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7월 26일 월요일 오후
1993년 7월 26일 월요일 오후 / 전라남도 해남, 해남병원 응급실
"생사여부만 알려주세요. 신현철, 신석현 확인 부탁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병원으로 오신 분 중에 두 분은 없습니다."
"그럼 어디로 가야 확인할 수 있을까요?"
"저희 병원으로 오신 환자 분 신원파악만 할 뿐 사망자, 생존자 명단은 모릅니다."
"그럼 여기 말고 다른 병원으로 간 환자는 없나요?"
"죄송합니다. 저희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여기로 온 환자 중에 남자아이는 없었나요?"
"현재 신원파악 안 된 분 중에서 인상착의 비슷한 분도 없습니다."
"살려내! 살려내라고! 피 같은 내 새끼 살려 내란말이여!"
"아빠, 엄마는? 엄마는 어떻게 된 거야?"
"이것이 먼일이다냐? 애비는 어찌 된 것이여?"
"오메, 다 가블믄 내는 어쩌코롬 살란 말이여!"
"그랑께, 어디로 가야 된 지만 알려달란 말이요."
사고 소식을 듣고 몰려든 가족들로 응급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생과 사를 오가는 절규와 오열, 절망과 분노가 뒤섞여 병원 복도는 마치 전쟁터처럼 요동쳤다.
"외과 수술이 필요한 환자분들은 소방당국에 협조요청하여 광주 전대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정확한 환자 명단은 파악되는 대로 병원 내부 원무과 옆 전광판에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해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조금만 질서 있게 기다려주세요."
"사람이 디져브렀는디 진정이 되겄소."
"사람 환장해블겄네. 죽었능가 살었능가 알아야 헐 것인디 사람 돌아블것고만."
"아따, 조용히 좀 해보랑께요. 뉴스에 인자 나오고 있는갑소."
병원 휴게실 TV에서 아시아나항공 733편 목포공항 추락 뉴스가 긴급 속보로 흘러 나오고 있다.
NBC뉴스 속보입니다.
오늘 오후 2시 20분에 김포공항에서 출발하여 3시 15분에 목포공항에 도착 예정이었던 아시아나항공 733편이 추락하였습니다. 사고 원인은 현재 파악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목포소방서 해남소방파출소 소방차 및 구급차들이 출동하고 목포소방서 119 구조대도 출동하여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총 탑승인원은 110명이며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는 44명입니다. 산중에 추락하여 현장 접근이 어려워 구조에 난항을 겪고 있으며, 해군의 구조헬기가 긴급 투입 될 예정입니다. 현재 소방 당국은 생존자 구출과 사망자 시신 수습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구조자 대부분이 부상의 정도가 심해 추가 사망자가 더 발생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구조된 승객은 인근의 해남병원으로 이송되었으며, 일부는 광주의 전대병원으로 이송예정이라고 합니다. 사망자명단과 생존자명단은 파악되는 대로 다시 방송하도록 하겠습니다.
명단이 화면 아래로 흘러나올 때마다 여기저기서 비명과 통곡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이름을 찾아 울부짖고, 누군가는 희미한 희망에 매달렸다.
응급실 복도 곳곳엔 절망이 들끓었다.
세윤이와 세준이, 세희아빠가 탄 비행기 추락소식을 뉴스를 통해 전해 들은 세준아빠는 해남병원으로 전화를 건다.
"죄송합니다. 현재까지 저희 병원에 이송된 환자명단에는 이세준, 이세윤, 한성민 세 분 모두 없습니다."
세준아빠는 급히 차를 몰아 해남병원으로 향한다. 해남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사망자 명단에 이세준, 이세윤, 한성민이 포함된 것을 확인한다. 망연자실한 세준아빠는 차를 돌려 사님이할머니댁으로 향한다.
나주, 사님이 할머니집.
"오매, 이 밤에 먼일이여? 세윤이, 세준이는 안 오고 왜 너만 온 것이여?"
"엄니, 아니여라. 나가 일이 쪼까 생겨갖고 세윤이랑 세준이는 담에 대꼬 올깨라."
"하루 죙일 안와브러갔고 먼일이 있는갑다 했시야."
"암일도 읍써라. 나가 더 일찌감치 전화 했어야된디 미안허요. 엄니 얼굴 잠깐 보러 왔당깨요."
"뻘써 가블라고야. 밥 한술이라도 뜨고 가블재?"
"아니여라...... 아니. 묵고 갈깨라. 엄니 밥 주시오."
사님이할머니가 끓여준 뜨끈한 곰탕 한 그릇 앞에서, 세준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밥을 뜨는 내내 눈물이 국물 위로 떨어졌다.
'엄니, 미안허요. 불효자슥 몬야 가브요. 차말로 미안허요.'
광주, 전대병원 응급실.
“신석현 환자 보호자입니다. 제 아들이 여기 있다고 해서 왔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사고 충격이 커서 아직 의식이 없습니다.”
간호사의 안내를 따라가자, 얼굴에 붕대를 감은 소년이 누워 있었다.
“얼굴에 붕대는 왜 감겨있죠?”
“파편이 튀면서 가벼운 화상을 입었습니다. 상처는 남지 않을 겁니다.”
“전화로는 다리를 다쳤다고 들었는데요?”
“엑스레이상 왼쪽 고관절이 다발성 골절입니다.”
의사가 설명하며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준다.
그런데, 아이의 체구가 어딘가 낯설었다. 석현엄마는 불안한 눈빛으로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죄송하지만… 붕대를 잠깐만 풀어도 될까요?”
간호사가 조심스레 붕대를 풀자, 그 얼굴이 드러났다.
잠시 침묵.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 아이는… 제 아들이 아닙니다.”
세준아빠는 항공기 사고 20일 뒤인 8월 15일에 목포 동명항 해상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 소설 속 전대병원 응급실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