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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Oct 27. 2024

지우와 승호 (4)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울렛 4층에 도착하자마자 지우 눈에 가장 먼저 띈 건 회색 모자였다. 승호는 푸드코트의 2인용 테이블에 혼자 앉아 있었다.

지우의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뛰기 시작했다. 승호를 만난 반가움 때문이 아니었다. 지우를 여기로 이끈 건 휴대폰으로 전송된 메시지들이었다. 공연장에서부터 끊임없이 전송된 메시지에는 발신자의 목적지에 대한 힌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승호선배가 이곳에 있다는 건 지금까지 받은 메시지의 발신자가 선배라는 뜻일까? 하지만 처음 메시지가 왔을 때 선배는 분명 무대에 있었다. 


“괜찮아?”


승호가 얼어붙은 듯 서 있는 지우를 발견하고 먼저 다가왔다.

“아, 선배.”

“응. 근데 너 괜찮은 거야?”

지우의 심장을 쿵 내려앉힐 만큼 다정한 말투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휴대폰이 방금 또 울렸기 때문이다.

지우는 선배에게 보이지 않는 각도로 메시지를 슬쩍 확인했다.


- 아는 척 말아줬어야 했을까. 하지만 너무 힘들어 보여.


확인.


- 근데 너 괜찮은 거야?


확인.


- 은지우다.


거기까지 확인하고 지우는 승호의 손을 살폈다. 양손 모두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적어도 선배가 직접 보낸 메시지는 아니라는 거다. 혼란스러운 상황 탓인지 현기증이 났다.

“일단 좀 앉을래?”

승호는 자기가 앉아있던 테이블로 지우를 안내했다. 지우가 의자에 앉는 걸 확인한 후에야 승호도 맞은편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테이블에는 하얀 접시가 놓여있었다. 안에 든 음식이 뭔지 지우는 보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치킨샐러드. 메시지의 주인공이 마지막까지 고민하다 선택한 머스터드소스가 뿌려져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꿈은 아닐까. 


꿈이 아니고서는 선배의 말과 행동이 지우의 휴대폰으로 전송되는 상황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선배와 마주 앉은 지금 이 순간도 지우에게는 굉장히 비현실적이었다. 동아리에 들어온 지 반년이 넘었지만 선배와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참, 아까는 고마웠어.”

지우를 다시 현실로 데려오려는 듯 승호가 말했다.

“이거 빌려줘서. 내일 세탁해서 돌려줄게.”

승호가 가리키고 있는 건 머리에 쓴 모자였다.

“아, 그거... 제 모자 아니에요.”

“아까 네가 갖다주지 않았어? 네 모자가 아니면......”

지우의 표정을 살피던 승호가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서둘러 지갑을 열었다.

“샀겠구나. 공연 전에 안 그래도 바빴을 텐데 나 때문에 더 정신없었겠다, 미안. 얼마야?” 

“아니에요. 새 모자인 건 맞지만, 테스트 기간이래요. 그냥 받았어요.” 

‘받았다’는 말을 할 때 지우는 잠시 주저했다. 엄밀히 말하면 받았다기보다는 지우가 일방적으로 가지고 나온 쪽에 가까웠다.

“테스트 기간? 뭘 테스트해야 하는데?”

그러게, 뭐였더라.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긴 있었던가. 

지우는 뒤늦게 모자가게 점원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려 했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모자가게에 들른 것도 아주 까마득한 과거의 한 장면처럼 떠오를 뿐이었다. 문득 이 꿈같은 상황이 모자 가게에서부터 시작된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골몰히 생각에 빠진 지우를 승호가 다시 현실로 불러들였다.

“참, 지금 뒤풀이 가 있을 시간 아냐? 왜 여기 있어?”

“아!”

지우는 그제야 희주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선 까맣게 잊고 있었다. 메시지를 보내려고 휴대폰 화면을 켰다. 겹겹이 쌓인 메시지가 먼저 눈에 띄었다. 


- 혹시 너도 그래?


확인.


- 혼자 있고 싶었는데, 지금은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어.


확인.


- 지금 뒤풀이 가 있을 시간 아냐? 왜 여기 있어?


선배가 방금 한 말이 메시지로 떠 있었다. 선배가 하지 않은 말들도 떠 있었다.

지우는 희주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승호에게 되물었다.

“그러는 선배는요?”

“응? 난 그냥.”

동시에 승호가 생략한 말이 휴대폰으로 전송되었다.


- 난 그냥, 가고 싶지 않았어.


메시지로 전송되는 건 승호의 말과 행동이 아니었다. ‘마음’이었다. ‘말’이 전송된 건 그 말이 곧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었다. ‘행동’을 알 수 있었던 건 행동 역시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지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흥분과 두려움을 느꼈다.

“배고프진 않아? 뭐 좀 먹을래?”

지우는 승호 뒤편으로 보이는 메뉴판을 훑었다. 공연 준비를 하느라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게 떠올랐다. 지우는 지갑을 들고 키오스크로 향했다. 한발 한발 바닥을 디딜 때마다 심장이 쿵, 쿵, 같이 울리는 기분이었다.


역시나 꿈이야, 꿈이 분명해.


지우는 이 꿈에서 오래오래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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