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7월 26일 화요일 오후
1994년 7월 26일 화요일 오후 / 나주, 세희의 고향
세희의 할머니 만례씨집.
‘쨍그랑—’
“엄마야!!!”
접시 깨지는 소리에 리아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냉장고 옆에서 몰래 음식을 먹던 사님이할머니가 접시를 떨어뜨린 채 멍하니 서 있었다.
"할매요, 여그서 멋헌가? 울 할머이가 할매 찾아블라고 밭에 갔는디.”
"나가 배가 고파갔고야. 부엌 옆짝에 쪽문이 열렸길래 들어왔시야.”
"언능 일로 나오소. 나올때게 깨진 유리 조심허소. 아따, 할매땀씨 간 떨어져블라 했당깨.”
세희는 조심스레 깨진 접시를 신문지에 싸서 한쪽으로 치웠다.
사님이할머니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오매 미안하다이. 우리 세윤이랑 놀고 있었냐? 세윤아, 그런디 세준이랑 같이 온담서 왜 너만 온 것이여?”
"할매요, 세준 오빠는 시험공부해야 쓴다고 안 왔다고 안항가.”
사님이할머니는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교자상 위에는 막 차린 음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리아는 세희가 건넨 꿀떡과 식혜를 먹으며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사님이할머니와 리아는 천천히 음식을 먹었지만, 세희는 손에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
"세희야, 너는 왜 안 먹어?”
"나는 아직 배가 안 고파. 이따가 할머니 오면 저녁에 같이 먹을 거야.”
리아가 웃으며 물었다.
“세희야, 언니랑 뭐 하고 놀고 싶어?”
“언니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놀자.”
“아니야. 세희 네가 하고 싶은 거 하자.”
“사실... 나 공기 같이 해보고 싶었는데......”
“그래? 나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세희 네가 가르쳐줘. 리오 아, 세준이 오빠는 공기 진짜 잘해. 학교에서 별명이 ‘공기의 신’이야.”
세희는 환하게 웃으며 방으로 들어가 공깃돌을 가져왔다. 사님이할머니도 옆에 앉아 공깃돌을 만지작거리며 두 아이를 바라봤다
"할매요, 세윤이 언니 알켜주고나믄 할매도 같이 할랑가?"
사님할머니는 싫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언니 이렇게 공기 5짝으로 하는 거야.”
“너는 손도 작은데 진짜 잘 잡네.”
“언니도 금방 잘할 거야. 이렇게 5개를 던져서 처음에는 1개씩 잡고, 그다음에는 2개씩, 그다음에는 3개 잡고 1개 잡고, 마지막에 위로 1개를 던지고 받아서 밑에 있는 4개를 잡으면 돼.”
리아는 손끝에 집중했지만, 손가락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공깃돌을 놓치고 허공을 더듬는 리아의 동작이 우스꽝스러워, 세희와 사님이할머니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 흐흐 그래도 처음보다는 엄청 잘한다. 그럼 다음 거 알려줄게. 1개 던지고 잡아서 고추장, 5개 다 던지고 잡아서 된장, 마지막으로 던져서 손등으로 받은 다음에 던져서 받으면 쌈장이야.”
“리오 아...... 세준이 오빠도 고추장 된장 쌈장이라고 하던데 똑같네.”
“서울도 여기랑 똑같이 말하네 보네. 언니 이제 한 번 해봐.”
리아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쌈장을 연습하지만 아무리 해도 공깃돌이 손등 위로 3개 이상 올라가지가 않는다. 세희는 저 작은 손등에 던지기만 하면 착착 공깃돌이 5개가 올라간다.
“언니 이렇게 해서 공기를 잡으면 1짝당 1년씩 나이를 먹는 거야. 언니는 오늘 처음 하는 거니까 곱하기 2로 하자. 처음엔 50년부터 할까?”
“그래. 크크 나 그런데 진짜 못한다.”
“아니야. 언니 처음인데 엄청 잘하는 거야.”
그때였다. 마당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연탄집 금순할머니와 백영사 옥자할머니의 목소리였다.
“오메. 내 말이 참말이랑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허고 자빠져븟네.”
“작년에 뱅기 사고로 다 가븟당깨.”
“아니여. 그때게 못 찾어브렀다고 안혔어?”
“다 디져브렀당깨. 노망 난 망구탱이 말을 어쩌고 믿는당가?”
그때, 밭에서 돌아오던 만례씨의 목소리가 쩌렁하게 울렸다.
“누구보고 노망 난 망구탱이라고 하는 것이여? 늠에 집에 와서 머 허는 것이여. 존 일에 얼렁 가시요잉.”
“노망 났응께 노망 났다고 해블재. 나가 먼 못 헐 소리 해븟소?”
“안 갈 것이여? 존 일에 얼렁 가랑깨.”
“내 사님이 말이 참말인가 확인 쪼까 해야쓰겄당깨.”
“가란 말이여! 세희야. 여그 소금 한 박가치 갖고 오니라!”
“......”
“빗지락으로 싹 다 씨러블기 전에 얼렁 나가시요잉.”
"기차화통을 삶아묵어븟능가? 귀 안 맥했당깨."
"앰뱅할 할망구들 썩 끄지랑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