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가수가 되는 게 꿈이야.

1994년 7월 26일 화요일 오후

by 노래하는쌤

1994년 7월 26일 화요일 오후 / 나주, 세희의 고향


사님이 할머니집.


“꺄아아아아아아악!!!!!!!!!!!!!!!!!”


거울 속에서 비명을 지르는 소녀와, 그 비명을 듣고 놀란 또 다른 소녀가 서로를 마주 본다.

리아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그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세희를 발견했다.


“아악! 세윤언니! 나 옆집에 사는 세희야. 세희… 미안해. 나 때문에 많이 놀랬지?”


‘와… 대박. 엄마다. 엄마 눈에 내가 보이는 거면, 귀신은 아니라는 거네.’


리아는 사진으로만 보던 어린 엄마를 눈앞에서 마주한 게 신기해 멍하니 바라본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세희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언니, 세윤언니? 괜찮아?”


“네… 아, 응. 괜찮아.”


“세준이 오빠는 같이 안 왔어?”


“세준이…? 아… 오빠는 시험공부 한다고 해서…”


“그랬구나. 사님이할머니가 언니랑 오빠 이야기 자주 해줘서, 나도 궁금했어.”


“그래? 뭐라고 하시는데?”


“언니는 노래를 엄청 잘하고, 세준오빠는 공부를 아주 잘한대.”


“세희, 너도 노래 좋아해?”


“응! 난 가수가 되는 게 꿈이야. 노래하는 거 진짜 좋아해. 내년에 광주로 이사 가면 꼭 노래방 갈 거야.”


“노래방? 한 번도 안 가봤어?”


“응, 언니는 가봤어?”


“자주 가지. 오늘… 아니, 어제도 갔어. 다음엔 같이 가자.”


“그래! 꼭 같이 가자. 사님이할머니가 언니랑 놀아도 된다 하셨어. 우리 집에 가서 놀래?”


“그래, 그러자.”


세희가 앞장서 걷고, 리아는 세희의 팔에 살짝 팔짱을 낀다.

리아의 팔에 닿은 세희의 팔은 너무나 가늘었다.

열한 살이면 초등학교 4학년일 텐데, 세희의 체구는 초등학교 1학년쯤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세희의 할머니 만례씨집.


‘아빠가 그러셨지. 엄마는 어릴 때부터 몸이 작고 약했다고. 근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말랐네.’


두 소녀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거실 한가운데 놓인 밥상이었다.

그 위엔 리아가 조금 전 사님이할머니 댁에서 먹은 것과 똑같은 반찬들이 차려져 있었다.


“세희야, 오늘 무슨 날이야?”


“아… 오늘은 우리 아빠 돌아가신 날이야. 할머니가 교회 다니셔서 제사는 안 지내셔. 대신 사님이할머니 드리려고 아침부터 음식을 만드셨어. 그거 전해드리고 밭에 가셨을 거야.”


‘아빠 말씀이 맞았구나. 할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날짜가 세윤이와 세준이 사망일과 같네. 내가 먹은 음식은 증조할머니가 만드신 거였구나.’


“세희야, 평소엔 뭐 하면서 놀아?”


“요즘엔 친구들이랑 곤충 잡으러 다녀.”


“으… 나 벌레 완전 싫어하는데.”


“나도! 좋아하지는 않아. 대신 혼자 있을 땐 책 읽고 노래해.”


“오, 나도 책 좋아해. 우리 집 바로 앞에 도서관 있어서 자주 가거든.”


‘뭐, 웹소설이랑 만화책도 책이지 뭐.’


아빠의 말과 달리, 어린 세희는 말이 많고 밝았다.

책 이야기가 나오자 세희의 눈이 반짝였다.

동화책 속 인물과 이야기를 쉼 없이 쏟아내는 그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러던 중, 대문 밖에서 만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철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열렸다 닫혔다.


"세희야, 사님이성님이 또 없어졌시야. 나가 밭에 도로가갔고 찾아볼랑께 옆집에 들어오는 소리 딛긴가 봐라이."


"알았다이."


“사님이할머니 자주 없어져?”


“아니, 자주는 아니고… 치매가 있으셔서 가끔 집을 못 찾아오셔.”


“그럼 우리도 같이 나가서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괜찮아, 동네 안에서만 돌아다니시거든. 금방 찾으실 거야.”


잠시 후, 고요한 집 안에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났다.

부엌 쪽이었다.


“세희야, 부엌 쪽에서 소리 들리지 않아?”


“또 고양이가 들어왔나? 나 고양이 무서워.”


“언니가 가볼게.”


부스럭거림이 잠시 멎더니, 다시 움직였다.


리아는 거실에 있던 효자손을 집어 들고 부엌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 뒤로 세희가 파리채를 들고 졸래졸래 따라온다.


그 순간—


‘쨍그랑!’


“엄마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