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노하 Norway Jan 22. 2024

[교환편지#12] 유럽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파리의 마미바바와 오슬로의 노하

안녕하세요, 노하 님


어떻게 지내시나요? 기다리고 기다리던(유럽 스타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한 해가 끝나가고 있어요. 20년 넘게 유럽에서 살고 있지만 아직도 크리스마스가 적응되지 않아요. 그런데 올해는 적극적으로 해 보려고요. 저희 집 큰딸 코코에게는 일 년 중 제일 중요한 날이라서 이번 해는 다른 해와 다르게 해 보려고 해요


내년에는 나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을 해봅니다. 워낙 아날로그 감성이다 보니 손으로 글씨 쓰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요즘 <불릿 저널> 검색을 엄청 했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핀터레스트에 핀만 하고 몇 번 시작하다 말고, 그러다 다시 검색하면서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어요.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니까 그냥 포기하고 지냈던 프로젝트가 <불릿 저널>이에요.


내년에는 '나를 위한 시간'을 많이 만들어 보려고요. 가족을 위한 시간보다 나만을 위한 시간요. 그래서 나를 사랑할 수 있는 해로 만들어 보려고 해요. 그중에 하나가 <불릿 저널>입니다. 나를 알아가는 기록, 나와 만나는 기록. 새해에는 꼭 꾸준하게 실천해 보고 싶어요. 무엇이든 생각만 하고, 검색한 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행을 하려고요. 그래서 기대를 해봅니다.


기대를 실천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실행하는 연습도 필요할 것 같아요. 첫 번째 작은 실천으로 나를 위한 포리지(Porridge) 만들어서 아침을 먹기 시작했어요. 항상 아이들이 먹고 싶다면 아이들 것만 만들고 애들이 먹다 남은 것 한 두 입 먹었거든요. 그게 뭐라고…. 나를 위한 포리지(Porridge) 만들고 먹기 시작하니 일단 기분이 뿌듯했답니다.


이런 작은 실천이 모이면 어느 날 성취감을 느끼고 좀 더 크고 무거운 무언가를 실천하게 되겠죠? 암튼 이미 알고 있는 그저 평범한 일상생활을 나 자신만을 위해 시간을 낸다는 자체가 저에게는 큰 의미입니다. 이 이야기도 불릿 저널에 살짝 써야겠네요. 칭찬+성취일기 로그란예요.

노하 님께서는 내년에 어떤 자신을 위한 프로젝트를 갖고 계시나요?


파리에서

마미바바로부터




안녕하세요. 마미바바 님.


크리스마스 휴가를 잘 보내셨나요? 이번엔 크리스마스를 적극적으로 보내시겠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크리스마스가 휴가를 히떼(Hytte, 별장)에서 보냈어요. 오슬로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스키 리조트 지역인데 겨울 별장들이 모여있는 곳이에요.


불가능할 것을 알면서도, 저는 히떼에 갈 때마다 늘 저만의 코슬리(Koselig) 한 시간을 상상해요. 노르웨이어로 코슬리 하다는 건 벽난로에 불을 피워 놓고,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책을 읽는 거죠. 솔랜드 감자칩에 맥주. 혹은 브라운 치즈를 올린 비스킷에 와인 한 잔을 마시면서요. 밤이 아니라 낮이나 오후여도 상관없으니 일주일 중에 딱 한두 시간만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실은 무려 10명. 세 가족이 함께하는 겨울 스키 캠프나 다름이 없었어요. 매일 다운힐 스키와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번갈아 탔어요. 그렇다고 제가 스키를 잘 타는 것으로 기억하지는 말아 주세요. 스키를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초보예요. 전 스피드를 즐기지 않거든요. 내리막길이 두려워요. 넘어질까 봐, 다칠까 봐서요.


즐기는 스키를 타야 하는데, 책임지는 스키를 타고 있어요. 제가 말하는 책임지는 스키는 “노르웨이에 사는 동안 한국에서 즐기지 못한 걸 하면서 살아야 한다. 가족이 모두 함께 즐겨야지 엄마 혼자 빠질 수는 없다.” 라는 (남편의) 생각과 맞닿아 있어요.


마미바바 님도 책임지는 것에 익숙하시지 않으신가요? 엄마가 된 이후, 나를 위한 '즐거움'을 생각을 해 보지 못했어요. 노르웨이에선 제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게 너무 없었어요. 새해에는 '책임'에서 획을 덜어내고 '즐기며'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정해서 아이들에게도 선언해 보려고요. '엄마도 계획한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면 두 딸들에게도 좋지 않을까요?


일단 저는 노르웨이어 실력을 쌓을 거예요.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면 틀리더라도 계속 말할 거예요. 큰 맘먹고 언어 실습 코스도 시작했으니 이 기회를 놓치면 안돼요!


입꼬리를 올려서 웃으면 우리 뇌는 내가 기분이 좋은 것으로 인지한다고 하잖아요. 즐거움을 가장해서 노르웨이어를 좋아할 거예요. 이번에는 번아웃이 오지 못하게 즐기면서 웃으면서 노르웨이어와 가깝게 지낼 거예요.


두 번째는, 짐작하실 수 있으실 것 같은데요. 우리의 매거진 N’a - 작가 프로젝트예요. 저에게 글쓰기는 용기이고 즐거움이면서 보람이에요. 혼자서 글을 쓰면 멈출 것 같아서요. 작가님들과 함께 용기내고, 즐기면서 꾸준히 글을 써 나갈 거예요. '스피드'보단 '꾸준함'을, '완벽'보다는 '시도와 수정, 다시 반복'의 여정을 걸을 거예요. 시간의 복리가 책으로 만들어지는 경험하실 수 있도록 해드릴 거예요.


제가 가고 싶은 이 여정이 마미바바 님과 함께라니, 이미 전 행운을 가득 품고 한 해를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파리의 포토 그래퍼. 마미바바 님이 계획하신 <불릿 저널>과 <포리지> 이 두 가지도 잘 기억해 둘게요. 우리 이렇게 글로 남기고 나중에 책으로도 만들어 낼 거니까요.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겠네요. 올해를 마무리하는 편지에 적어둔 우리들의 새해 프로젝트를 1년 후에 읽으며 다시 이야기 나누어요.


오슬로에서

노하가 보냅니다.


이전 11화 [교환편지#11] 마미바바 님은 꼼지락. 저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