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1. 1차원으로 바라보기; 아름다운 순간

"늦은 안부"

by 그리울너머



언제부터일까요? 영원히 가장 아름다울 수 없으니까. 눈치 재지 못하게 서서히 시작되었던걸 까요?


아직 좋아하는데, 뭔가 조금씩 덜 좋아지는 기분, 자꾸 네가 멀리서 보였다.


마주한 얼굴도, 주고받는 말들도 아름답다. 우리가 가장 서로를 아낀다고 믿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 눈치 못 채게, 서서히 시작되었습니다. 대화 사이사이 아주 작게 생긴 틈은, 저에게 조금 빠르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겠지 생각한 순간, 그렇게 조금씩 지나간 시간들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멀어짐을 표현하기엔 너무도 이른 것 같습니다.



사소한 이야기가 가득한 한창인 술자리, 알람이 없던 휴대폰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자리가 끝나갈 무렵, 다 되어가는 배터리가 웃기지 말라는 듯 울리는 문자 한 통. 한 겨울도 아닌 여름에 감기약 있냐는 물음에 꺼져버린 핸드폰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또 다른 날엔 밤이 저물어 가며 나름에 자리를 즐기고 있으면서도 이쪽으로 올 수 있냐는 물음에, 외골수로 답할 수는 없지, 답은 심플해 보이면 안 된다.

쌓여있는 일거리가 많다며 투덜대다가 한참은 조용한가 싶었다.


"모니터가 안 켜져"


"전선은 확인했어?"


“응, 그래도 안되는데”


"알겠어, 기다려"


때 마침 근처에 있기도 했으니까. 에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전선이 제대로 꼽혀있질 않았다.


"나와 맥주나 한잔 하자"



지나칠 정도로 무더운 여름, 당신과 마주 앉아 있는 식탁에 당신은 나를 찾아올 때 어김없이 고단한 얼굴인 걸 몰랐다. 내 이야기보다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용기가 필요했다. 당신을 제대로 알아 봐주기엔 그만큼 할 줄 알아야 하는 것들이 늘어만 났다.


"잠시 집 좀 다녀올게"


TV를 보다 밥을 먹고, 영화를 보았다. 덧붙여 혼자 이런 것 저런 것 하려다 전화를 할까 하다.

나에게 보내온 사진 몇 장, 생각이 복잡할 때면 뒷산에 올라 야경을 보는 게 좋다 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버렸다.




힘들다고 내게 말하는 너에게


내 이야기보다는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아야 했고,


말 없는 적막감을 이길 줄 알아야 했다.


가끔은 내게 기대는 너를 뿌리칠 줄도 알아야 했고 혼자 걱정하고 가슴 아프다,


다시금 괜찮아진 너를 보며 행복해할 줄도 알아야 했다.


너를 알아가는 만큼 그만큼 할 줄 알아야 하는 것들이 늘어만 났다.





"뭐 해, 잘 지내?"


오랜만에 걸려온 전화 한 통, 웬일이냐는 물음에, "그냥".

오랜만이지만 어색하지 않은 통화, 평범한 일상, 그저 그런 얘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한결 밝아진 목소리. 그냥 안부전화가 아님이 나는 알 수 있었다.


말해야만 아는 것은 아니다. 오랜만에 걸려온 안부전화가 뻔하지 뭐. “힘들어?, 힘내”라는 한마디 보다.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아야 했고, 말 없는 적막감도 이길 줄 알아야 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전에 물 한 모금 삼키고 말아야 했다. 그냥 걸 수 있는 전화 한 통이지만 흘려듣지 말아야 했다.


“간단하게 맥주 한잔할까?”


고단함에 술 취해 엎드려있는 굽어진 등을 열심히 쓸어 주었다. 넌지시 바라보며 복잡한 마음이 움츠려 들었다. 당신을 알아가는 만큼, 할 줄 알아야 하는 것들이 늘어났고, 당신 덕분에 나는 그림자가 되었다.


그냥 전화 한 통 걸 수 있지만, 걱정을 얹고 싶지 않았다. 빙빙 둘러대며 애꿎은 전화만 여기저기. 지나간 시간을 돌려 되돌릴 수 없지만, 문득 안부 전화 한 통은 괜찮은 것 같다.


"뭐 해,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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