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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가 되고 싶어요.

1993년 7월 26일 월요일 오후

by 노래하는쌤


1993년 7월 26일 월요일 오후 / 목포공항행 비행기 안


‘삼촌, 정말 감사합니다.’


“세준이는 세희 얼굴 기억 안 나지? 세준이가 세희보다 세 살 많으니까, 그땐 세희가 다섯 살이었겠네.”


“얼굴은 잘 기억 안 나요. 근데 무슨 노래인지는 모르겠는데, 세희가 나무 기둥 위에 올라가서 계속 노래 부른 건 기억나요.”


“우리 세희, 지금도 노래 잘 불러. 방학하면 노래방 가고 싶다고 했는데…… 우리 세윤이도 예쁜데, 세희도 얼마나 예쁜지 몰라.”


“엄마가 그러셨어요. 세윤이랑 세희랑 많이 닮았다고.”


세희 아빠는 어깨에 기대 잠든 세윤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말 닮았네. 신기하다. 삼촌 학교 다닐 때도 성원이랑 닮았다는 말 많이 들었어. 세윤이가 아빠 닮아서 그런가 보다.”


세준의 표정이 한결 밝아지자 세희 아빠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삼촌이 내년부터 서울로 학교 다니게 돼서 세희는 할머니랑 지내게 될 거야.”


“아빠한테 들었어요. 제가 세희도 같이 챙길게요.”


“아이고, 세준이가 너무 빨리 어른이 돼버렸네. 세희는 삼촌이랑 할머니가 챙길게.”


“네, 알겠습니다.”


“세준아, 성원이가 그러더라. 세준이는 혼자서도 다 잘한다고. 그래도 힘들고 속상한 일 있으면 아빠한테 꼭 말하고, 삼촌한테도 말해. 알겠지?”


“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세준이 사진 찍는 거 좋아한다며?”


“네. 전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요.


“이번에 서울교육청 사진 콘테스트에서 상 받았다고 아빠가 자랑하던데?”


“아빠가 그런 얘기도 하셨어요? 관심도 없으신 줄 알았는데.”


“성원이가 그동안 마음의 여유가 없었나 봐. 우리 세준이, 나중에 유명한 사진작가 되기 전에 삼촌이 1번으로 사인 받아놔야겠다.”


“크크, 아직 멀었어요. 삼촌도 사진 찍는 거 좋아하세요?”


“응. 삼촌도 좋아해. 근데 내가 찍는 건 거의 다 세희 사진이지.”


“아빠가 삼촌 유명한 딸바보라고 했어요.”


“흐흐, 거기까지 소문이 났어? 세준이는 어떤 사진 찍는 거 좋아해?”


“전 풍경 찍는 거요.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보면, 그때 기억이 선명하게 살아나는 게 좋아요.”


“이야, 전문가 포스인데?”


“아니에요. 엄마 사진을 많이 못 찍어드린 게 제일 아쉬워요.”


사진 이야기를 하는 세준의 눈빛이 반짝였다.

잠시 눈시울이 붉어진 세준은 가방을 뒤적여 사진첩을 꺼냈다.

그 안에는 서울 곳곳의 풍경사진이 꽂혀 있었다.


“우와, 이거 세준이가 다 찍은 거야?”


“네. 아빠는 주말에도 마트를 열어야 돼서, 엄마가 시간 날 때마다 사진 찍기 좋은 곳에 데려가 주셨어요.”


“성원이 말처럼, 우리 세준이 이미 사진작가네. 삼촌이 봐도 정말 멋지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우리 세희도 예쁘게 찍어줄 수 있어?”


“당연하죠.”


그 말에 세준은 지금껏 본 적 없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세희 아빠는 다정하게 세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때였다.

비행기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 현재 저희 비행기는 오후 3시 15분 목포공항 도착 예정이었으나, 기상 악화로 잠시 우회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내 시까지 자리를 이동하지 마시고, 안전벨트를 꼭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방송 소리에 세윤이 잠에서 깼다.

기상 악화로 두 차례 착륙에 실패한 뒤, 자리 이동을 금지하고 창문을 열라는 안내가 이어졌다.


세윤은 생애 처음 타보는 비행기가 신기했다.

창가 쪽에 앉은 세준에게 자리 바꿔 달라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세윤아, 오빠가 자리 바꿔줄게. 바꾸자.”


세윤은 신이 나서 승무원의 눈치를 보며 얼른 벨트를 풀었다.

세준이 자리를 비켜주자 세윤은 창가에 앉아 얼굴을 들이밀었다.


‘딸깍.’


세준은 세윤의 벨트를 다시 채워주었다.


“오빠 고마워. 세준 오빠 최고!”


그것이 세윤의 마지막이 될 줄은 세준조차 몰랐다.


‘콰앙— 쾅, 쾅쾅!!!’


엄청난 굉음이 터지며 비행기가 추락했다.


“세윤아! 세윤아!! 이세윤!!!”


*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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