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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Nov 02. 2022

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기를 좋아하나 보다.

10월의 하늘은 참 가을다웠다.

페이스북에서 훔쳐보던 정재승 교수님께서 9월 말에 글을 하나 올리셨다. "10월의 하늘"이라고 전국의 시골 도서관을 찾아가서 강의 기부하는 행사가 있는데 지원자가 부족하다고 많이 참여해 달라는 글이었다.


강연이라... 평생 교직에 계셨던 아버지를 닮아서 나는 가르치는 일을 좋아했다. 남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부끄럽고 노래나 춤을 추는 건 엄두도 못 내지만, 그래도 내가 알고 있는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알려 주는 일은 하고 나면 마음이 참 좋았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전국에 도서관이 리스트업 되어 있는데 제일 첫머리에 익숙한 지명이 보였다. "거창 한마음도서관". 어머니와 아버지의 고향인 거창에서 마침 한 자리가 비어 있어 있었다. 마침 11월 초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들러서 모사를 지낼 계획이라고 들어서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 올해 모사는 언제 지내실 거예요?"

"응. 할아버지 기일이 11월 초니까 그때 지내면 되지. 와?"

"아니, 10월의 하늘이라고 도서관에서 강의하는 행사가 있는데 날짜가 맞으면 거창 가서 모사도 지내고, 강의도 하고 오면 좋을 것 같아서요."

"모사 날짜야 맞추면 되지. 그래 그럼 10월 말에 하는 걸로 하자."


그렇게 두 행사를 싱크 시키면서 강의를 하기로 정해졌다. 주제는 회사 있을 때 강연했던 "전기차"에 대한 내용을 어린이용으로 쉽게 정리했다. 3학년인 둘째 앞에서 리허설도 마쳤다.



그렇게 10월 29일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동생과 큰딸과 새벽부터 달려서 오전 11시 즈음 거창에 도착했다. 며느리들 힘들게 하는 제사 다 없애고 간소화하시겠다고 결심하신 부모님은 모사도 간소하게 차리셨다. 따뜻한 가을볕이 한가득한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에 인사를 드리고 나니 마음이 따뜻하고 힘이 났다. 



그리고는 읍내 도서관으로 향했다. 단풍이 가득한 공원 안쪽에 자리 잡은 거창 한마음 도서관은 깨끗했다. 반겨주신 황명희 주사님은 작은 아버지와 친구분이신 인연이라 더 반가웠다. 리허설을 간단히 하고 함께 강연할 선생님과도 인사하면서 시간이 다가 오길 기다렸다.  



10분만 해도 텅 비어 있던 강의실이 2시가 되자 가득 찼다. 준비한 자리보다 훨씬 더 많이 오셔서 책상과 의자를 더 꺼내야 했다. 첫 시간 소행성 이야기를 잘 듣고 두 번째 강의를 시작했다. 되도록 천천히 그리고 쉽게 하려고 했는데 끝나고 나서는 큰 아이에게 너무 전문용어가 많았다는 핀잔을 들었다. 그러게...


그래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런저런 질문을 하던 아이들이 너무 반가웠다. 문제를 내면 손을 들고 신이 나서 답변한 친구들에게는 젤리도 주고, 강의 마치고 나서는 주최 측에서 준비한 책도 나누어 주었다. 


강의 마치고 책 한 권씩 나눠 주고 기념촬영도 한 장. 강연자가 제일 신났다.


이 아이들에게 이 시간들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쳐 질까? 강의는 확실히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나의 무언가를 열심히 나누어 주고 소통해야 했기에 강의가 끝나자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러나 기분이 좋았다. 확실히 나는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기를 좋아하나 보다. 그것이 글이든 강의이든 매체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강의할 때 모습이 이랬구나. 동생이 찍어준 사진


해 질 녘 추수가 끝난 들판을 산책 중에 하늘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난 반평생을 잘하고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살았다면, 남은 반평생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그게 밥벌이가 될지. 업이 되어도 즐거울지는 일단 조금씩 해 보고 생각하자. 나의 첫 10월의 하늘 행사는 이렇게 따뜻하게 끝났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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