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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미 죽은 거야?

1994년 7월 26일 화요일 오전

by 노래하는쌤

“누나? 누나??? 누나!!!!!!!!!!!!!!!!!”


리오의 절규가 담벼락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그 울음 같은 부르짖음은 점점 희미해지더니, 어느 순간 딱—하고 끊겼다.



1994년 7월 26일 화요일 오전 / 나주, 세희의 고향


‘헐… 대박. 나 진짜 과거로 온 거야? 서리오 잘난 척하더니, 쌤통이다. 아싸, 만 원 벌었다!’


리아가 서 있는 곳은 세희의 할머니, 즉 자신의 증조할머니 집 앞이었다.

몇 번 아빠를 따라 와본 적이 있던 터라, 낡은 기와지붕만 봐도 여기가 만례씨 집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오늘이… 1994년 7월 26일 화요일. 이 시간이면 엄마는 학교에, 증조할머니는 밭에 계시겠네?’


리아는 장독대를 지나 조심스레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살짝 열고 집안을 둘러보던 그때, 옆집 대문이 ‘끼리릭’ 소리를 내며 열렸다.

열린 문틈 사이로 할머니 한 분이 걸어나왔다.


“거 누구요? 오매 세윤이냐? 세윤이여?”


“네?”


“아이고매 세윤이냐. 저녁밥때나 온다든만 일찍 와 불었네이. 그런디 세준이랑 같이 온담서 왜 너만 온 것이여?”


“저 할머니 저는 세윤이가 아니고......”


“세윤아 어여 어여 밥 묵게 들어오니라.”


리아는 순간 얼이 빠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옆집 할머니를 따라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문패에는 ‘김사님’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님이 할머니집.


“아적 점심밥 안 묵었재? 그런디 세준이랑 같이 온담서 왜 너만 온 것이여? 내가 소고기 재야 놨응께. 쪼까만 지달려라이.”


사님이 할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소리도 없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한 상이 차려졌다.

밥, 어묵탕, 불고기, 육전, 각종 전과 나물들, 굴비구이까지—

고향의 냄새가 밥상 위에 한껏 피어올랐다.


‘무슨 날인가?’


“우와. 잘 먹겠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먹고 보자. 금강산도 식후땡이라는데.’


“요것이 중핵교 교복이여? 그런디 세준이랑 같이 온담서 왜 너만 온 것이여? 저짝에다 니 옷 다 느놨응께 편하게 갈아입어라이.”


“네. 할머니도 같이 드세요.”


“아니여. 내는 아침을 느즈막이 묵었시야.”


리아는 저녁밥도 야무지게 먹고 야식으로 까르보불닭까지 먹었지만 마치 첫 끼니인 듯 맛있게 먹는다.


“그나 세윤이 너는 잘 묵네. 그런디 세준이랑 같이 온담서 왜 너만 온 것이여? 세준이는 요새도 잘 안 묵는 건 아니재? 어째 더 줄끄나.”


“네. 할머니 완전 맛있어요.”


“더 묵고 잘 늠어가게 식혜랑 같이 묵어라이. 쩌짝에 떡도 있응께. 이따가 묵어라이.”


“네. 감사합니다.”


리아는 마치 하루 종일 굶은 사람처럼 밥을 게걸스럽게 먹었다.


‘서리오 있었으면 또 “그만 먹어” 하면서 잔소리했을 텐데…’


배부르게 먹은 리아는 작은방으로 건너갔다. 사님이 할머니가 “옷을 느놨다”던 그 방이다.




“세윤아! 그런디 세준이랑 같이 온담서 왜 너만 온 것이여? 내는 밭 쪼까 댕겨올랑께 옆집에 세희동상 오믄 같이 놀고 있어라이.”


“네? 네.”


할머니가 밭으로 나가고, 리아는 조용한 방 안을 둘러봤다.

작은 앉은뱅이책상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고, 벽에는 낡은 달력이 걸려 있었다.


1993년 7월. 1년 전 달력이다.


책상 위에는 펼쳐진 신문 한 장이 눈에 띄었다.

기사의 날짜는 1993년 7월 27일 화요일.


‘1993년 7월 26일, 목포 아시아나 항공 사고? 딱 1년 전이네.’


신문 기사 제목을 읽는 리아의 시선이 종이 한 귀퉁이에 멈췄다.


‘탑승 106명, 생존 44명, 사망 53명, 미수습 9명… 그런데 왜 이걸 모아두셨지?’

신문 옆엔 빛바랜 종이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리아는 망설이다가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낡은 서류 두 장이 들어 있었다.


‘사망신고서…? 누가 죽었지?’


사망자

이세준 (1981년 10월 13일 만 11세)

이세윤 (1982년 12월 18일 만 10세)

사망일시: 1993년 7월 26일 16시

신고자: 김사님

사망원인: 사고사(비행기 추락)


‘이세윤? 나랑 생일이 똑같네?’


순간 리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퍼졌다.


‘잠깐… 방금 할머니가 나더러 계속 세윤이라고 불렀지? 설마… 세윤이라는 사람이 죽고, 내가… 환생한 건가?’


리아는 눈동자를 굴리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주에 본 [몰랐는데 장르가 로판]처럼… 나, 환생한 거야?’


그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 그럼… 나 이미 죽은 거야?


당황한 리아는 손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기 몸을 더듬었다.


‘귀신은… 거울에 안 비친다던데?’


그녀는 거실로 달려가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의 눈앞에 비친 낯선 얼굴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아아악!!!!!!!!!!!!!!!!!”


* 실제 인물, 사건, 단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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