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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1993년 7월 26일 월요일 오후

by 노래하는쌤

1993년 7월 26일 월요일 오후 / 서울, 김포공항


세윤, 세준이 엄마 장례식 다음 날.


“성민아, 고맙다. 연락할 사람이 너밖에 생각이 안 나더라.

세준아, 세윤아, 삼촌이랑 조심히 내려가.

나주 가면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어.

아빠는 여기 일 정리되는 대로 바로 내려갈게.”


“무리하지 않아도 돼.

내가 세희 여름방학 때 서울 구경시켜준다고 했으니까,

그때 세윤이랑 세준이도 같이 데리고 올라올게.”


“그래 줘서 고맙다. 내가 전화할게. 조심히 내려가.”




비행기 안.


“세윤이는 올해 몇 살이니?”


“열두 살이에요.”


“세희보다 두 살 많네. 세희가 늘 언니 있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세희가 정말 좋아하겠다.”


“저도 여동생 생겨서 좋아요.”


“세윤이는 롯데월드 가봤어?”


“작년에 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아파서 못 갔어요.”


“그랬구나…”


세희 아빠와 세윤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세준은 말없이 닫힌 창문 너머를 바라본다.

장례식 내내 울지 않았던 세준이의 굳은 표정이, 세희 아빠의 마음에 자꾸 걸린다.


“삼촌,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세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세희 아빠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세준아,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해도 돼.”


“……”


“남자라고 다 참는 거 아니야. 울고 싶을 땐 울어도 돼.”


그 말에 세준이의 눈가가 금세 붉어진다.

눈물이 맺히더니, 이내 뚝뚝 떨어진다.

세희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세준이를 꼭 안아준다.


엄마의 장례식 동안,

세준이에게 가장 많이 들렸던 말은

“장남이니 아빠를 위로해 드려라.”

“동생 잘 챙겨라.”였다.


하지만 정작 세준이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병원에 실려 간 뒤, 아빠는 매일 병원을 들렀다가 술을 사 들고 귀가했다.

그때부터 어린 세준이에게 동생 세윤을 돌보는 일까지 모두 맡겨졌다.


“성원이가 세준이 의젓하다고 칭찬 많이 하더라.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삼촌한테 얘기해. 알겠지?”


“네. 감사합니다.”


그때 세윤이가 돌아와 세희 아빠 어깨에 기대 잠이 든다.

세준은 눈물을 닦고 창밖을 바라본다.


잠시 후,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친다.


“세준아, 나주 내려가면 세희 데리고, 삼촌이랑 롯데월드랑 63빌딩 구경 갈래?”


“좋아요. 감사합니다.”


“삼촌이 너 여덟 살 때 봤었는데, 그땐 너무 어려서 기억 안 나지?”


“기억나요. 제가 부탁해서 삼촌이 오토바이 태워주셨잖아요.”


“하하, 그랬지. 그 일로 너희 아빠한테 엄청 혼났단다.”


“알고 있어요. 죄송해요. 제가 그런 부탁해서……”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괜히 자랑해서 그랬지.”


“저희 아빠가 세희할머니한테 말씀드려서 삼촌, 세희할머니한테 혼나고는, 그 오토바이 팔았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안 팔았어. 아직도 몰래 타고 다닌다.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다.”


“네. 알겠어요.”


‘우리 둘만의 비밀.’


그 말에 세준의 가슴이 이상하게 두근거린다.


“세준아, 피곤하면 자도 돼.”


“아니에요. 삼촌이랑 이야기하니까 좋아요. 아빠랑은 이런 얘기 한 번도 못 해봤어요.”


“아빠가 너희한테 많이 미안하대. 이제부턴 시간 많이 보낼 거라고 하더라.”


“저한테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근데 세준아, 아빠가 네 걱정을 하시더라. 네가 ‘엄마가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생각한다면서.”


“제가 카메라 갖고 싶다고 했거든요. 그 말만 안 했으면 엄마가 일 안 나가셨을 거예요.”


“그건 어른이 선택한 일이야. 세준이 탓이 아니야.”


“엄마가 일 안 나갔으면… 아프지도 않았을 거예요. 결국 저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아니야. 그건 절대 네 잘못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지 마.”


세준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인다.

세희 아빠는 조용히 세준의 어깨를 감싸고, 그의 손을 꼭 잡는다.


세준은 삼촌의 손을 꼭 쥔 채, 입술을 떨며 속삭인다.


‘삼촌… 정말 감사합니다.’


*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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