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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잃고 다시 피어나다.

믿음이 흔들릴 때, 진실이 피어나더라.

by 노래하는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두 가지이다. 그중 하나는 가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붉은 상사화다.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놀러 갔던 집에서 그 꽃을 처음 만났다. 이름도 모르던 그 꽃을 본 나는 첫눈에 반했고,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렇게 꽃에 빠져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본 할머니는 장날에 모종을 사 오셨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자주 지나다니는 마당 길목에 그 꽃 다섯 송이를 심어 주셨다.


할머니는 그 꽃의 이름이 상사화라고 알려주었다.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피어나는 상사화는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내 눈을 사로잡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상사화를 보면 할머니 생각이 절실히 떠올랐다. 할머니집 마당은 누군가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잡초가 무성해졌지만, 그 속에서도 상사화는 여전히 해마다 그 자리에 피었다.


나는 마흔두 살이 되어서야 내가 알고 있던 상사화가 사실 ‘꽃무릇’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주변 그 누구도 내가 상사화 이야기를 할 때 바로잡아 준 적이 없었다. 아마 그들도 나처럼 몰랐을 것이다. 살아오면서 그 꽃 이름이 상사화가 아니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꽃들은 궁금하면 검색해 보았지만, 상사화만큼은 너무 익숙해서 검색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가을, 배우자가 늘 그랬던 것처럼 “상사화를 보러 가자”라고 말했다.

문득 상사화가 궁금해졌다. 꽃말의 유래부터 여러 정보를 찾아보다가, 첨부된 사진을 보고 나는 놀랐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심장처럼 붉은 꽃은 상사화가 아니라 꽃무릇이었다. 수십 년 동안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이름이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올해 가을, 다시 마주한 꽃무릇은 내게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알고 믿고 있던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

이 단순한 깨달음이 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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