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속인 대가
글을 쓰면서 나는 나와 자주 만났다. 이십 대 초반부터 드문드문 일기를 쓰기 시작해 올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쓴다. 스치는 생각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노트를 들고 다닌다. 최소 3자루 이상의 연필과 지우개, 연필 깎기를 넣은 필통이 있어야 안심하고 외출할 수 있다. 틈만 나면 기록하는 습관은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어느 계절에 우울한지, 무엇을 꿈꾸는지 알 수 있게 해 줬다. 나는 내가 더 참기를 바랐다. 꽤 완벽한 회사와 지겨운 일을 조금 더. 아주 조금만 더. 끝이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남들과 같은 길을 걸었으면 했나 보다.
2월부터 밑미라는 플랫폼에서 리추얼을 시작했다. 신호탄이었다. 내가 애써 외면한 나를 마주하게 되었으니까. 한 달 동안 내가 원하는 감정과 그걸 얻기 위한 노력을 적었다. 아침에 적어둔 것을 밤에 꺼내보곤 했다. 한 달이 지나고 보니 바라는 감정이 비슷했다. 잔잔하고 싶었다. 마치 호수처럼. 또 다른 리추얼로는 집을 기록한다. 내 역사를 돌아보는 집에 대한 글쓰기는 독립에 대한 욕망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들켰다. 삶에 변주를 주고 싶어 가족의 집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시꺼먼 속내를. 애써 꾹꾹 눌렀던 마음을 마주하자 증상이 나타났다.
하기 싫은 일을 좋은 일로 포장해서 지속하게 만든 대가는 혹독했다.
내가 나를 속인 대가, 그건 공황장애였다.
2021년 4월 1일이었다.
9호선으로 갈아타는 길이었다. 갑자기 심장 박동수가 빨라졌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마스크는 눈물과 콧물로 축축해졌다. 출근길 9호선 환승은 보통날에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무사히 성공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걸을 수 없었다. 무서웠다. 뭐가 무서운지 알 수 없었다. 두려움이 나를 억눌렀다. 나는 구석을 찾았다. 엘리베이터와 벽 사이에 숨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정신이 조금 들었다. 계단으로 내려가지 못해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밀폐된 공간에서 얕은 안정감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 다음 열차를 확인했다. 급행이 아닌 일반이라면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자를 더 깊게 눌러쓰고 발 끝을 바라봤다. 누구와도 시선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18개 역을 더 가야 했지만 중간에 내렸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을 통틀어 지금 내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회사 동료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가장 가까운 심리 상담 업체를 찾아 예약을 하고, 회사로 갔다. 앞서 말한 회사 동료가 내 노트북을 무사히 꺼내 줬고, 나는 당일 휴가를 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1년 4월 8일, 나는 두 번의 심리 상담을 했다. 그리고 내일은 회사로 출근을 해야 한다. 재택근무를 하다가 별 것 아닌 메일을 쓰는 중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나를 찾는 연락에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토할 것 같아 변기를 붙잡기도 한다. 살면서 경험한 가장 최악의 나날을 글로 옮긴다. 이 글이 '회사를 나왔다'라는 문장으로 마친다면 나는 정말 괜찮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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