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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 데뷔하는 게 어때?

2025년 7월 26일 토요일 오후

by 노래하는쌤

세희의 할머니 만례씨집.


“앰뱅할 할망구들 썩 끄지랑깨!!!!!!!!!!!!”


만례씨의 고함이 마당을 울렸다. 금순할머니와 옥자할머니는 여전히 실랑이를 멈추지 않고, 마치 싸움판이라도 벌일 기세로 현관 쪽으로 밀려들었다.

리아는 잠시 그 소리를 듣고 있다가 세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세희야, 언니 먼저 집으로 가야 될 것 같아. 그리고 오늘 여기 왔다는 건 비밀로 해줘.”


“응? 아...... 그래 알았어. 언니 그럼 서울로 올라가는 거야?”


“어? 어, 오늘은 잠깐 온 거라서.”


세희는 눈을 반짝이며 리아를 올려다봤다.


“우와! 언니 혼자 버스도 타고 다니고 진짜 멋있다.”


리아는 웃음 대신 짧은 숨을 내쉬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몰래 핸드폰을 꺼내 달력 앱을 켰다. 1994년 8월. 손끝이 멈춘 곳에 날짜 하나가 보였다.


“세희야! 언니는 8월 15일에 다시 올 거야.”


“8월 15일 광복절? 성원이 삼촌 기일이라서 오는 거야?”


“어?? 어? 어...... 어.”


세희는 잠시 생각하더니 작은방 쪽을 가리켰다.


“언니 혹시 할머니랑 마주치면 안 되는 거면 여기 작은방에 뒷문 있어. 거기로 나가면 돼.”


“고마워. 언니가 꼭 8월 15일에 올게.”


리아는 세희에게 미소를 건네고, 그녀가 가리킨 뒷문을 통해 사님이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작은방 안으로 들어가 교복으로 갈아입은 뒤, 방 안을 둘러보며 조용히 숨을 고른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신문기사와 사망신고서를 사진으로 찍었다.


그리고,

브런치 앱을 열어 회귀 버튼을 눌렀다.




2025년 7월 26일 토요일 오후 / 광주, 리아네 집


리오는 소파에 앉아 핸드폰과 벽시계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눈앞이 희미하게 일그러지더니 리아가 나타났다.


“누나! 뭐야, 괜찮아? 진짜 갔다 온 거야? 엄마 만났어? 뭐야, 말 좀 해봐!”


“야, 하나씩 물어봐. 지금 몇 시야?”


“지금 10시 10분. 누나 사라진 지 10분밖에 안 됐어.”


“와… 대박. 거기선 4시간 있었는데, 여긴 10분?”


“잠깐만. 그럼 ‘1시간에 24시간’이란 말이… 그 말이었구나.”


“그럼 거기서 1시간이면 여긴 몇 분이야?”


“음… 2분 30초 정도? 와, 거기서 영단어 외우면 개이득인데?”


“야, 서리오. 넌 원래 별로였는데, 지금은 진짜 많이 별로다.”


둘은 서로를 이해 못 한 채, 아니꼽다는 듯이 마주봤다.


“뭐래. 그래서 엄마 봤냐고!”


“서리오, 일단 모구모구 하나랑 프링글스 매운맛 좀 가져와.”


리오는 투덜대며 냉장고에서 모구모구 리치맛을 꺼내고, 수납장에서 프링글스 매운맛을 찾아 리아에게 내밀었다.


“이제 빨리 말해. 엄마 만났냐고, 못 만났냐고!”


리아는 숨을 고르고, 사님이할머니 집에 간 이야기부터 돌아오기까지의 일을 차근차근 들려주었다.

물론, 밥과 간식을 두 번이나 먹은 얘기는 슬쩍 빼놓았다.


“부럽다. 나도 엄마 보러 가고 싶다. 누나만 갈 수 있는 거야?”


그때,

‘띵동.’

브런치 앱 알림창이 뜨며 메시지가 나타났다.


브런치 10주년 기념 ‘작가의 꿈’ 버킷리스트

첫 번째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앱이 업그레이드하면 동반 2인 회귀가 가능해집니다.


“뭐지? 내 목소리 인식한 건가? 작가의 꿈 버킷리스트는 또 뭐야?”


“몰라. 아무튼 엄마한테 8월 15일에 간다고 했으니까, 그때 같이 가자.”


“근데 누나, 겁도 없이 막 가도 되는 거야? 못 돌아오면 어쩌려고?”


“야, 그런 거까지 생각했으면 버튼 누르지도 않았어. 쫄팅아. 가기 싫으면 가지 마.”


“누나! 쫄팅이라 하지 말라니까!”


“오키도키.”


걱정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리오는 리아를 바라봤다.

그러다 결국 체념하듯 중얼거렸다.


“나 시험 공부해야 돼.”


“서리오, 내가 네 폰으로 사진 보낼게. 시험 끝나면 그 기사 좀 찾아봐.”


“뭔데?”


“일단 끝나고 봐. 근데 생년월일이랑 이름만 있으면 사람 찾을 수 있어?”


“누나, 소설 너무 본 거 아니야? 우리가 스무고개 탐정도 아니고 생일이랑 이름만으로 사람을 어떻게 찾아.”


“그럼… 아빠한테 먼저 물어봐야겠다. 서리오, 넌 환생 믿어?”


리오는 한심하다는 듯 리아를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회귀도 되는데 환생 못 될 건 없겠지.”


“그래서 믿는다는 거야, 안 믿는다는 거야?”


“누나, 춤 만드는 안무가 말고, 글 만드는 작라로 데뷔하는 게 어때? 진짜 어울린다.”


리오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리아는 씩씩거리며 문을 쾅 닫았다.


“야! 서리오! 내 방에 들어오지 마라!”


*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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