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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Oct 27. 2024

지우와 승호 (2)

지우는 공연 시작 2분 전 학교에 도착했다. 숨을 헐떡거리며 대기실 문을 열자마자 평소답지 않게 긴장한 얼굴의 승호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모자는 선배에게 꼭 맞았다. 갸름한 얼굴형이 평소보다 도드라졌고 상처는 완벽하게 가려졌다.

관객석은 빈틈없이 차 있었다. 지우는 맨 뒤 여분으로 둔 철제의자에 앉았다. 손에는 모자에서 급히 떼어낸 태그가 구겨진 채 있었다. 펼쳐보니 큐알코드 하나만 달랑 인쇄되어 있었다. 뭘까? 지우는 본능적으로 스마트폰 렌즈를 큐알코드 가까이 가져갔다.

화면에 무언가가 떠오르는 동시에 공연장 조명이 꺼졌다. 순식간에 사방이 깜깜해졌다. 지우는 떠오르는 화면을 무시하고 스마트폰을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무대가 천천히 밝아졌다. 무대 가운데 승호선배가 나타나자 술렁이던 관객석은 금세 고요해졌다. 뜨겁고 단단한 에너지가 공연장에 점차 차올랐다. 선배는 오늘따라 더 빛나보였다.


선배의 대사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지우의 마음을 건드렸다. 마치 승호선배의 상대배역이 되어 무대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주머니 안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지우는 진작 무음으로 바꾸지 않은 걸 후회했다. 주변이 온통 깜깜한 지금에 와서 다시 불빛을 밝혀 설정을 바꿀 수는 없었다. 지우는 혹시 주변 관객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스마트폰을 감싸 쥐었다. 지잉. 또 다시 진동이 울렸다. 지잉, 지잉, 지잉. 진동은 마치 경보 알림처럼 반복되었다.

누구지? 지우에게는 종일 대화를 이어가는 단톡방이나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가 많지 않았다. 제일 친한 친구인 희주는 관객석 맨 앞자리에서 넋을 놓고 선배를 보고 있었다. 

설핏 고개 드는 불안을 누르며 지우는 다시 공연에 집중하려 애썼다. 승호 선배는 이제 곧 고3이었다. 오늘이 이 학교에서 승호선배가 하는 마지막 공연일지도 몰랐다. 대사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기억하고 싶었다. 다행히 공연에 빠져들수록 진동을 느끼는 감각은 약해졌다.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렸다. 관객들이 웅성이며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지만 지우는 한동안 그대로 앉아있었다. 승호선배와 부쩍 가까워진 것 같은 이 기분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다. 그 순간 또다시 진동이 울렸다. 

지우는 번뜩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열었다.


- 결국 또 혼자네.


화면 가운데 팝업으로 떠오른 알림창이었다.

뭐지? 

알림창은 평소 쓰는 메신저앱과 다른 모양이었다.

지우는 고개를 갸웃하며 알림창 모서리의 확인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가려져 있던 다음 메시지가 나타났다.


- 이렇게 많이 와줘서.


지우는 또 확인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또 다음 메시지.


- 고마워. 정말 고마워요.


확인.


-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확인.


- 끝이다. 올해의 마지막 공연.


확인.


- 내가 빛처럼 달려갈게.


확인.


- 기다려줄래?


지우는 확인 버튼을 누르던 손을 멈췄다. 귀에 익은 문장이었다.


‘기다려줄래? 내가 빛처럼 달려갈게.’


막 끝난 공연에서 승호선배가 한 마지막 대사였다.

그때 진동이 울리고 새로운 알림창이 떴다.


- 니하오.


이건 또 뭐야. 

지잉.


- 작년 거기네. 탕수육이 정말 맛있었는데.


지잉. 


- 하지만 연기는 여기까지.


지잉.


- 나는 빠질게.


누군가 잘못 보낸 메시지라고 넘기기엔 여러모로 이상했다. 마지막 공연, 선배의 대사, 학교 앞 중국집 이름까지……. 메시지의 내용들이 지금 지우의 상황과 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지우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장난으로 메시지를 보낼 만한 사람은 없었다. 지우 두 팔에 소름이 돋았다. 떨리는 손으로 다시 확인 버튼을 눌렀다. 공연 중 울렸던 진동의 빈도로 미루어 짐작할 때 아직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가 더 쌓여있을 거였다.

“은지우!”

그때 누군가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뭘 그렇게 집중해서 봐. 몇 번을 불러도 못 듣고.”

희주였다.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있었다.

“뒤풀이 갈 거지?”

희주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동아리원 명단에서 지우 이름을 찾아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어디서 해?”

지우는 슬쩍 폰을 감추며 물었다.

“니하오.”

“니하오?”

지우는 잽싸게 희주 손에서 명단을 빼앗았다.

“너 이 얘기, 또 누구랑 했어?”

“무슨 얘기?”

“오늘 뒤풀이 니하오에서 한다는 거. 참석할지 나 말고 또 누구한테 물었어?”

“아직 제대로 묻지도 못했어. 다들 사진 찍느라 정신없고 대기실에는 선배 혼자던데?”

“선배? 선배 누구?”

“누구긴 누구겠어. 승호선배지.”

희주가 고개를 돌려 대기실에서 막 나와 출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선배를 쳐다보며 아쉬운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근데 선배는 안 간대. 약속 있나 봐. 너는 갈 거지?”

“응? 일단 나 잠깐만. 연락할게.”

지우가 승호선배의 뒤를 따라 공연장 뒷문으로 빠져나왔을 때 선배는 이미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여러 방향으로 뻗은 작은 골목들 중 하나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지우는 낙심한 듯 멈춰 섰다. 그때였다. 손에 쥔 휴대폰이 또 한 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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