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187-3
가진항
7번 국도를 따라 동해안의 허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속초의 왁자지껄한 관광지를 지나 고성군 초입의 한적한 바닷가에 닿게 된다. 그곳에 작은 항구, ‘가진항’이 있다. 조용한 항구에는, 거친 파도에 펄떡이는 자연산 잡어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바다 냄새라고는 맡을 수 없는 내륙의 도시, 회색빛 빌딩이 숲을 이룬 분당의 끝자락에 그 이름을 그대로 내건 식당이 있다. 단순히 주인의 고향이라서, 혹은 바닷가마을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 아닐 테다. 그것은 가진항의 거친 파도에 펄떡이는 싱싱한 회를 타협 없이 그대로 식탁 위에 올리겠다는, 양식 횟감의 뻔한 맛 대신, 거친 바다를 헤엄치던 자연산의 기운을 전하겠다는 약속이다.
가진항은 야마다야가 있는 구미동의 차분한 주택가를 벗어나, 분당의 최남단이자 교통의 요충지인 오리역 근방에 위치한다. 거대한 오피스텔과 빌딩들이 빽빽하게 숲을 이룬 이곳은, 평일 낮이면 회사원의 발걸음으로 분주한 상권이다. 세련된 프랜차이즈 간판들 사이에서 투박한 노포의 기운을 뿜어내는 가진항. 문을 열면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음과 함께, 주인장 이모님의 정겨운 인사가 가장 먼저 손님을 반긴다. 재미있는 점은 평일 저녁은 인근 직장인들의 회식 장소로 예약이 필수 이지만, 오히려 토요일은 비교적 한산하여 자연산 활어회를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칼끝, 향으로 맛보는 자연산
가진항의 유명한 메뉴는 ‘주인장 안주’, 요즘 말로 ‘이모카세’다. 자리에 앉으면 가장 먼저 짭조름한 간장새우와 쫄깃한 문어 숙회가 입맛을 돋운다. 뒤이어 등장하는 갑오징어 찜의 부드러움으로 허기를 달래고 나면, 마침내 ‘제철 자연산 활어회’가 상 위에 오른다.
가진항의 회는 계절마다 제철 회가 정갈하게 썰려 나오는데, 한 점 집어 입에 넣는 순간 주방에서의 분주한 모습이 느껴진다. 활어회를 맛볼 때 가장 중요한 나의 기준은 ‘향’에 있다. 도마나 칼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으면 비릿한 잡내가 나고, 손질 과정에서 피를 씻어내려 물을 많이 묻히면 밍밍한 물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의 회는 깨끗하다. 숙성회가 아님에도 입안에 착 감기는 차진 식감, 그리고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물고기 특유의 은은하고 고소한 향. 그것은 횟감을 다루는 칼끝이 청결하고, 물기를 제어하는 손길이 망설임 없이 섬세했다는 증거다. 바다가 없는 분당의 빌딩 숲에서, 강원도 가진항의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은 바로 이 신선한 향기에서 비롯된다.
술잔이 몇 잔 들어가고 취기가 오를 무렵, 마지막으로 ‘민어 지리탕’을 주문하면 애주가들에게 내리는 임금님의 수라상과도 같다. 맑고 깊은 국물이 뜨겁게 속을 풀어준다. 화려한 기교나 값비싼 인테리어는 없다. 하지만 횟감을 다루는 기본을 지키는 위생,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칼질의 정성. 그 보이지 않는 기본기가 가진항을 오랜 시간 독보적인 맛집으로 지켜온 비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