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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초코숲 Feb 24. 2023

구멍 난 마음에는 회복탄력성이 깃들 수 없다

심연의 바다 끝으로 끌고 가 버리는, 우울함이라는 무거움에서는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다소나마 자유로워진 팔다리로 무의식의 세계를 헤엄친다. 이대로 바로 올라가 버리면 지금 당장은 편하겠지만 언젠가 다시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천천히, 흩어진 마음 조각 하나하나를 찾아본다.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우울증인 사람이 낮은 자존감을 가지는 건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스스로도 자존감이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상처가 언제부터, 얼마나 심각하게 곪아가고 있는지는 확인해보고 싶었다. 정신과 진료와 심리상담을 병행하기에 조금 더 정밀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자존감이 낮다는 말을 '부끄럽다' 혹은 '수치스럽다'로 대체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어린 시절 계곡에 물놀이를 하러 갔을 때다. 헬로키티가 그려진 빨간색 튜브를 골랐다. 그런데 동생을 포함하여, 물놀이를 하던 모든 남자 어린이들은 초록색이나 파란색을 가지고 있었다. 창피한 마음에, 캐릭터라도 보이는 걸 피하고자 계속해서 튜브를 뒤집은 기억이 선명하다.


어릴 때는 누군가로부터 지적을 받으면 항상 눈물을 흘렸다. 잘못을 했다는 반성보다는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서러움이 컸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눈물을 참게 되었다. 마음속이 강인 해진 건 아니었다. 사내자식이 우는 모습을 보인다는 수치스러움이 더 커져서다. 문제를 극복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지적에 당당해지거나, 혹은 지적을 받지 않거나.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학교에서는 노력을 하면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상처가 덧나는지도 모르고 티 하나 내지 않고 완전체로 살아가려 애썼다.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아직도, 아니 갈수록 '그 사건'을 되돌아볼수록 나의 잘못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막 군대에서 돌아온 1학년이, 심지어 역사학 전공이 포함된 교수님들 앞에서 E.H. 카의 <역사를 무엇인가>에 대해 발제를 하는데 무얼 기대하겠는가? 행사가 끝날 때 그 이유도 모른 채 부족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꺼내야 했다. 

그리고 몇 주 후, 대학원 선배들이 부른 술자리. 불과 세 달 전 요청받았던 동아리 회장에서 물러난다는 선언을 해야만 했다. 그 뒤로 한국사를 볼 때면, 수양대군에게 억지로 양위하는 단종이 남 일 같지가 않다.


두말할 것도 없이 지금까지 겪은 인생 최악의 시간이었다. 심지어 휴직을 선택한 작년 6월도 그때에 비빌 수 없었다.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차피 두 시간 지나면 깨어날 것을 알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멘털이 터져버려서 주변 친구들마저 지칠 정도였다. 이후로 전화는 물론, 정말 친한 사람(=안전한 사람)이 아니면 개인 톡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 어떤 선배들과도 편하게 관계를 맺을 수 없게 되었다. 사건을 거치며 나라는 사람이 죽어버렸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알에서 깨어나 새로 태어났다는 식의 긍정적인 탈피가 아닌, 문자 그대로 사망했다는 기분이다. 


한창 자존감을 높여야 할 시기에 그걸 산산조각 낸 상처는 아직까지도 아물지 못했다. 이제 지난 텍스트 상담에서 자주 이야기했던, 내가 특별히 버티기 어려웠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 타인이 주는 비판과 비난으로부터의 회복 탄력성이 없었다. 구멍 난 풍선은 누르면 원래대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법이다. 



잠시 이성이 다시금 고개를 내밀었다. 원인을 알았으니 어떻게 해야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의사 선생님은 '하지 않을 것'을 말해주셨다. 내용은 작년과 같다. 자기 비난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다행히 이제는 비난하는 마음속 어린아이의 말을 부정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나는 쓰레기야"라는 말에 "아니야, 나는 쓰레기가 아니야"라고 소리 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달라지는 기분이다.


원래 기질도, 성장 과정도, 치명적인 상처도 함께 하는 무너진 자존감. 평생을 걸쳐서 다시 쌓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무리해서 부정하고 노력하기보다는, 현재의 모습을 수용하고 단지 조금만 더 스스로에게 친절해지리라 노력해야겠다. 그때는 하늘 같던, 그러나 지금의 나보다는 나이도 경험도 비교할 수 없이 부족한, 철없던 그들의 개념 없는 잘못에 크게 마음 쓰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먼저 연락하거나 용서할 필요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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