앉으라는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아이 이름을 확인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올해 같은 ‘친구 그룹’이 된 부모들과 인사를 나눴다.
노르웨이 초등학교에는 ‘친구 그룹(Vennegruppe, 벤네그루페)’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같은 그룹이 된 아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방과 후에 만나서 친구 모임(플레이 데이트)을 한다. 보통은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각자 집으로 그룹 아이들을 초대하는데, 2시간 정도 함께 놀이 시간을 가진다. 우리 그룹의 첫 모임은 엠마 집에서 하기로 했다.
"이번 주 목요일, 하교 시간에 맞춰서 애들을 모두 픽업할게요. 4시까지 데리러 오세요. 커피 마실 분들은 조금 일찍 오셔도 됩니다."
목요일 3시 40분쯤, 엠마네 집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다. 위치를 보니 우리 집과는 반대쪽에 있는 마을이다. 한적하고 고요한 주택가로 들어서서 집 입구를 찾는다. 전형적인 노르웨이식 2층 목조 주택이었다.
정원에 있는 트램펄린 쪽에서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정원 나무들 사이에 작은 쪽문이 열려있지만 현관 앞으로 가서 벨을 눌렀다. 엠마 아빠가 문을 열어 주었다.
'앗! 엠마 아빠가 계셨네. 엄마는 아직 퇴근 전 인가 봐.'
엠마 아빠가 커피 한 잔 하고 가라고 권했다. 집안에서 먼저 픽업을 하러 온 다른 엄마가 눈빛으로 인사를 건넸다. 인사에 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집안으로 들어갔다.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테이블에 앉았다. 소소한 이야기들로 시작해서 핸드폰이나 게임 허용 시간, TV 시청 시간 같은 평소 고민이었던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노르웨이 학교에서는 학교와 학부모, 학생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늘 강조한다. 최근에는 아이들끼리 친하게 지내도록 돕는 역할을 넘어 부모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아이들의 친구 관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지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벌써 9년 전이다. 노르웨이 육아와 교육에 대한 책을 쓸 때, 노르웨이 초등학교의 다양한 사회정서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인터뷰를 했었다. 친구 그룹(Vennegruppe, 벤네그루페)은 평소 같이 놀지 않던 친구와도 어울려 놀 수 있기 때문에 왕따 같은 학교 폭력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우리처럼 외국인 가정이나 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친구들 집에 초대를 받고 자연스럽게 초대를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직접 이 프로그램을 경험해 보니 책을 쓸 때는 알지 못했던 점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놀다가 TV를 망가트렸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각자 핸드폰만 보고 서로 놀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또 이민자나 난민 가정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종교적 차이나 경제적인 부분의 차이를 배려하지 않는 프로그램이라는 말도 들었다. 선생님들은 학교 체육관이나 빈 공간을 빌려줄 수 있으니 꼭 집으로 초대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지만 부모로서 부담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집에도 웃픈 이야기가 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친구 집에서 가서 놀고 온 아이가 "엄마, 나도 계단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라고 말했다. 남편과 나는 “계단 있는 집이 좋아?”라며 웃으며 넘겼지만 둘째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즈음해서 우리는 - 대출을 조금 더무리하게? 받아서 - 계단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이사할 때 가장 중요한 조건이 계단이 있는 집이었다.
집에 계단이 있으니 이제 괜찮겠지 싶었는데 둘째가 또 말했다.
"엄마, 우리도 정원에 트램펄린 놓을 수 있는 집으로 이사 갈까?"
남편과 나는 우리 집의 좋은 점을 열심히 어필하면서 그냥 웃었다.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도 현실에서는 예상치 못한 파장을 만든다. 이사를 갈 수도 없고, 트램펄린에서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있는 집도 아니지만 아이들 친구들이 오면 다같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아이디어를 떠올려 본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콘셉트로 집을 꾸미고 ‘김밥’ 만들기를 해볼까? 아니면, 날씨가 추워지고 있으니 호떡을 만들어 볼까?‘
우리 집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 고민은 계속 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