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마미바바와 오슬로 노하
안녕하세요, 노하 님
누군가 정한건 아니지만 비가 내리고 추워지면 왠지 뭔가 만들고 싶어져요. 그런 계절이 돌아왔어요.
저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처럼, 무엇을 만들 때도 저만의 퍼포먼스가 있어요. 의식처럼요. 아주 뜨거운 커피는 꼭 있어야 하고요. 입안을 달달하게 만들어 줄 단 것이 필요해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냄새 (전 개인적으로 달콤한 냄새보다 민트향이나 우디향을 좋아해요 프레시한 자연의 냄새를) 그리고 음악이 있어야 해요.
적으면서 '나는 나를 어느 면으로는 참 아끼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자꾸 자책을 해서 나를 사랑하지는 않고 있다고 단정 짓고, 언제나 나 자신을 사랑해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저를 스스로 아끼지 않고서야 매번 저렇게 준비를 할 수 있을까요? 커피도 매번 직접 수동으로 갈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마셔요. (원하는 커피 빈을 사기 위해서 30분 걸리는 곳에 일부러 가고요. 커피 빈을 사는 카페랑 제가 가서 앉아서 마시는 카페가 달라요.)
아이로니컬한 미스터리 아줌마였네요. 자꾸 나 자신에게 자각을 시켜줘야겠어요. “이것 봐~이게 너 자신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거야… 사랑해”라고요.
전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요. 바느질, 뜨개질. 아마 그래서 포트리 만드는 게 좋았나 봐요. 글도 손글씨로 쓰는 것이 더 좋고요.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합니다. 마음은 급하지만 천천히 하는 게 좋아서 그런가 봐요.
그러고 보니 여기도 인생이 담겨있네요. 뭘 만들지 찾아보고, 생각하고, 결정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만들고, 만들다 실수하면 다시 하고… 그래서, 그래서 다 괜찮아요, 그렇죠? 실수하고, 넘어지고 그래도 그래도 다시 일어나고, 조금 더 성장하고 그런 거죠?
노하 님은 혹시 뭘 만드는 걸 좋아하시나요?
파리에서
마미바바로부터
마미바바 님께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링크를 클릭할 때, 편지 봉투 열 때의 설렘 같은 것이 있어요. 저의 답장도 그런 설렘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요즘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른 데 말이지요. 바바 님에 대해서 알게 되고, 또 저에게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그런 시간과 인연에 감사해요.
그거 아세요? 바바 님만의 퍼포먼스에는 오감이 다 있어요. 뜨개질 사진을 보면서 바바 님 곁에 있을 뜨거운 커피와 우디향, 음악을 상상해 봅니다. 사진에 담기지 않은 것들이 점점 보이고, 들리고, 손끝과 코 끝으로 감각이 살아나길 바라면서요. 바바 님 말씀처럼 그런 나만의 취향들 있다는 건 분명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고 있다는 것이라 생각해요. 저도 저만의 취향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저의 오감을 다 살피고, 그것들이 살아나도록 퍼포먼스, 의식을 더 만들고 싶어요.
저에게 만들기를 좋아하는지 물으셨지요? 저는 만들기를 좋아해요. 그런데 잘 하는 것은 별로 없어요. 손재주가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 한복 만들기 실습 과제가 있었는데 그때 아무래도 점수가 안 나올 것 같아서 엄마에게 다시 부탁했던 기억이 있어요. 대학 때는 스킬자수랑 십자수가 유행이었거든요. 그래서 대학교 정문 앞에 있는 실 가게에 부지런히 드나든 기억이 있습니다. 남편과 연애할 때 선물했던 십자수가 지금 노르웨이 집에도 있어요. 하지만 저의 흥미를 오래 끌지는 못했던 만들기였네요.
저는 저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태교를 핑계로 아크릴 그림을 잠깐 배운 적이 있고요. 요즘도 디지털 드로잉이나 AI 아트 수업을 듣고, 1일 1그림 그리기 챌린지도 참여해요. 그림 그리는 분들과 소통하면 그 꿈을 계속 잊지 않을 수 있어 좋아요. 다른 분들의 캘리, 수채화 등등 멋진 작품을 감상합니다. 저도 챌린지 완주를 위해 작품을 그릴 시간을 내보고 싶은데 여전히 'Writing'에 밀리는 'Drawing'입니다.
제 꿈은 제 그림이 들어간 에세이를 쓰는 거예요. 예전엔 비밀이었는데요. <아티스트 웨이>를 읽은 후로는 계속 여기저기 소문내고 있어요. 언젠가는 노르웨이의 멋진 풍경을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 드릴게요.
-북유럽 겨울에, 오슬로에서 노하 드림
p.s. 거실 창밖에 함박 눈꽃이 가득하네요. 자연은 매일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