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0. 0차원으로 바라보기; 나빌레라

"봄"

by 그리울너머



봄은 어떤 계절일까요? 아마도, 누구에게나 봄은 설렘의 계절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더운 여름을 지나 기쁨을 주는 가을을 거쳐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겨울을 끝으로, 새로운 생명들이 태동하는 계절. 그래서, 마음에도 새로운 감정들이 피어나는 것 같습니다.


수천 킬로 미터의 반대편에는 어떤 계절일까요? 반대편의 계절도 언젠가 봄이 오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요? 강둑에서의 봄, 벚꽃과 밤공기, 사소한 인사 하나, 맥주 한 캔과 샌드위치 하나로 채워지는 밤. 기억과 추억의 경계에서, 잊히는 것과 잊히지 않는 것들을 나란히 두고 곧 다가올 봄을 기다립니다.



언제가 봄.

봉오리가 맺혔는지도 몰랐지만 어느새인가 나빌레라, 언제 왔는지도 모를 봄이기에 짧게 느껴지는 것인지, 언제나 그렇듯 예뻐서인지, 짧게 느껴지는 것인지, 그런 날이 있는 거 같아.


"꽃이 너무 이쁘다."


"사진 한 장 찍을래?"


그저 학교 앞 벚꽃이 이쁘게 피면 사진 한 장 찍고, 강둑으로 달려가 봄을 한편에 집어 담았다.

몇 번씩 돼묻다 보면, 봄이라고 느낄 만큼 가슴 한편 꽉 차있는 모든 게 좋아.

온종일 아무것도 안 해도, 나는 이전과는 많이 다른 걸. 별일 없는 오후, 손사래 치며 인사를 건네고 지나버린 순간을 그냥 놓칠까 저편으로 넘어가는 하루를 꽉 움켜쥐었다.


지나가는 오늘 밤에는 챙겨 입고 나오지 않아도 돼, 그렇게 쌀쌀하지 않으니까. 맥주 한 캔에 샌드위치 하나, 이 밤을 나누다가도 굳이 이야기할 필요 없어 그냥 흘러가는 대로. 공기가 조금 쌀쌀해도 괜찮아. 같이 걸어가는 길에 별보다도 꽃이 내려앉은 밤. 온기 가득한 손 한번 슬쩍 넣어놓고 웃으며 멍하니 바라보고서 내일 꺼내어 볼 수 있게 기억해 두 자. 시간이 빨리 흐르니까 어쩌면 이대로 내일 아침이 올지도 몰라. 다시 돌아올 날을 간절히 기다리지는 않지만, 지금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흥얼거리자.


점점 붉게 어쩌면 파랗게 물드는 하늘을 보다가, 봄이 오고, 봄이 지나간다.

등산을 좋아하고, 야경을 좋아하고, 너는 좀 다른 것 같아서, ‘아름다움’을 ‘단축’하였다.

‘여행’했던 그 계절, 기억보다는 가슴 한편에 ‘추억’으로, ‘봄’이 오고 있다.






예쁘고 좋은 건


금방 사라지는 법이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고


예쁘고 좋은 건


금방 사라지는 법이라


가슴 한켠에 추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슬프고 힘들 때


하나씩 하나씩 꺼내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좋아.






언제부터였을까. 봄이 오는 소리를 기다리게 된 건. 꽃망울이 터지는 순간을 보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매해 반복되는 그 짧은 설렘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봄은 금방 지나간다. 유난히 한심한 계절 설렘과 같이 빠르게 지나 가지만, 늘 봄이 오길 기다린다. 지나가 버린 시간은 봄의 계절 끝자락에서 언제나 나를 다시 기다리니까. 손 끝에 스치던 밤공기마저 기억하고 싶은 날들이 있는 걸 보면, 예쁘고 좋은 것들은 원래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법인가 보다.


금방 사라져 버리는 기억들이지만, 그렇다고 기억 저 편으로 넘어가는 계절을 꽉 쥐려고 하지 않는다.

예쁘고 좋은 것들은 금방 사라지는 법이라 다시 돌아올 날을 간절히 기다리지는 않지만, 저기 끄트머리에 추억이라 활력 하겠다. 가끔은 슬프고 힘이 들 때, 그 활력들을 하나둘씩 꺼내어 볼 수 있다면,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다. 봄이 오고, 봄이 지나간다. 운전하는 것이 좋고, 등산하는 것도 좋고, 야경이 좋아졌다. 이제는 그게 내 방식의 아름다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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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했던 그 계절, 기억보다는 가슴 한편에 ‘추억’으로 남았다.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것, 잊어버렸지만 생각나는 무엇이 있다.
다시 봄이 오면, 이번엔 어떤 마음으로 또 이 길을 걸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가슴 한편 조용히 또 다른 아름다룸을 새기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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