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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Dec 31. 2021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이팀장의 육我휴직 일지 - 6th day

매일 글을 쓰겠다는 약속을 했건만 1주일도 되지 않아 못 지켜 버렸다. 육아 휴직이라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어서 매일 만나던 직장 동료들을 대신해서 그동안 못 본 사람들을 보러 나서게 된다. 화요일에는 친한 친구가 운동하는 모임에 객원 용병으로 껴서 한 경기하고 저녁에 술 한 잔 했다. 처음 휴직을 하기로 하고 소식을 전해야겠다고 전화했더니 대뜸 농구나 한게임 하자고 해서 그러겠다고 잡은 약속이었다. 그리고 금세 한 달. 그날이 왔다.

낯선 코트에 친구 직장 동료 분들과 함께 해서 어색했지만, 농구코트를 열심히 달리는 와중에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지금 흘리는 땀과 거친 숨소리와 함께 뛰고 있는 사람들의 열기와 골대만 보일 뿐. 그렇게 두 시간을 실컷 뛰고 나서 맛있는 안주에 고량주를 나눠 마시며 유쾌한 시간을 보내다 왔다. 어쩔 수 없이 휴직을 해야 하는 나의 심정과 그걸 걱정하고 또 응원하는 마음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기분 좋은 나름 함에 푹 자느라 글 쓰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수요일에는 아내의 은사님께서 초대해 주셔서 찾아뵙고 인사드리러 갔다.  음악을 하는 아내는 고등학교 시절에 사사하였던 피아니스트 선생님께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그 덕에 예고에 진학도 하고 너무 이뻐하셨다면서 예고 진학 이후에는 자기 제자에게 이어서 가르치도록 소개도 시켜 주셨다. 대를 이어 사사를 받은 고등학교 때 은사님까지 해서 3대가 20여 년이 지나 안부를 묻고 인사를 드리는 자리를 함께 찾아갔다.


너무나도 고풍스럽게 꾸며진 삼청동 집에는 여든 넘은 나이에도 단정하고 기품 있는 아티스트 한 분이 계셨다. 아내를 보고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며 안아 주시는 모습이 너무 따뜻했다. 제자의 성장과 힘든 과정을 함께 공감해 주시면서 그 시절의 추억을 나누는 자리가 참 좋았다. 아내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인 감수성의 근원이 어딘지 느껴지고 그 시절 그녀가 얼마나 사랑받았었는지 지금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자주 까맣게 잊고 산다.

일상이 바쁘고 해야 하는 일들이 많고 미래가 불안해서 내가 얼마나 사랑받았던 사람인지를 잊어버리고 산다. 이렇게 휴직을 하고 멈춰 서야 노래를 부르던 한번 와서 농구 한게임 하자는 말이 현실이 되고, 이렇게 찾아서 연락해야 나를 진짜 아꼈던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달리기를 멈추고 속도를 늦춘 만큼 다가오는  해가 나도 아내도 우리 아이들도 그런 시간이 되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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