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귤예지 Oct 27. 2024

포도맛 폴라포

강태경이 포도맛 폴라포를 한 입 베어 물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그럼 넌 어떻게 되는 거야?”

천하태평 강태경이 진지해지는 걸 보니 내가 사고를 치긴 했나보다. 고객이 모자를 그냥 가져가는 걸 보고만 있었으니 사고는 사고다. 

“모르지. 이틀 만에 잘릴지도.”

담담한 척 대답했지만 사실은 전혀 담담하지 않았다. 사실은 고객, 아니 그 도둑이 모자를 가져간 순간부터 정수리에 가시가 쭈뼛쭈뼛 돋아 있는 기분이다.

“잘려? 그럼 어떡해?”

“어떡하긴. 다른 알바 구해야지.”

“또?”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아르바이트를 꼭 해야 돼? 거짓말까지 하면서?”

또 저 소리. 강태경이 말하는 ‘거짓말’은 집에다 야간자율학습을 한다고 둘러댄 걸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는 걸로 강태경의 입을 막았다.

“그럼 뭐, 집 나갈 돈 모으려고 아르바이트 중이라는 걸 솔직하게 말해?”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집을 왜 나가냐고.”

“말했잖아.”

내 집이 아니니까, 라는 말은 생략했다.

“너희 아빠...... 집이잖아.”

“은행 집이었지. 이제 그 빚을 갚을 사람의 집이 되었고.”

강태경이 쀼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추위 탓인지 색소 때문인지 강태경 입술은 완전히 보라색으로 변했다.

“그냥 네가 갚으면 안 돼?”

입술 색깔만큼이나 천진난만한 질문이다. 나는 강태경을 돌아보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내가 무슨 수로?”

“......”

“......”

“아르바이트 그거, 나도 같이 할까?”

휴, 말을 말아야지. 집 대출을 갚기엔 내 아르바이트 시급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도 우리 집 대출이 많다는 것도 굳이 광고하고 싶진 않으니까. 게다가 말한들 눈치라고는 없는 강태경이 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리도 없다.

어쩌면 우리가 여전히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건 강태경의 눈치 없음 덕분인지도 모른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제법 친한 친구들이 내게 말 걸기를 주저하고 선생님들조차 내 눈치를 살피느라 거리를 두실 때, 평소처럼 대한 유일한 사람이 강태경이었다.


“다음 주 토요일에 영화 보러 갈 거야?”


장례식장에서 구석에 돌처럼 앉아있던 내게 와 건넨 강태경의 첫마디였다.


“무슨 소리야. 영화라니.”

“해리포터 재개봉하는 날 같이 보기로 했잖아? 그게 다음 주 토요일이야.”

“우리가 그런 약속을 했어?”

“우리 집에서 티비로 보다가 네가 그랬잖아. 이건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라고.”

“내가?”

“응. 네가. 그래서 내가 재개봉하면 보러 가자고 했잖아. 기억 안나?”

“......”

“그럼 가는 걸로 알고 예매한다?”

“......”

“돈은 나중에 줘.”


아빠를 잃은 친구를 찾아와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강태경 뿐일 거다. 그 짧은 대화 후에 나는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조금 웃었다. 돈은 나중에 달라니, 너무 강태경답다고 생각하면서.

지금도 강태경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설탕과 색소가 농축된 마지막 한 방울을 입에 야무지게 털어 넣고 있다.

“근데 너 학원 안 가? 왜 자꾸 따라 와?”

“오늘 수업 없는 날.”

“그럼 집에 가야지.”

“너랑 같이 가려고.”

“나 알바 간다니까.”

“기다렸다가 너 나오면 같이 가려고. 잘리면 바로 나오는 거 맞지?”

“너 진짜!”

강태경이 순식간에 저만치 달아나버렸다. 쫓아가려다 말고 냉큼 가게 방향으로 걸음을 돌렸다. 유치한 장난에 맞장구칠 만큼 천하태평한 상황이 아니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노트북 앞에 앉은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사장님 동공이 흔들리고 있다. 화면 안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