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7월 26일 월요일 오후
“세윤아! 세윤아!! 이세윤!!!!!!”
1993년 7월 26일 월요일 오후 / 해남, 대석산 중턱
“세윤아! 세윤아!! 이세윤!!!!!!”
“세준아! 세준아, 정신 차려봐!”
“삼촌… 세윤이는요?”
“세준아……”
세희 아빠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렸다.
창가 쪽, 세윤이의 자리엔 피가 번져 있었다.
창문에 머리를 부딪친 세윤이는 이미 숨이 멎어 있었다.
“세윤아, 눈 떠봐. 세윤아! 정신 차려!
삼촌, 세윤이 죽은 거 아니죠? 삼촌, 제발 뭐라도 말 좀 해봐요!”
“세준아… 미안하다.”
“삼촌, 세윤이가 죽었을 리가 없잖아요.”
세준은 세윤이에게 다가가려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곧 왼쪽 다리에서 터져 나오는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세준아, 움직이면 안 돼!”
세준이의 왼쪽 허벅지는 피범벅이었다.
앞좌석이 내려앉으며 다리를 깊게 파고들어 살이 벌어지고, 하얀 뼈가 드러나 있었다.
세준은 다리의 통증과 세윤을 잃은 충격이 뒤섞여 숨이 넘어가듯 울부짖었다.
“삼촌… 흑, 삼촌… 다 내 잘못이에요.
내가 자리 바꾸자고만 안 했어도… 흑흑… 삼촌… 다 나 때문이에요.”
세준은 울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세준아, 네 잘못은 없어.
그 어떤 것도 네 탓이 아니야.
세준이 엄마도, 세윤이도, 절대 네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삼촌… 흐허어어어엉……”
비행기 밖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잔해 틈새로 사람들의 발자국이 점점 가까워졌다.
“아따, 지름냄새 징해브요. 그란디 산 사람이 있겄어?”
“한 목심이라도 붙어 있어블줄 모른께 잔말 말고 찾아블장께.”
“즐대로 담배 피울생각 하덜 말아블고 라이타 켜블믄 안됭께 다덜 명심하소.”
“졸도해브렀을수도 있응께 숨 쉰가 안 쉰가 잘 확인들 허랑깨.”
마천마을 주민들이 재빨리 잔해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들의 얼굴엔 피와 흙이 범벅되어 있었지만, 눈빛은 단단했다.
“아이고매, 마천아재요! 여기 사람들 살어 있어라. 이짝으로 와보랑깨요.”
“오메, 어째야쓰가이. 여 애기 어매가 아를 안아갖고 아는 살았는갑소. 아적 숨이 붙어있어라.”
“얼렁 안아갖고 밑에짝으로 대래가소. 내래 가블믄 마을회관 앞에 이장님이 트럭 빌려갖고 지달린다했당깨.”
“왐마, 마산덕 등짝에 피가 겁나브요. 다쳐븐것이여?”
“아니랑깨, 나가 아까참에 업어다가 대래다줘븐 사람 피랑깨.”
“아따, 아니고만 거 어깨쭉지에서 피 나오고만.”
“그라요? 어따 쓸겼는갑소.”
그들은 자기 몸이 다치고 피가 흐르면서도, 구조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눈빛에 불을 켜고 움직였다.
“해남이 삼춘 손등에서 피가 허벌나게 나븐디 아따 장갑끼고 하랑깨요.”
“아따, 인자 이짝에는 구해블 사람이 더 없는 것 같으요잉. 근디 쩌짝에 불 붙어븡거 아니여?”
“불꽃이 막 튀어븐디라? 저래블다가 폭발해븐거 아니여?”
마천마을 주민들이 다급하게 소리지른다.
“다덜 인자 산 밑으로 내려갑시다. 여기 불 붙어블어당깨. 얼렁얼렁 다들 싸게싸게 내래가블장깨요.”
‘콰앙—!’
비행기 잔해에 불이 붙으며 폭발이 일어났다.
불꽃과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다덜 조심하시요!!!!!!!!!!!!!!!”
날카로운 파편 하나가 세준의 머리 위로 날아왔다.
세희 아빠는 본능적으로 세준을 끌어안으며 몸을 돌렸다.
순간, 파편이 그의 등쪽 날개뼈를 꿰뚫고 가슴 깊숙이 박혔다.
“으아악… 헉.”
“삼촌! 삼촌! 괜찮아요?”
세준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세희 아빠의 숨이 거칠게 끊기며 입술이 희미하게 떨렸다.
“세준아… 명심해. 네 잘못은 하나도 없어.”
그는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다.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세준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 안엔 세희 생일 선물로 준비한 나비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세준아, 살아줘서 고맙다. 삼촌이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할게.”
“삼촌… 제발 정신 차려요, 삼촌……!”
“세희 좀 부탁한다. 세준이도, 세희도 꼭 행복하게 살아라. 세희한테 전해줘. 지금처럼… 꽃처럼 활짝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세희 아빠의 손끝이 천천히 힘을 잃었다.
세준이의 울음이 산등성이를 뒤흔들었다.
“삼촌! 삼촌!! 성민이 삼촌!!!!!!!!!!!!!”
세준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여말이요! 욜로 와보시오. 여그 사람 깔렸당깨요. 얼렁 와보란말이요.”
마천마을 주민들이 일사불란하게 비행기 잔해를 들어 올린다.
“하나 둘 셋 하믄 들어 올리시요잉.”
“하나 둘 셋 으자자자자!”
마천마을 주민이 길게 벤 나무와 입고 있던 옷으로 들것을 만들고 세준이를 올려서 산 아래로 조심히 내려간다. 마천마을 슈퍼 아주머니가 4살 아이를 안고 그 뒤를 따른다.
산 아래는 부상당한 탑승객을 병원으로 이송하려고 마천마을 이장님과 마을 주민들 차량이 대기하고 있다. 세준이와 4살 아이를 태워 해남병원으로 이동한다.
“아가, 죽덜 말랑깨. 아줌마가 병원에 델다 줄때까정 쫌만 버텨라이. 이장님 싸게 싸게 갑시다잉.”
마천마을 이장님의 차를 타고 해남 병원으로 이동 하던 중 4살 아이는 숨을 거둔다.
“오메, 오메, 이것이 먼일이여. 내 손에서 목심이 떠나븟당께요. 오메!!!!!!!!!!!!!”
마천마을 슈퍼 아주머니가 숨진 아이를 안고 끝도 없이 오열을 한다.
슈퍼 아주머니의 울음이 산을 넘어 흘러갔다.
그날, 대석산엔 하늘이 무너진 듯한 통곡이 울려 퍼졌다.
*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 소설 속 마천마을 주민들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했습니다.
참고자료 : 마천마을 사람들 - 나무위키
참고자료 :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