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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새 Sep 29. 2022

9. 폭 안기는 너희들에게...

아이들이 적응을 많이 하긴 했지만, 아직 어리다보니 원에 등원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었다. 엄마와 떨어지고 아빠와 떨어지는 게 싫어 아침 등원 시간이면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현관을 가득 메웠다. 아이들이 울면 처음에는 "엄마, 아빠가 회사에 가셔 일하셔야한데. 우리 반에서 **가 좋아하는 도장놀이할까?"라고 하며 아이를 달랬다. 하지만 그걸로 달래지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부모님에게 떼어내어 안아서 반으로 데리고 들어가야했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영화나 드라마 속 악당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왜냐하면 내가 안아서 데리고 갈 때 아이들이 안겨서 팔을 뻗은 채로 "엄마~ 아빠"를 외치며 울었기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연인을 갈라놓은 매몰차고 차가운 빌런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반으로 들어오면 아이들은 잠시 동안 나나 파트너 선생님의 품에 안겨있었다. 현관에서 반으로 오는 복도에서는 나를 부모님과 떼어놓은 악당인 양 안겨서 울던 아이들도 반에 들어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내 품에 쏙하고 안겼다. 유치원 실습때 6살 반을 맡은 적이 있는데 내가 워낙 애들을 좋아했기에 아이들을 자주 안아주거나 안아달라고 구걸하곤 했다. 그때 아이들은 내 부탁에 안아주면서도 머리나 엉덩이를 뒤로 빼고 있었다. 폭 안긴다는 느낌이 아니라 팔만 감아 안기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만 1세 3살 아이들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내가 안아주면 내 품에 쏙 들어가 온 몸을 내게 기댔다. 그리고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보았다. 아이들의 온기와 내 온기를 나누고 나는 아이들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어느정도 진정하면 "우리 이제 가서 놀까?"라고 아이에게 물었다. 그럼 아이들은 고개를 젓곤 했다. 


사실 아이들이 나가서 놀아야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좀 더 안겨있길 나는 바랐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탔다. 누구랑 있어도 외롭고 가족과 있어도 외로웠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스킨쉽이 많은 편이었는데 부모님이 스킨쉽을 잘하지 않으시는 성격이시라 내가 안아달라고 하면 "징그럽게"라고 이야기하시곤 했다. 아마 내 외로움의 시작은 아주 어린시절 다녔던 원경험에서 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건 부가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맞벌이를 하셨던 탓에 아주 어릴 때부터 원 생활을 했는데 엄마 말로는 그 당시 선생님이 내가 늦게 간다고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냈다고 하셨다. 그 때가 내 나이 7살이었는데 사실 그 때 일이 잘 기억이 안난다. 


"어려서 그런거지. 너무 어렸으니까"


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5살, 6살 때 기억은 간간히 난다. 그런데 7살 떄 기억만 나지 않는다.언니가 워낙 똑똑한 탓에 나도 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 대소변도 일찍부터 가리고 한글도 일찍 뗀 편이었다. 언니는 4살 때부터 글자에 관심을 가지고 5살에는 이름을 쓰고 읽을 줄 알았다. 나도 언니 영향으로 대소변도 일찍 가렸고 6살 때 한글을 다 뗐었다. 그런데 7살이 되고 늦게 가는 종일반 담임 선생님이 바뀌면서 밤에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한글을 모두 까먹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냐면 손톱깍이로 손톱을 자르면 손톱이 찢어져서 가위로 손톱을 잘라야할 정도 였다. 


여튼 그렇게 불안도가 높아지고 하면서 내가 외로움도 많이 타게 되었다고 엄마는 말하곤 하셨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기억이 안나 뭐 알 수 없지만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게되었는데 자라나면서 항상 마음 어딘가 결핍된 느낌이었다. 애정이 충족되지 않는 느낌.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에게 폭 안겨 훌쩍이는 아이를 보면 그 결핍된 부분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아이들과 온기를 나누고 포옹을 하면서 아이들의 울음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어린 내가 치유받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놀이 중간 활동 중간에 아이들에게 "선생님 안아줘~"라고 포옹을 구걸하곤 했는데 그럼 아이들은 저기 멀리서 부터 달려와 내 품 안에 쏙 안겼다. 


나는 그 포옹을 온기를 느끼며 행복했고, 나를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바라보는 아이들이 좋았다. 아이들이 달려와 안기면 그 충족감에 온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당시 7키로가 빠지면서 몰골이 흉해질만도 한데 내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얼굴이 밝아졌다고 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난 후부터 나는 부모님이 감사하다고 나에게 말씀하시면


"아니에요. 어머님 제가 **이 덕분에 얼마나 힘을 받는지 몰라요."


라고 답했다. 당시 어머님이 그것을 립서비스를 받아드리셨을지도 모르겠으나, 당시 진심으로 내 마음이 그랬다. 나는 아이들을 통해 단단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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