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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살아 있는 건가?

2025년 8월 14일 목요일 오후

by 노래하는쌤

2025년 8월 14일 목요일 오후 / 광주, 리아네 집


“리아오! 아빠 내일 저녁에 쓸독 모임이야. 내일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아빠, 나 내일 윤하랑 소품샵 가기로 했어. 내가 버스 타고 갈 거야.”


리아는 친구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인터넷으로 소품샵을 검색하느라 정신이 없다.

엄마에게 어떤 선물을 사다 줄까 고민하다가, 머리띠와 머리끈을 사기로 마음먹는다.


“리오는?”


“저는 성민이 형이 준 자전거 아빠랑 타러 가고 싶어요.”


“그래? 리아, 진짜 혼자서 갈 거야?”


“응.”


“그럼 리오는 내일 아빠랑 목포 이모할머니 집 들렀다가 자전거 타러 가자.”


“네.”


“내일 늦잠자도 되니까 영화 한 편 볼까?”


“아싸! 아빠, 이번엔 내가 고를 차례! 해리포터 불사조 기사단!”


“저번에 5편 본 거 아니야?”


“어? 5편 또 볼 거야. 틀어줘.”


리아는 순식간에 안방 커튼을 치고, 간식을 세팅한다.

사실 해리포터 5편은 시험이 끝난 날 리오와 함께 봤던 영화다.

이번엔 영화를 핑계로, 리오와 내일 엄마를 보러 갈 계획을 나누려는 것이다.

영화가 틀어지면, 아빠는 거실에서 책을 읽을 테니까.




리아네 안방.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시청 중.


“서리오, 내가 보낸 신문기사 내용 좀 알아봤어?”


“누나, 도서관도 가보고, 국립중앙도서관 사이트도 뒤져봤는데…”


“근데?”


“옛날 신문은 한자가 너무 많아.”


“너 한자 잘하잖아. 그래서?”


“누나가 말한 사람, 이세준이랑 이세윤. 두 사람 다 사망자 명단엔 없어. 근데 더 이상한 건, 생존자 명단에도 없다는 거야.”


“신문에 실종자도 있었잖아. 그 사람들은?”


“그게 문제야. 이후 기사엔 실종자 얘기가 전혀 없어.”


그럼 살아 있는 건가?


“그럴지도. 근데, 이상하게 뉴스랑 신문이 그 사건을 3일만 다루고 말았어.

그렇게 큰 사고였는데 금방 묻혀버린 거지.”


“친할머니가 목포에서 살았었다고 해서 아빠한테 물어봤는데, 어릴 때 기억이 잘 안 난대.”


“그리고 마지막 기사에, 다친 사람은 해남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되어 있었어.”


“그럼 그분들은 생존자 명단에 있는 사람들이겠지?”


“그것도 확실하진 않아. 누나, 이거부터 봐봐.”


리오는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 캡처한 신문기사를 확대해 보여준다.

리아는 그 마지막 문단을 천천히 읽는다.


“연고지가 없거나 신원 파악이 안 된 아이들은 치료가 끝나면 광주에 있는 인애원으로 이관될 예정이다.”


“인애원이 어디야?”


“인애원? 아빠가 삼촌들이랑 자원봉사 갔던 그곳 아니야?”


“맞아. 동남동 거기.”


“서리오, 아무래도 우리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아.”


리아는 화면 속 해리포터를 멍하니 바라본다.

손에 쥔 프링글스 매운맛을 다 먹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연다.


“서리오, 우리가 과거로 갈 수 있었던 이유가 따로 있는 거 아닐까?”


“오~ 누나 오늘 좀 똑똑해 보이는데?”


“그냥 엄마 얼굴만 보라고 간 게 아니라면, 혹시 우리가… 엄마를 살릴 수 있는 게 아닐까?”


“뭐? 암으로 돌아가셨다며. 그걸 우리가 어떻게…”


“서리오, 사실 너한테 말 안 한 게 하나 있어.”


“뭔데?”


“사실 엄마가… 우리를 낳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살아 있었을지도 몰라.”


“무슨 말이야?”


리아는 핸드폰을 켜고 ‘오늘 일기’를 리오에게 보여준다.

잠시 후, 글을 다 읽은 리오는 고개를 떨군 채 울음을 터뜨린다.


“누나… 나는 우리 엄마가 우리 엄마가 아니라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어…”


“야, 서리오! 그만 좀 울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거든.”


“그럼 우리가 안 태어나야 엄마가 사는 거야…?”


“그럴 수도 있었을 거라는 거지. 그 당시에는 엄마가 가지고 있던 암을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은 없었어.”


“지금은 그럼 엄마 수술이 가능한 거야?”


“네이버에 검색해 보니깐 서울 아성병원에 수술할 수 있는 선생님이 계신다고 해.”


“누나… 나 엄마 빨리 보러 가고 싶어…”


리오는 엄마의 글을 다시 읽고 또 읽으며, 끝내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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