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받은 에너지로 하루 하루 행복했고, 즐거웠다 . 어느 정도 였냐면 일을 안하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우리반 애들이 보고 싶어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계속 볼 정도 였다. 그리고 주말 내내 가족들에게
"우리 **이가 글쎄 이걸 이렇게 했는데 말이야"
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티비를 봐도 카페를 가도 내 눈에 보이는 것과 연관된 우리반 아이들의 에피소드가 머리에 그려졌다. 그리고 그 에피소드를 주변인들에게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 했다. 나중에 언니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사실 아이들 이야기를 듣는게 귀찮았다고 했다. 그런데 내 표정이 너무 행복해보여서 차마 말을 끊을 수 없었다고 했다. 26년을 날 보면서 그렇게 눈에 하트를 가득 하고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하는 날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도저히 말을 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물으니 친구들도
"네가 애기들 이야기 할 때 표정이랑 말투가 완전 달라져"
라고 이야기 했다. 나는 극심한 염세주의자에 부정적인 인간인데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면 그런 모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염세적이고 부정적인 내가 세상을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본다고 친구들이 말했다. 그래서 친구들도 차마 애기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말을 못했단다. 나는 내가 그정도로 팔불출인지 몰랐다.
게다가 엄마는 유아교육학과까지 나온 내가 아기 기저귀나 가니 화가 나서 당장 때려치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내가 너무 행복해보여서 도저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했다. 여튼 그렇게 행복한 날들이 지속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익숙해지고 일과도 익숙해진 4월 초의 어느날이었다. 아이들이 대부분이 하원을 하고 늦게 가는 은우와 윤이만 남아있을 때였다. 은우와 윤이는 같이 있던 재율이가 가자 한꺼번에 울기 시작했다. 파트너 선생님은 행정업무를 하시는 중이라 내가 아이들을 다 보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너무 울어서 아이들을 안아 주어야했다.
먼저 심하게 우는 윤이를 안아주었는데 은우가 안아달라고 내 다리를 붙잡았다. 내가 자리에 앉으려고 무릎을 엉거주춤 구부린채로 윤이를 안고 있는데 은우가 다리를 붙잡자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우가 너무 우니까 둘을 안고 앉아야겠다.'
라고 당시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앉지 않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 손에 윤이를 은우를 안은 순간! 두 아이의 무게에 나는 그만 은우를 놓치고 말았다. 은우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은우가 울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우는 것이 다 똑같아 보여도 아플때 우는 것과 떼부릴 떄 우는 것 등등이 다른데 은우의 자지러지는 울음에 파트너 선생님과 원장님이 오셨다. 나는 재빨리 윤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은우를 알아올렸다.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아이가 옆으로 해서 귀쪽부터 떨어졌는데 아이가 다쳤을까봐 너무 무서웠다. 윤이도 은우가 울자 따라울기 시작했다. 등 뒤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파트너 선생님은 윤이를 안아 달래고 원장님이 무슨 일인지 물으셨다.
"윤이랑..... 은우가 .... 우... 울...어..어서 둘 다 안으려다가요....그러다가.."
"알았어요. 일단 선생님은 엄마에게 전화해요."
파트너 선생님이 원장님의 지시에 윤이를 원장님에게 인계하고 교사실로 가셨다. 나는 은우를 안아 달래고 달랬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원장님 어머님 지금 오신데요 "
그 사이 윤이 어머님이 오셔서 보조선생님이 나와 파트너 선생님을 대신해 윤이를 하원시키셨다. 나는 은우를 안은 채 바닥에 앉았다. 은우의 울음이 점차 진정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도저히 진정이 안되었다. 혹시나 어디 아플까봐 나 때문에 아플까봐 왈칵 눈물이 쏟아질거 같았다. 하지만, 울 수가 없었다. 은우는 내가 자기를 떨어뜨렸는데도 내 품에 폭하고 안겨있었다.
내가 이 어린 애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어서 무섭고 두렵고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은우는 눈물을 그치고 내 품에 안겨 있었다. 그렇게 10년 같은 30분이 흐르고 은우의 어머님이 오셨다. 나는 은우를 데리고 나가 어머님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사죄했다. 원장님은 "높이에서 떨어진건 아니지만 혹시나 어떨지 모르니 지금 응급실가서 MRI를 찍어보시죠"라고 하며 어머님과 은우와 함께 어린이집을 나가셨다.
난 원장님과 은우, 은우 어머님이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머리를 감싼 채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런 내가 무슨 선생님이라고 선생님 하지 말까..'
자책과 후회가 쓰나미 처럼 밀려왔다.
'무슨 헐크도 아니면서 왜 두 명을 다 안으려고 한거야. 진짜.. 한심해..'
후회와 자책은 반복되고 반복되고 두려움과 미안함이 온 몸을 잠식했다. 그렇게 시계는 7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때 파트너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다행히 뭐 이상은 없대요. 그래도 아이가 어려서 주말에 지켜보자고 병원에서 이야기 했대요. 선생님 이제 퇴근해요."
나는 한 편으로 안도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주말에 갑자기 아프면 어쩌지? '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떻게 어떻게 집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현관을 열고 들어선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다. 후회와 미안함 자책감 등이 한 데 섞인 울음이었다. 그렇게 그 자리에 서서 30분 넘게 울고 또 울었다. 엄마, 아빠는 어찌할 줄 모르고 나를 달랬다가 지켜봤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30분 울고 씻고 난 나는 밥도 안먹고 방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켜서 아이가 떨어졌을 때 생길 수 있는 병을 찾고 또 찾았다. 그렇게 뜬 눈으로 밤을 새고 다음날 9시가 되자마자 동네 소아과에 전화를 걸어 은우의 상황을 말하고 MRI 이상은 없었는데 혹시 아플 수 있는지 물었다.
의사선생님은 내가 아기 엄마라고 생각했는지 꽤나 자세히 설명해주셨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더욱 불안해졌다. 그렇게 내 평생에 가장 길고 끔찍한 주말이 지났다. 2일 동안 5시간도 자지 못한 채로 출근했다. 그리고 은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띵동!"
소리와 함께 인터폰에 은우와 은우 어머님의 얼굴이 뜨자 나는 반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어머님 은우는 괜찮았나요?"
"네 다행히 별 일없었어요. 잘 지내고 잘먹고 잘 잤어요."
"어머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좀 더 주의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
"네 , 은우야 이제 어린이집 가자"
어머님이 품에 안고 있는 은우를 내려놓으면서 이야기 하셨다. 나는 은우가 나를 거부할까 무서웠다. 아이들에게 거절당하면 너무 아플거 같았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것이니 받아드리자고 속을 생각했다.
그런데 은우가 엄마가 신발을 벗겨주자 나에게 와 안겼다. 그리고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울지도 않았고 평소처럼 나에게 폭 안겼다. 그 때 눈물이 핑 돌았다. 안도감과 고마움 미안함이 한 데 섞인 감정이 몰려왔다 .
'나는 너를 아프게 했는데 너는.. 나를 왜.. '
나도 눈물을 억지로 참으며 은우와 반에 들어와 은우를 꼭 안아주었다. 포옹을 풀자 은우가 나를 보면서 씩하고 웃어보였다. 나도 그제서야 웃음을 지어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은우를 다시 안아주며 이야기 했다.
"은우야 고마워. 선생님이 은우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